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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폐기 한반도평화협정으로 풀어라”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02-19 (화) 13:41:05


 

“북핵폐기는 한반도평화협정으로 풀어야 한다.”

 

북한 핵실험으로 긴장에 싸인 한반도문제를 한반도평화협정 체결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욕의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본부(상임대표 김경락목사)와 함석헌 평화센터(회장 신대식), 민족사상연구회(회장 김정걸) 등 등 3개 단체가 주최하는 한반도평화정착 공개토론회가 17일 플러싱 매일가든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제역학관계UN안보리의 대북제재는 대립과 반목의 악순환을 되풀이할뿐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차제에 한반도평화협정 체결로 북핵폐기의 당위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경락 상임대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는 오직 평화협정으로 가능하다. 휴전 60년, 동족 분단 68년째를 맞은 올해를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의 원년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오는 광복절 UN처치센터에서 한반도평화협정 촉구대회를 위해 한민족포럼 대표 안승국 박사, 도산안창호 사상연구회 황재봉 회장, 김문조 전 한양대교수 등 15인의 준비위원을 선임했다. 또한 해외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을 잘 알려진 혜문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본부 한국대표로 위촉돼 눈길을 끌었다.

 


 

우리 문화재의 실태조사를 위해 뉴욕에 머물고 있는 혜문스님은 이날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성과와 전망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문화재 제자리 찾기란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정신을 찾는 것이자, 우리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혜문스님은 “남북으로 허리가 잘린 7천만 겨레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하고 싶었던 것이 이 운동의 진실한 가치”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문화재 제자리 찾기’가 분단을 넘어 ‘민족의 제자리찾기’로 발전되기를 희망했다.

 


<이상 사진=교회일보 제공>

김경락 상임대표는 “혜문스님의 추구하는 가치와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의 취지가 일치하고 있다”면서 “이 운동의 한국대표를 스님께서 기꺼이 맡아주어 기쁘다”고 말했다.

 

오는 광복절에 열릴 한반도평화협정 촉구대회는 평화통일 농악대와 뉴욕국악원이 참여한 가운데 독립운동가로 불려온 밀양아리랑 등을 부르며 유엔빌딩을 도는 한마당 행사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국제 심포지움이 열릴 예정이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www.ko.wikipedia.org

 

<꼬리뉴스>

 

한국전쟁 정전협정 되기까지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이후 수도 서울을 되찾은 후 북진통일을 주장한 이승만은 1951년 6월 9일 38선 휴전의 결사반대를 선언했고 6월 27일 소련의 휴전안을 거부했다. 다음은 위키피디아의 정보.

 

1951년 7월에 휴전 회담이 개시된 후 세계 전쟁 사상 처음 보는 제한 전쟁(정전이 되면 각기 점령 지역에서 국경이 정해지는 조건으로 싸우는 전쟁)이 벌어졌다. 1951년 9월 20일 이승만은 휴전 수락의 전제조건으로 중공군 철수, 북한군 무장해제, 국제연합 감시하 총선거를 요청했다. 군사분계선 문제는 이미 1952년 1월 27일에 타결됐으며, 1952년 5월에 이르러선 포로교환 문제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의제에 합의했다.

 

한국 전쟁 중 2년 동안 중공의 개입으로 전선이 고착화하자, 이를 부담스러워한 미국은 현상유지 차원에서 휴전협정을 추진했다. 소련의 부분적으로 참전하자, 세계 여러나라들은 한국 전쟁이 머지않아 냉전체제와 한국의 통일을 위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거라는 가능성이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미국이 소련 및 중공 측과 휴전을 논의하자 1952년 3월 이승만은 분단 상태에서의 휴전은 한국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민족국가로 생존하기 위해 단독으로라도 계속해 싸워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고집하며 휴전에 협조하지 않았다. 유엔군과 한국군이 반격했고 인민군을 압록강까지 북쪽으로 물리쳤을 때, 이승만은 한국을 분단시킬 여러 번의 정전 제안에 동의하기를 거절했고 이 때문에 연합국들의 반감을 사게 됐다.

 

이승만은 국제연합의 도움으로 통일된 한국의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어떤 평화 협정에도 반대했다. 또한 그는 중공에 대응하여 좀 더 강력한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이 폭격을 하는데 망설이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곤 했다.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의 죽음으로 정전 회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1953년 3월 19일 소련 내각은 '한국 전쟁을 정치적으로 마감한다.'는 결정을 중공과 북한에 통보하면서 부상포로의 우선 교환에 동의하도록 요청했다.

 

1953년 5월 30일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보낸 친서에서 다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요구했다. 이승만은 6월 18일 휴전 협정을 방해할 목적으로 수감된 포로들 중 반공포로들을 대규모로 석방했다. 전격적인 반공포로 석방에 격분한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할 작전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개성과 금강산에 이르는 곳에서 전투가 계속되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소련을 통해 휴전을 제의했고 유엔군 측의 승인으로 휴전이 되었다. 1953년 7월 27일에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 1개월 만에 한국 전쟁은 휴전으로 매듭이 지어졌고, 현재까지 그 효력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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