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원겁 즉일념 일념즉시 무량겁..”
“한량없는 오랜 세월이 한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낭랑한 요령(搖鈴)소리와 함께 목탁의 청음이 울린다. 눈을 지긋이 감고 합장한 스님들과 불자들의 염불에 추도객들은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18일 코네티컷 뉴타운의 샌디 훅 마을. 총기참사이후 수많은 추도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곳에 한국의 스님들과 불자들이 추모의 기도를 올려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가사(袈裟) 장삼(長衫)을 두른 한국의 스님들과 불자들이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참사가 벌어진 뉴타운 샌디훅 마을 ‘추모의 트리’ 앞에서 애도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스님네를 에워쌌다.

NBC와 ABC, CNN, AP통신 등 현장에 나와 있던 미디어들도 예상치못한 스님들의 추도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취재에 나섰다. 참사이후 나흘째인 이날까지 개별 추도객들은 쉴새 없이 이어졌지만 특정한 종교인들이 합동추모제를 올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뉴욕불교사원연합회장을 역임한 원영스님을 비롯, 원각사 주지 지광스님, 보리사 주지 원충스님, 불광선원 지호스님, 태고종단의 혜진 스님과 김정광 뉴욕불교문화원장 등 일곱명의 불자들은 정성껏 마련한 조화를 바치고 향불을 켰다.

법성게와 반야심경, 장엄염불을 외우며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스님과 불자들의 모습에 언어와 종교, 문화가 다른 추도객들도 함께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일부는 합장을 따라 하며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브리지나라는 중년의 금발여성은 “나도 불자였다”고 반가움을 표하면서 “직업은 한의사인데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샌디 훅 마을 사람들의 치료를 돕고 있다”고 소개했다.
15분에 걸친 기도를 끝낸 후 스님과 불자들은 샌디 훅 초등학교 방향인 리버힐 로드로 향했다. 법성게를 독송(讀訟)하며 합장한 채 길게 한줄로 걸어 올라가는 한인 불자들은 경건한 순례자 그 자체였다.

샌디 훅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길목은 경찰통제로 더 이상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그 자리에 조성된 추모의 제단에 다시 향불을 놓고 기도를 올렸다. 스물일곱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작은 트리들과 샌디 훅 스쿨 사인판이 걸린 커다란 오렌지색 텐트 역시 헤아릴수 없이 많은 인형과 꽃다발, 촛불, 추모의 카드들이 놓여져 있었다.

마을 주민 케니 톰슨은 “한국 스님들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희생자들과 마을 주민들을 위로해주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샌디 훅 마을에서 자란 그는 사건이후 이곳에 살고 있는 자녀 집에 머물고 있다면서 “한국 스님들의 정성어린 기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정말 멋진 일”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원영 스님은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큰 비극이 일어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지만 스님들이 많이 오셔서 정성껏 기도를 한 것이 모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타운(美 코네티컷)=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뉴욕일원 한국사찰 추모기도 고른 참여
한국 스님들과 불자들의 뉴타운 방문은 원각사 신도인 민지영씨가 전날 김정광 뉴욕불교문화원장에 “한인타운과 멀지 않은 이곳에서 참사가 일어난만큼 찾아가 애도의 뜻을 표하면 좋겠다”고 전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정광 원장이 뉴욕 일원 사찰에 사발통문을 돌리자 원영 스님 등 각 사찰의 스님들도 기꺼이 동참의사를 밝혀 바로 다음날 추모 약속을 잡게 됐다. 급작스런 일정이었음에도 보리사, 원각사, 불광선원 등 세 곳의 스님들과 뉴저지 원적사, 뉴욕 대관음사의 불자들이 동행하는 등 많은 사찰이 참여했다.

게다가 비구니 스님인 지호스님이 조계종미특별교구장인 휘광스님(불광선원)을 대리해 참석하고 미국 스님인 태고종단의 혜진스님이 합류함으로써 이날 불자 추모단은 한국과 미국불교를 아우르는 듯한 모양새까지 갖추게 되었다.

김정광 원장은 “채 피지도 못한 꽃송이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불교의 가르침은 나눔이 아니겠냐. 지금까지 많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오늘처럼 뜻깊은 모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