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란자(52)는 총을 사랑했다. 종종 아들을 데리고 뉴욕시 북동부외곽의 사격장에 갔다고 그녀의 친구는 말했다. 이따금 로컬바에서 자신의 총기컬렉션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뉴타운초등학교의 끔찍한 참사에 쓰인 총들은 그녀가 수집한 것이었다고 뉴욕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애덤 란자(20)는 엄마의 총을 들고 샌디훅초등학교로 가서 어린이 20명 등 모두 26명을 살해했다.
당국은 낸시 란자의 총기집착과 애덤 란자의 총기난사 사이에 무슨 함수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총기는 모두 5정으로 두 개는 권총 두 개는 전통적인 사냥총, 또하나는 아프간 전쟁에서 쓰인 무기와 비슷한 반자동소총이었다.
2008년 남편과 이혼한 낸시는 사교적이고 남들에게 친절했지만 극도로 예민한 기질도 있었다고 친구들은 말하고 있다. 아들 애덤과 뉴타운의 큰 콜로니얼 주택에 산 그녀는 발달장애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들을 돌보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제네럴 일렉트릭 임원인 전 남편 피터 란자는 조사과정에서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나 역시 묻고 싶다”고 당혹해 했다.
낸시 란자의 오빠 제임스 챔피언은 뉴햄프셔 킹스턴의 전직 경찰로 “가족들을 대신해 무고한 생명이 다수 희생된 것에 대해 슬픔을 가눌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낸시 부부가 98년까지 킹스턴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며 애덤을 본지는 8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낸시 란자의 시누이 마샤 란자는 “낸시가 아들이 학교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동안 홈스쿨링을 시켰다”고 전했다.
애덤의 동창들은 그가 말이 없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말한다. 알렉스 이스라엘은 “그는 항상 자신속의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아주 똑똑한 아이였지만 사회성이 문제였다. 어렸을 때 애덤의 집에 놀러가면 그애 엄마가 아주 친절하게 잘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애는 변화가 없었고 자연히 나도 중학교이후엔 접촉하지 않게 됐다”고 회상했다.

알렉스는 “고등학교 다닐때는 거의 보기 어려웠는데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가방을 들고 빨리 지나치기 일쑤였다. 친구들과 얘기하는 모습도 본적이 없다. 졸업앨범 만들 때 그 애는 사진찍는걸 싫어해서 아기때 사진을 썼던게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동창들에 따르면 그는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낸시 란자는 마른 체구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의 헤어스타일로 생맥주와 재즈, 조경의 취미를 갖고 있었다. 종종 타운의 식당과 화요일마다 맥주시음과 음악감상을 즐길수 있는 ‘마이 플레이스’에 가기도 했다
당초 일부 언론이 애덤의 엄마가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일한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낸시는 한때 증권중개인으로 일한 적이 있지만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마이 플레이스에서 가끔 자원봉사자로 일한 적은 있지만 생계를 위한 직업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뉴욕=임지환특파원 jhlim@newsroh.com

<꼬리뉴스>
“아들 데리고 종종 사격장에 가기도”
뉴타운에서 조경업체를 운영하는 댄 홈스는 “마이 플레이스에서 낸시 란자를 종종 봤는데 총기컬렉션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다양한 종류의 총기를 갖고 있었지만 모두 몇정인지는 모르겠다. 아들을 데리고 가끔 사격장에 갔다”고 말했다.
그녀의 주문으로 집에 가서 조경작업을 했는데 최근엔 정원손질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주었더니 아주 멋지다며 만족해했다고 전했다.
마이 플레이스의 연주자인 짐 레프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줄 일이 있었는데 바에서 얘기를 하던 것을 우연히 들은 그녀가 그 친구에게 수표를 써주었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그는 “낸시는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약간 날카로운 면도 느껴졌다. 아마도 그건 병을 앓고 있는 아들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