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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버려진 위안부할머니’ 안세홍작가, 뉴욕 강연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04-07 (일) 13:23:10



 

“꿈을 꿔도 조선꿈을 꿔야한다고 했어요. 조선말을 잊지 않으려고 아리랑을 부르고 또 불렀지요.”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돈벌게 해준다는 미끼와 거짓말로, 혹은 강압적인 납치로 꽃다운 나이에 만주에서 윈난, 태평양 연안의 일본군 매음굴(賣淫窟)로 끌려간 꽃다운 처녀들이었다. 전쟁이 끝난후엔 기나긴 고통속에 살았지만, 70년 가까이 철저히 잊혀진 할머니들이었다.

 


 

중국에 버려진 채 모진 형극의 길을 걸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처음 뉴욕에서 공개됐다. 5일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안세홍 작가의 ‘겹겹 강연회’에 참석한 청중들은 슬픔과 한과 고통을 공유하며 귀를 기울였다.

 

이날 행사는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코리아프레스센터 갤러리에서 진행중인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 사진전’에 맞춰 코리아소사이어티가 마련한 것이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이날 강연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올려 6만명의 회원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수석부회장 스테픈 노이어퍼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안 작가는 사진의 주인공들에 얽힌 비화와 향후 계획 등을 들려주었다. 통역은 박상미씨가 맡았고 사진전을 기획한 미디어조아의 한지수 대표, 안 작가와 함께 겹겹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일본인 동료 우에다 유스케 씨, 이번 강연을 주선한 독립기획자이자 컬럼비아대학 출판사 수석디자이너 이창재 씨가 자리했다.

 


 

강원 옥계출신인 안 작가는 주로 사회 소외계층을 조명하는 사진작업을 했다. 96년 위안부할머니들이 기거하는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중국에 남겨진 할머니들의 존재를 알게 된 안 작가는 2001년부터 할머니들을 찾아 나섰다.

 

2002년엔 피해 할머니들의 영상작업을 했고 2003년에 이들 할머니들을 최초로 소개하는 사진전을 열어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까지 7차례 중국을 방문해 할머니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한국은 물론,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6월 도쿄 니콘살롱의 전시회는 니콘측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破棄)하는 바람에 소송까지 벌이는 진통을 겪었다. 오는 18일 뉴저지 팰팍 전시회가 끝나면 파리와 베를린, 런던 전시를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사진작가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와 유럽까지 10여명 활동하고 있다. 내년에 이들과 함께 도쿄에서 공동사진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음은 노이어퍼 박사와 안작가의 대담 내용.

 

-중국에서 할머니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어떤 지역들을 다녔나?

 

“2001년부터 베이징 상하이 산뚱 우한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할머니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막상 할머니들을 찾고보니 대부분 전쟁이 끝나고도 위안소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왜 그곳에 남게 됐나?

 

“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은 할머니들을 놔둔채 달아났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위안소에서 일본말과 일본이름을 썼기 때문에 중국어도 전혀 할 수 없었다. 위안소 주변에서 중국말을 배우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1950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 이후엔 고향에 가기는 커녕, 가족들에게 연락할 길도 없었다.”

 

-처음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나.

 

“할머니들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열세살 때 끌려온 분도 있었다. 그분들에게 과거는 잊고 싶은 기억이었을뿐이다. 여러번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두 할머니가 걷는 저 황량한 곳은 어느 지역인가

 

“만주 벌판이다. 저 지역엔 네 곳의 위안소가 있었다. 두 할머니는 소녀 때 끌려와 같은 위안소에 있었고 위안소에서 불과 몇백미터 벗어나지 못한 마을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 지금도 저곳 땅을 파면 위안소와 관련된 물건들이 나온다. 위안소 근처에서 사는 것 자체가 두배 세배의 고통이었다. 흑룡강에서 만난 이수단 할머니도 오랜 세월에 우리 말을 잊었다. 동족을 만나고도 통역을 통해야 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 아팠다.”

 


 

-그곳에서 결혼한 할머니들도 있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라 첩으로 가는 경우였다. 결혼하고 구타와 폭언 등 학대를 받기도 했고 특히 열 중 여덟은 자식을 낳지 못했다. 위안소에서 후유증(後遺症)이 너무 많아서 임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노년에 홀로 외롭게 힘든 삶을 이어갔다.”

 


 

-서류같은 것들을 들고 찍은게 있는데

 

“할머니들은 대부분 중국국적이나 북한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이 시골마을에서 산 분도 있었다. 내몽고쪽으로 끌려간 한 할머니는 7년간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일본과 중국이 전쟁하는 사이에 산동지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중국말을 못해서 간첩으로 오인받고 한달간 갇혀서 고문받다가 다시 탈출할 수 있었다. 나중에 정착한 곳에서 어렵게 외국인거류증을 받았는데 그것이 자신을 입증해줄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보물처럼 평생을 간직했다가 내게 보여주었다.”

 


 

-가족 사진도 눈에 띈다

 

“가슴아픈 사진이다. 이수단 할머니는 70년에 북한의 가족과 연락이 닿아 편지를 주고받게 됐다. 소식은 알았지만 서로 오갈 수 없는 형편이라 북한의 가족이 사진을 찍어 보냈다. 73년까지 서신을 몇 번 주고다가 또다시 연락이 끊겼다. 할머니는 저 사진 한 장을 가족으로 품에 안고 살았다.”

 


 

-전시회의 타이틀 '겹겹(Layer by layer)’의 의미는 무엇인가.

 

“할머니들의 이마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냥 주름이 아니었다. 포스터에 실린 배삼엽 할머니는 이마 가운데 세로로 생긴 주름도 있었다.

 


 

그 주름을 보면서 할머니들이 가슴속에 쌓인 고통이 끝난게 아니라 고통의 덩어리가 되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과 한과 슬픔이 겹겹이 쌓였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그 할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지도를 어루만지는 할머니의 표정이 안타깝다.

 

“박대임 할머니는 8개월된 아들을 업은채 중국에 끌려갔다. 우리말은 잊었지만 고향인 진천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한반도 지도를 보며 고향을 찾곤 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아버지, 형제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어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전에 고향에 가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운 옷을 입고 활짝 웃는 할머니 사진도 있는데

 

“유일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 사진이다. 딸한테 생일선물로 받은 한복을 입고 있다. 저분은 우리 말을 잊지 않으려고 아리랑을 즐겨 불렀고 우리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평상시에 사진 찍을 기회가 없다고 해서 찍어드렸다.”

 


 

-슬프지만 아름답다. 영적인 느낌을 준다.

 

“인간의 내면속에 깊이 간직한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다.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연들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할머니들은 꿈을 꿔도 조선꿈을 꿔야 한다고 했다.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게 없는 내 자신의 나약함을 느꼈다.”

 


 

-생존한 할머니들은 모두 몇분인가.

 

“그간 만난 열세분의 할머니중 이제 남은 분들은 다섯분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마저 안좋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 벌판을 걷는 사진속 두 할머니중 한분을 작년에 다시 만났다. 정신분열증을 앓던 할머니는 침대에서 낙상(落傷)을 해서 골반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여생을 누워지내야 하는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다. 할머니는 첫날 나를 기억했지만 둘째날 셋째날에는 기억을 못하시더라. 그러나 눈빛으로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이분을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지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해 6월 도쿄 전시회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2011년 12월에 니콘 갤러리에 사진을 보여주고 오케이 결정이 나서 5개월간 충실히 준비했다. 그런데 전시를 한달 남겨놓고 니콘에서 ‘사진전이 중지됐다. 이유는 밝힐 수 없다. 책임자도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 도저히 대화가 안돼 일본법원에 가처분 신청해서 전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갤러리만 열었을뿐이지 나를 방해하기 위해 니콘의 변호사와 직원들, 경비가 대기하고 있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더라.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중지시키겠다고 협박을 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촬영하고 대화를 녹음하고 굉장히 많은 인권침해가 2주내내 이어졌다. 관객이 오면 가방검사까지 하며 귀찮게 만들었다.

 


 

하도 감시자들이 따라다녀 1~2km 밖으로 나가서 인터뷰하기도 했다. 지독한 방해공작이 있었지만 관객들이 니콘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도 한 덕분에 전시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2주간 7900명의 관객이 찾아온 것은 큰 보람이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에필로그>

 

안세홍 작가의 ‘겹겹프로젝트’는 사진전과 강연회 역사를 기록하고 기획하는 일을 한다. 안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만큼 큰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동시에 진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변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고 말한다.

 

 



사진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태를 알리고 강연회를 통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그는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올해 다시 중국에 간다.

 



겹겹프로젝트는 이같은 활동을 위해 서포터스를 모집하고 있다. 인터넷(www.juju-project.net)이나 이메일(ianfu@juju-project)을 통해 회원에 가입할 수 있고 구좌당 1만원의 ‘겹겹기금’ 참여를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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