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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페스탈로치’ 허병렬 뉴욕한국학교 설립자 <뉴욕에서 만난 사람>

글쓴이 : 민지영 날짜 : 2013-04-21 (일) 10:38:51

 

‘까만 눈도/ 파란 눈도/ 사과를 보며/ 책을 읽는다/ 낮은 코도/ 높은 코도/ 향내를 맡으며/ 푸른 공기를 마신다/ 까만 머리도/ 노란 머리도/ 길게 자라며/ 바람에 나부낀다/ 노란 손도/ 갈색 손도/ 손가락이 다섯이며/ 만지면 따뜻하다/ 노란 마음도/ 하얀 마음도/ 갈색 마음도/ 서로서로 맞닿으면/ 뜨거운 사랑을 안다/ 우리들은 자란다/ 같은 시대에/ 같은 지구에서.’

(허병렬의 ‘같은 지구에서’)

 

‘한국의 페스탈로치’ ‘해외 한국어교육의 어머니’ ‘영원한 일선교사’….

 

뉴욕한인교육의 산증인 허병렬 뉴욕한국 이사장을 위한 수식어다. 그이는 평생 교육 외길을 걸었다. 만 여든일곱의 고령인 지금도 일선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1945년 서울사대부국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해 현재까지 무려 68년째 교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다. 허병렬 이사장이 단지 오랜 세월을 교육자로 있다고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불리는건 물론 아니다.

 

미 동부에 이민온 한인가정의 자녀들이 한글을 배우고 한국문화를 익히도록 하는 교육을 무려 반세기 가까이 해왔기때문이다. 허병렬 이사장의 2세교육은 1964년 석사학위 취득을 위해 도미한 이후 시작됐다.

 

초기엔 한글학교 교사로 가르쳤지만 그것만으로는 2세 자녀들의 문화적 갈증(渴症)을 달랠 수가 없어 1973년 뉴욕 브롱스에 뉴욕한국학교를 설립했다. 한인자녀들을 위한 미주, 사실상 해외 최초의 종합교육기관이었다.

 

공립학교 시설을 빌려 주말마다 운영되는 한국학교는 한글은 물론, 한국역사와 노래, 서예 무용, 태권도, 민속놀이, 연극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정체성 함양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맡고 있다.

 

그런 뉴욕한국학교가 5월 5일 어린이날 개교 40주년을 맞는다. 설립자요, 교장 겸 교사이자 행정가 등 일인다역을 맡은 그이의 열정이 있었기에 뉴욕한국학교는 40년을 한결같이 이어질 수 있었다.

 


 

제자들이 성장하여 결혼하고 그 자녀들이 찾아오고 다시 또 그들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1세대부터 3세대까지 뉴욕한국학교의 동문인 것이다. 2009년 제자에게 교장직을 넘기고 이사장을 맡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선 교사 생활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뉴욕한국학교가 있었기에 이역만리 미국에 와서 뿌리내린 수많은 한국이민가정이 안심하고 자녀들을 맡길 수 있었다. 특히 한국학교가 별로 없던 70년대와 80년대 뉴욕한국학교의 존재는 너무도 컸다.

 

뉴욕한국학교는 2011년 여름까지 브롱스의 케네디스쿨을 빌려서 주말 시간 운영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 신학기부터 브롱스의 In Tech 하이스쿨로 옮겨왔다. 대부분의 한국학교는 학기당 20주씩 2학기제로 편성된다. 총 80회째인 이번 학기는 6월 15일 종업식 겸 졸업식을 갖는다.

 

15명의 전문교사를 보유한 뉴욕한국학교는 유치원 과정부터 고등학교까지 반이 나눠져 있다. 주말에만 운영되지만 학사관리는 엄격하다. 결석은 말할 것도 없고 사정이 있어서 수업을 빠지면 개근상에서 제외된다.

 


 

이곳에선 아이들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학부모평생교육대학이 병행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 혹은 손주들을 통학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서예와 사군자를 비롯, 컴퓨터, 한국무용. 한국악기연주, 한국노래, 영어, 교육상담, 교육세미나, 연극지도, 문예창작은 물론, 외국인한국어반도 있다. 뉴욕한국학교엔 입양 자녀들을 위해 찾은 미국인 부부도 쉽게 눈에 띈다.

 


 

이들은 입양자녀들이 그들의 뿌리인 한국을 잊지 않도록 한글과 한국문화 역사를 배우게 하고 자신들도 한국을 공부하는데 힘을 기울인다. 이같은 노력덕분에 뉴욕한국학교는 뉴욕한국교육원 역사교육 연구시범학교로 지정되는 등 높은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 평생 사표 김애마 전 이대사범대학장의 추억

 

허병렬 이사장은 1926년 세 딸중 맏이로 태어났다.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며 일찍이 깨인 아버지(허 목)의 뜻에 따라 경성여자사범에 진학한 그이는 1944년 졸업할 때 200명의 졸업생중 1등을 했다.

 

당시 경성사범엔 일본학생이 조선학생보다 세배나 많았지만 “일본인한테 져서는 안된다”는 의지가 컸단다. 해방이 된 후 한국어를 잘 모르는 딸을 위해 아버지는 손수 국어사전을 만들어 주었다. 교육자의 유전자는 아버지로부터 대물림 한 셈이다.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허병렬 교사는 1959년 국비장학생으로 테네시 내쉬빌에 있는 조지 피바디 사범대학에 유학, 이듬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대부속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평생 사표로 삼은 김애마(1903~1996) 이화여대 사범대학 초대학장의 권유로 1964년 또한번 유학을 왔다.

 

“저를 많이 아껴주신 선생님께서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오면 대학에서 일하도록 하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뉴욕의 뱅크스트릿 교육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며 주말엔 뉴욕한인교회와 퀸즈한인교회에서 한글학교 교사를 하면서 2세 자녀들을 위해 우리 글 우리 문화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위를 마칠 무렵, 김애마 학장에게 조심스럽게 소망을 담은 편지를 썼다. 그러나 스승이 돌아오라면 군말없이 따를 생각이었다. 뜻밖에도 김애마 학장은 “한국에 와서 사범대학생을 가르치든, 미국에서 한인자녀들을 가르치든 가르치는 것은 똑같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니 더더욱 찬성한다”고 제자의 새 출발을 축복하는 답신(答信)을 보내왔다.

 

허병렬 이사장은 수십년째 지갑속에 간직한 김애마 학장의 사진을 꺼내보이며 “선생님은 제 인생을 바꿔주신 은인이에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을거에요” 하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석사를 나오신 선생님은 이화여대에 한국최초의 사립 사범대를 세우도록 하신 분이에요. 결혼도 안하시고..참 훌륭하신 분이에요. 결혼을 안하셔서 훌륭하다는게 아니구요. (웃음)”

 

허병렬 이사장 역시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결혼을 마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낮이고 밤이고 공부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다한 탓이었다. 교육가로 행정가로 한국 근대교육에 큰 발자취를 남긴 스승을 꼭 빼닮은 제자인 셈이다.

 


 

◇ 해외한국학교의 ‘롤 모델’ 뉴욕한국학교

 

뉴욕한국학교는 김홍준씨를 비롯 7인의 이사들과 뜻을 모아 설립했다. 뉴욕한국학교가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글교육과 함께 연극과 서예, 태권도, 한국무용 등 한국문화 교육도 함께 했기때문이다. 이같은 문화교육병행은 한글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좋은 수단도 됐다.

 

1980년에는 뉴욕한국학교에서 미주동북부지역 한국학교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공개수업과 교사 연수회를 가졌다. 같은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더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이같은 행보는 미주한국학교 NAKS(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School)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낙스 연례 모임에는 전 미주 1,000여개 한국학교에서 700~800명의 교사들이 모여 한국학 연구를 할만큼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허병렬 이사장은 맨해튼 첼시의 원룸 아파트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반세기를 뉴요커로 지낸 그이는 본래 브루클린에 집이 있었다. 그러나 일터가 있는 맨해튼을 오가기엔 교통이 불편해서 이 아파트로 이사오게 됐단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을 위해 1950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워낙 많은 대기자들로 입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허병렬 이사장도 신청후 무려 13년을 기다린 끝에 입주한 것이다.

 



 

“사실 뉴욕한국학교를 세운 1973년에 이 아파트에 입주신청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신청 예치금이 20달러래요. 그때 제 월급이 300달러였는데 어떻게 그 큰 돈을 내요? 포기했지요. 1987년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사무실을 찾아갔어요. 이제라도 신청하겠다고 20달러를 꺼내니까 아 글쎄, 50달러로 올랐다는거에요? 어디 한번 속아보자 하는 심정으로 내고 왔는데 10년이 넘게 소식이 없다가 방을 보라고 편지가 날아오더라구요. 이 집에 이사오는 날 사무실에서 50달러를 내주는데 정말 미국은 확실한 나라에요.”

 


 

허 이사장의 집엔 오밀조밀한 장식들이 무척 많다. 아이들이 보면 좋아할 인형과 장난감, 신기한 물건들도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재들도 있지만 워낙 어린이와 같은 천진함을 지닌 그이의 성품 탓이기도 하다. 한 쪽 벽에는 직접 지은 ‘같은 지구에서’라는 동시가 붙어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뉴욕한국학교의 교가 ‘뉴욕한국학교의 노래’ 작사자는 허병렬 이사장이다.

 

‘상쾌한 이 아침에 /동생과 언니와 손을 잡고서 /한자리에 모여 웃음속에 /우리 한국배우며 꿈을 이루자 /빛나라 자랑스런 뉴욕한국학교..’

 

◇ 한국의 생활문화 다룬 영어교재 제작 꿈

 

한국의 동년배 친구들은 허병렬 이사장을 너무도 부러워한다. 자신들은 60이 넘어 은퇴를 했는데 90을 바라보는 허 이사장은 여전히 선생님으로 건재(健在)하기 때문이다. 허병렬 이사장은 “친구들이 넌 좋겠다, 그러는데 그러지말고 일을 해라. 일거리를 받으려하지말고 일을 돈주고라도 찾아다녀라 그래요. 그게 일하는 행복이에요”하고 말한다.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는게 너무나 즐겁다는 허병렬 이사장은 지금도 매일 30블럭 이상을 걷는데 투자한다. “나이 먹어서 전원생활이 좋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안해요. 나이먹을수록 도심에서 살아야 해요. 사람들과 부대끼는게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쇼윈도에서 구경할 것도 많고 젊은 사람들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좋고 걷는게 너무너무 즐거워요.”

 

지난 40년간 학기중에는 금요일 밤에 잠을 잔 적이 없다. 토요일 수업 준비를 하고 학교문을 여는 것부터 모든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잠을 청해도 오지 않는다. 그래도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워낙 오래 습관이 됐기때문인 것 같다며 웃는다.

 


 

오는 5월 11일에는 개교 40주년 잔치를 벌인다. 이날 학생과 교사 학부모작품 전시회를 갖고 제60호 문집도 발간한다. 공개학습참관과 교사연수회를 갖고 ‘심청 뉴욕에 오다’ 연극 공연, 축하만찬의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그이에겐 한가지 꿈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한국옛날 이야기’라는 영어 교재를 제작하는 것이다. 총 12장으로 나뉜 이 교재는 한국의 생활문화를 그림과 함께 미국의 생활양식(生活樣式)과 비교풀이 해 아이들의 흥미를 돋구고 있다.

 

허병렬 이사장은 “난 교과서 냄새가 나는 책은 싫어요. 애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재미있게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저절로 깨닫게 하기 위해 만들었어요”하고 말한다.

 

그러나 이 교재는 제본과 장정을 갖추지 못한 채 약식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예산때문이다. 허병렬 선생님은 “돈이 없어서 책을 만들지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책으로 내는게 꿈이에요”하고 만년소녀(萬年少女)처럼 곱게 웃음을 지었다.

 


 

한국에서 교과서 편찬위원으로도 활동한 허 이사장은 지금까지 16권 이상의 한국어 교과서를 집필하거나 편집에 참여했다. 이같은 공로로 1984년 소수민족 우수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1985년 제29회 소파상, 1989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2004년 KBS 해외동포상 등을 수상했다.

 

동포자녀들을 위해 반세기를 헌신한 노교육자가 심혈을 기울인 교재를 정부가 해외한인교과서로 지원 채택하여 대한민국의 소중한 인적자산인 2세들에게 배포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토요일이면 그이는 일선 교사로 돌아가 고사리손의 아이들을 만난다. 학부모연극반과 한자도 가르치며 4시간 수업을 꽉 채우는 유일한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함께, 끝까지 아프지 않고 살다 가면 좋겠다”는 소망처럼 미주한인사회의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을 것을 믿는다.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가르침으로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뉴욕=민지영특파원 jymin@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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