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승선을 0.5마일 남겨두고 폭탄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한인마라토너 권이주씨(67)는 놀란 가슴을 쓸어넘겼다.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한 권이주씨는 15일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오후 2시45분경 피니시라인 부근에서 폭탄이 터졌을 때 나는 결승선을 0.5마일(약800미터) 남겨둔 상태였다. 아마 10분만 일찍 들어갔어도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이주씨는 “폭탄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경찰이 길을 막고 차단해서 레이스가 중단됐다. 선수들과 시민들은 처음엔 상황을 몰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곧 폭탄이 터졌다는 소식에 얼굴들이 하얗게 질렸다”고 긴박했던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마라톤대회엔 뉴욕 뉴저지에서 30여명의 마라토너들이 출전한 것을 비롯,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10여명, 한국에서 30여명의 동호회원들이 출전하는 등 약 70명의 한인들이 출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동부시간 오후 7시 현재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이주 씨는 “뉴욕 뉴저지에서 간 30여명과 내가 알고 있는 타 지역 마라토너들과 전화통화를 했지만 다행히 모두 안전한것 같다. 한국에서 온 마라토너들도 같은 호텔에 있었는데 다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며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랬다.
권이주 씨는 “레이스가 중단된후 너무 추워서 큰 고통을 받았다. 기온은 화씨 50도 정도로 온화한 편이었지만 땀이 식은데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덜덜 떠는 등 고통스러웠다. 시민들이 이 모습을 보고 담요와 티셔츠, 쓰레기용 비닐백들을 갖고 나와 선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혼란속에서도 따뜻한 정을 베푼 보스턴 시민들에게 감사해했다.
2010년 아시안 최초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주한 권이주씨는 이번이 생애 132번째 공식마라톤이었다. 뉴욕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12명이 함께 타고 왔다는 그는 “유서(由緖)깊은 마라톤 대회에서 이런 비극이 벌어져 너무나 충격적이다. 부상자들의 쾌유를 빈다”고 안타까워 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보스턴마라톤 출발에 앞서 포즈를 취한 권이주 씨등 뉴저지마라톤클럽 회원들
<꼬리뉴스>
“뛰기전만 해도 꿈에 부풀었는데..” 권이주씨 일문일답
2만명이 넘는 마라토너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참사였다. 15일 보스턴의 다운타운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탄테러에 한인참가자들도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세계5대 마라톤의 하나로 불리는 보스턴 마라톤은 한국과 유독 인연이 깊다. 1947년 제51회 대회에서 서윤복이 2시간 22분 39초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고, 1950년 제54회 대회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등 한국선수 셋이 1, 2, 3위를 석권(席卷)했다. 2001년에는 이봉주 선수가 2시간 9분 43초 기록으로 우승하기도 했다.
그런만큼 한인 마라토너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번 대회에도 미주한인사회에서 40여명 등 총 60여명이 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뉴저지에서는 2010년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주하는 등 ‘60대철각’으로 유명한 권이주씨를 비롯, 30여명이 출전했다.
공교롭게 지난해 11월 뉴욕마라톤이 허리케인 샌디 충격으로 대회직전 취소된데 이어 보스턴마라톤까지 테러참사로 얼룩지는 등 미동부의 양대 마라톤이 출범(出帆)이래 최악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
다음은 권이주 씨와의 일문일답.

▲ 지난해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한 권이주 씨 모습
-일행중 다친 사람은 없나?
“천만다행으로 모두 무사하다. 폭탄이 터졌을 때 나는 피니시라인을 0.5마일 앞둔 상태였다. 10분 정도만 빨리 들어갔어도 사고를 당할 뻔 했다. 오늘은 다른 선수들을 위해 4시간20분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했기 때문에 좀 천천히 뛰었다.”
-레이스 당시 주변에 한국인 선수들이 여럿 있었나?
“대부분 페이스메이커인 나와 보조를 같이 했기 때문에 앞서간 선수들은 거의 없었다. 페이스메이커를 조금 더 빨리 했다면 정말 큰 일이 일어날뻔 했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피니시 라인에서 0.5마일 정도 떨어진데다 도로가 휘어진 곳이어서 폭탄이 터진 현장은 볼 수 없었다. 경찰들이 길을 막고 레이스를 중단시켰다. 이미 경찰이 통제하고 돌아가도록 했다. 영문을 몰랐기 때문에 연도의 시민들과 선수들이 우왕좌왕했다. 우리는 본부석에 맡겨 놓은 짐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길을 한참 돌아서 가야 했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혼란스럽지는 않았나?
“폭탄이 터졌다는 얘기에 모두 경악했다. 또다른 폭탄이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모두가 긴장했지만 당장 추위가 큰 고통이었다. 기온이 낮엔 화씨 51도(섭씨 약9도) 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팬티와 셔츠 한 장을 걸치고 뛰던 선수들이 땀이 식고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 바람에 정말 심하게 떨었다. 시민들이 도와주지 아니었으면 병원에 실려갔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도움을 줬나?
“많은 선수들이 옷도 못입고 떠는 것을 보고 시민들이 집에서 티셔츠와 담요를 갖다주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티셔츠들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워낙 선수들이 많이서 커다란 쓰레기용비닐백들이 아주 유용했다. 급한대로 뒤집어 쓰고 바람을 막으니까 살 것 같았다. 보스턴 시민들이 혼란한 와중에서도 따뜻한 정을 베풀어 정말 감사했다.”
-이번에 한인들이 얼마나 출전했나.
“내가 사는 뉴저지에서 8명, 뉴욕에서 22명 정도 나왔고 로스앤젤레스 조지아에서 온 한인들도 있었다. 여자선수들도 예닐곱명 된다. 마라톤대회에 자주 나오는 이들이라 대부분 얼굴을 안다. 한국에서도 20여명이 출전했다. 사건 이후에 가능한 전화번호로 다 연락했는데 확인한 모두가 무사했다.”
-언제 보스턴으로 이동했나?
“우리 일행은 최현호 뿌리재단이사장을 비롯, 오수영 뉴저지마라톤클럽회장, 헬렌최, 홍효선, 김성유, 김창동, 정재우, 샤론 양, 이덕재 씨 등 12명이어서 15인승 버스를 렌트해서 왔다. 숙소는 쉐라톤호텔이었는데 한국인들은 대부분 같은 곳에 있어서 만날 수 있었다.”
-이번 대회는 몇 번째 공식마라톤인가?
“통산 132회 완주에 도전했다. 나는 경험이 적은 동료들의 페이스를 맞춰주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개인 기록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늘 날씨도 좋았고 처음 보스턴 마라톤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5명이 있어서 일행 모두가 가슴 설레이고 기대를 했는데 골인 직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