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지본처(還至本處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감)는 필연입니다. 이제 문정황후 어보(御寶)도 돌려받아야죠.”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18일 대한제국 화폐인 호조태환권이 60여년만에 한국에 돌아오게 됐다는 소식을 반기며 LA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정황후 어보도 당연히 환수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도난문화재 전담반은 지난 16일 한인 고미술품 수집가 윤 모(54)씨가 경매를 통해 소유하고 있던 대한제국 화폐 ‘호조태환권’ 원판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호조태환권은 1893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경제근대화를 위해 화폐개혁을 실시하면서 구 화폐를 회수하기 위해 발행한 일종의 교환표로 시중에 유통되지는 않았다. 50냥, 20냥, 10냥, 5냥 등 모두 4종류가 제작됐으며 50냥권 원판은 한국은행에 보관돼 있지만 나머지 20냥과 5냥권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윤씨가 낙찰받은 호조태환권은 덕수궁에 보관 중이었으나 1951년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이 미국으로 몰래 갔고 갔으며 그의 딸이 2010년 경매에 내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호조태환권에 대한 경매중단과 반환을 요구했으나 결국 윤씨의 품에 넘어갔다.
혜문스님은 당시 메릴랜드 국가기록보존소에서 2차대전때 미군이 관련된 문화재도난기록인 ‘아델리아 홀’레코드를 찾는 과정에서 호조태환권이 덕수궁에서 도난된 것을 확인했다.
국토안보부 전담반은 “윤씨를 장물소지혐의로 체포한지 일주일 만에 뉴욕 모처에서 호조태환권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호조태환권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미 양국의 공조수사에 의한 첫 번째 한국 유물 반환 사례가 된다. 그동안 국토안보부는 24개 국에 6600점의 도난 유물을 반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혜문스님은 호조태환권이 반환될 경우 현재 LA 미술관이 소장한 문정황후의 어보를 환수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된다면서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 북한대첩비 등을 환수하는데 공헌, ‘약탈문화재환수전문가’로 불리기도 하는 혜문스님은 현재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부처님진신사리 반환 협상을 위해 현재 뉴욕에 머물고 있다.
혜문스님에 따르면 조선 시대 어보(왕실의 도장)는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나 가례, 길례 등 각종 궁중 의식에 의례적으로 사용된 왕권의 상징물로 국왕 외에 왕비나 왕세자가 가진 인장(도장)을 말한다. 조선 시대 왕실 어보는 366과가 만들어졌고 현재 국내에 소장된 어보는 322과이다.
혜문스님이 찾아낸 ‘아델리아 홀 레코드’는 미 국무성관리인 아델리아 홀이 남긴 것으로 1953년 1월부터 1955년 5월 사이에 미군이 약탈해간 기록이 자세하게 언급돼 있다. 도난품 리스트 파일과 관련한 1953년 11월17일 볼티모어 선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주미 대사였던 양유찬 박사가 미군이 훔쳐간 47개의 어보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 어보의 반환과정에서 일부가 사라졌고 그중 하나가 2008년 LA카운티 미술관에서 발견된 것. 금으로 된 이 어보의 주인은 문정황후로 높이 6.45cm, 가로와 세로가 각각 10.1cm로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가 있다. 바닥 인면(도장을 찍는 면)에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금보의 소재를 파악한 후에도 3년동안 보고서조차 만들지 않는 등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측은 “보고서에 대한 협약서가 체결되어야 하는데 그게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혜문스님은 “호조태환권처럼 문정왕후 금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이다. 우리 정부가 이미 1950년대에 미국 정부와 언론에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청했고, 이런 경과가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 기록돼 있고 이번에 호조태환권이 반환되는 선례에 따라 정부가 LA카운티 미술관에 환수요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어보御寶,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 존호를 올릴 때 사용하던, 왕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을 말한다. 특히, 임금의 도장은 외교문서나 행정에 사용했던 국새(國璽)와 의례용으로 사용했던 어보(御寶)로 구분된다.
임금의 집무용ㆍ대외적으로 사용되는 도장인 국새와 달리, 어보는 각종 행정문서가 아닌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 궁중의식에서 시호ㆍ존호ㆍ휘호를 올릴 때 제작되어 일종의 상징물로 보관하던 것이다. 왕과 왕비뿐 아니라 세자와 세자빈도 어보를 받았고, 왕과 왕비의 어보는 사후 왕실 사당인 종묘에 안치했다.
하나의 어보는 거북 또는 용 모양의 의례용 도장, 도장을 담는 내함인 보통(寶筒), 보통을 담는 보록(寶盝), 그리고 이를 각각 싸는 보자기와 보자기를 묶는 끈 등 최소 6개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한 묶음으로 구성돼 있다. 어보는 3~7kg 정도의 무게로 한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운 편이다. 글자가 새겨져 있는 몸통 부분의 보신(寶身), 거북ㆍ용 모양 등으로 장식된 보뉴(寶鈕)에 술이 달려 있다. 보뉴의 모양은 대한제국기에 들어서면서 거북이에서 황제의 상직인 용으로 변경됐다.
어보와 국새는 거북이나 용 모양으로 장식돼 그 모양과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국새는 금으로 제작되었으나, 어보는 금박을 입히거나 은 또는 옥과 같은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국새가 정변이나 전쟁 등으로 대부분 소실된 반면, 어보는 종묘에 보관돼 있어 대부분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어보는 총 366점이 제작되어, 현재 323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316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문정왕후의 금보를 포함한 나머지 7점은 국립중앙박물관ㆍ고려대박물관에 보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