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참전한 18세 흑인병사의 유해(遺骸)가 무려 63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주인공은 LA 건카운티의 루즈벨트 J.클락 일병. 27일 하와이에서 델타 항공편을 통해 클락 일병의 유해가 LA 국제공항(LAX)에 도착하자 육군의장대는 최고의 예우(禮遇)로 뒤늦은 귀향을 맞았다.
NBC-TV를 비롯한 미국 언론에 따르면 1950년 당시 베이커스필드 고교 11학년이었던 클락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군 입대를 했다.

<사진=NBC-TV 캡처>
미군 제35 보병연대소속으로 파병된 클락 일병은 그해 11월 28일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북한지역 최전선에서 작전 도중 실종(失踪)되고 말았다.
잭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운동을 잘했던 클락은 차디찬 주검이 되었고 1990년대에 북한 지역에서 수습돼 미국과 북한 간 전사자 유해 인도절차에 따라 다른 미군 유해 208구와 함께 1990년대 중반부터 하와이의 미군 보관소에 머물러 있었다.
유해에서 채취한 DNA와 유품으로 가족찾기에 나선 군당국은 마침내 20여년만에 결실을 보고 가족에게 인도할 수 있었다.
낯선 나라의 자유를 위해 파병된 사춘기의 소년이 63년만에 돌아온 날,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던 어머니를 비롯한 직계가족들은 남아 있지 않았고 클락을 기억하는 사촌들만 애처롭게 현장을 지켰다.
사촌인 레티시아 카터는 “클락의 부모님은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아들의 귀향을 기뻐하실 것이다. 이것은 정말 신의 은총”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뉴욕=임지환특파원 jhlim@newsroh.com
<꼬리뉴스>
클락일병 고향 참전유공자묘지에서 영면
고 루즈벨트 클락 일병의 장례식은 3월1일 오전 11시 베이커스필드 미셔너리 침례교회에서 거행된다. 모교인 베이커스필드 고교 학생과 교사들의 추도(追悼)속에 그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 대신 고향인 베이커스필드의 참전유공자 공원묘지에 안장(安葬)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신원확인이 안된 미군의 유해는 약 5300구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전사자는 3만4,000 여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