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생하다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구한 운명의 흰정향나무를 무상 보급하는 한국인 환경운동가가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28일 뉴저지주 페어론 타운 시장실에선 한인매체가 포함된 뉴스미디어들이 자리한 가운데 특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리사 스웨인(Lisa Swain 사진) 시장과 환경운동가 백영현 1492그린클럽회장이 타운의 녹색운동을 공표하는 자리였다.
스웨인 시장은 지난 3년여간 타운에서 라일락 보급캠페인을 펼친 백영현 회장을 격려하고 “이 운동이 시 차원은 물론 타 지역으로 퍼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페어론 당국은 1492그린클럽과 함께 5에이커의 공원부지에 라일락 등 각종 나무를 심고 식물원 등을 조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이 공원은 상업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었으나 백영현 회장의 라일락 보급운동을 계기로 주민들이 녹지공간을 원하는 청원을 제기, 생태공원으로 전환되는 개가(凱歌)를 올리게 됐다. 현재 제인 스핀들 가든커미티 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로 백영현 회장을 지원하는 가운데 대대적인 조경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 페어론 타운의 벤더백 필드매니저(왼쪽부터)와 제인 스핀들 위원장, 제임스 코디네이터, 백영현 회장
백영현 회장은 부인 김영순씨와 함께 뉴저지 페어론에서 ‘클리프가든 플로리스트’라는 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각 가구에 라일락 나무 한주씩을 선물해 타운 전체를 라일락의 향기로 뒤덮어 자연사랑과 환경보호를 실천하자는 이들 부부의 사연은 2009년 지역신문 커뮤니티 뉴스에 전면컬러로 소개되는 등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같은 백회장의 노력은 미스김 라일락을 통해 더욱 뜻있는 캠페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백 회장은 평소 친분있는 뉴스로(www.newsroh.com)의 노창현 대표기자로부터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한국산 흰정향나무의 기구한 사연을 접하고 보급운동의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심했다.
미스김 라일락은 본래 북한산에서 자생하던 흰정향나무로 1947년 미국의 한 식물학자에 의해 열매종자가 무단채취돼 미국으로 반입, 라일락 최고품종으로 재배에 성공한 품종이다. 미스김 라일락은 몸집이 작으면서 향기가 유독 진한 것이 특징이다.
백영현 회장은 십수년간 거래하던 ‘아메리칸 너서리’의 파트너 제리에게 미스김 라일락을 구해달라고 요청, 몇그루의 나무를 운영하는 화원에서 꽃피워 대량보급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후 그가 건네는 라일락 중에는 반드시 미스김 라일락이 포함됐다. 한국산 흰정향나무가 페어론 타운의 가정과 학교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백영현 회장은 “라일락 보급을 통해 자연사랑과 환경보호를 일깨운다는 녹색운동의 중심에 바로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미스김 라일락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뜻깊은 일이다. 지구를 사랑하는 환경운동에 한국의 이미지를 강하게 갖는 라일락이 앞장선다면 그만큼 한국의 이미지에도 좋은 효과가 있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백회장 부부는 올들어 페어론의 7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라일락나무를 기증하고 식수하는 행사도 아울러 펼치고 있다. 밀리네스 스쿨과 린크레스트 스쿨 등 6개 학교에 각각 다섯주의 라일락 나무가 심어질 때마다 미스김 라일락은 1~3 주씩 어김없이 포함됐다. 이같은 캠패인과 함께 각 학교에서는 전담 교사와 12~15명의 학생들로 이뤄진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백영현 회장은 각 가정에 라일락을 기증할 때에도 가능한 아이들을 통해 전달한다. 그는 “아이들만큼 순수한 존재가 또 있느냐. 티없이 맑은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이 아이들이 커서도 어린 시절 라일락을 심은 추억을 통해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이 남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말 창설된 1492그린클럽엔 리사 스와인 페어론 시장은 물론, 이 지역출신 거물정치인 스티브 로스먼 연방하원의원 등 유명인사들도 회원으로 있다. 오랫동안 클리프가든 플로리스트의 손님이기도 한 로스먼 의원은 백 회장이 라일락 보급캠페인을 전개하자 익명으로 후원금을 내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後聞)이다.

▲ 스티브 로스먼 연방상원의원과 함께 한 백영현 회장
백영현 회장은 내년엔 학교에 조성된 라일락 나무 주변에 1년생, 다년생 꽃들을 심어 더욱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봄이 되면 페어론 공원의 미스김 라일락들이 만발하며 연보라빛 진한 향기가 타운 전체로 퍼질 것“이라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뉴욕=민병옥특파원 jymin@newsroh.com
<꼬리뉴스>
백영현 회장, 중동의 엔지니어 출신 이력
백영현 회장이 라일락 보급 운동을 구상한 것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본래 중동 수출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1979년 컨설팅 회사를 창업,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동남아를 무대로 10년을 누비다가 1990년 미국으로 이민 와 중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업을 계속했다.
이 무렵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스웨덴의 스베달라의 수주를 받아 광산회사에서 사용하는 마그네틱 라이너를 개발, 연간 3500만 달러 계약 수주를 눈앞에 두었지만 마지막 순간 사고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아픔도 겪었다. 가족의 설득으로 미국에 돌아온 그는 1996년부터 꽃으로 둘러싸인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이웃들과 10여년 간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많은 은혜도 입었고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라일락 보급 운동이었어요.”
2004년부터 20여종의 라일락을 자신의 가든에 심어 지역 환경에 맞는 2~3종의 라일락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5월부터 150주를 주민들에게 나눠줬고 11월에 100주를 추가로 보급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역매체가 이를 보도하고 당시 페어론시의 스티브 와인스타인 시장도 고마워하며 시 차원에서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스티븐 로스먼 연방 하원의원이 찾아와 지역사회는 물론, 타도시, 타주에도 이 같은 운동을 펼치기로 의기투합(意氣投合)했다.
2009년 12월 페어론에서 가진 ‘1492 그린클럽’의 창설 모임은 라일락 보급을 통한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1492는 컬럼버스를 통해 신천지의 존재가 알려진 해를 상징화한것이다.
페어론 시의 모든 가정에 라일락을 최소한 1주씩 보급해 미주 최초의 ‘라일락 시’이자 ‘환경 시’가 됨으로써 미주 전체에 이같은 운동이 불붙기를 염원하는 백영현 회장. 한국인 환경운동가의 작은 노력이 장차 어떤 결실을 낳을지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