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부 최고령 불자인 박만순 보살이 열반(涅槃)에 들었다. 향년 97세.
박만순 보살은 지난 24일 오전5시30분 코네티컷 종합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別世)했다. 발인식(發靷式)은 28일 코네티컷 리치필드 로위 퓨너럴홈에서 엄수돼 영정(影幀)과 제단은 뉴욕 원각사에 안치됐다.
이날 발인식엔 원각사 주지 지광스님과 무량스님, 화엄사 주지 법장스님을 비롯, 가족 친지와 불자들이 자리한 가운데 고인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었다.
고(故) 박만순 보살은 미동부의 최고령 불자일뿐아니라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사찰 원각사가 1974년 창건됐을때부터 인연을 맺은 주인공이다. 지난 37년간 원각사 신도회의 살아있는 역사로 많은 불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맨하탄 법당과 잭슨 하이츠 법당, 그리고 86년 샐리스 배리 밀즈로 이전한이래 지금까지 박만순 보살의 원각사를 향한 발걸음은 쉼이 없었다.
아흔을 훨씬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박만순 보살은 수도하는 스님 못지않게 정진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거의 평생을 매일 새벽 3시에 기상해 108배를 하고 경과 염불을 4시간동안 외는 수행을 거른 적이 없기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계율을 지키려 애쓰는 고인의 엄격함은 일체 육식을 하지 않았던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원각사의 노보살들은 “늘 채식을 하며 청정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박만순 보살님의 모습을 보노라면 수행자의 삶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 지난 2008년 백중기도 회향식에서 주지 지광스님옆에서 합장하고 있는 박만순 보살
원각사 불자인 민묘각성 보살도 “2008년 뜨거운 여름에 백중기도 회향식에서 노보살님이 경내 잔디밭까지 나와 지극정성으로 큰절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코끝이 찡해졌다. 절에서 마주칠 때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반가워하셨는데 이제 더 뵐 수 없다니 너무나 슬프다”고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원각사 신도회의 살아있는 역사
박만순 보살의 고향은 충남 대전 홍도동 143번지. 대대로 불교집안인 부모님(박춘서 우문선) 슬하에서 네 딸중 둘째로 성장했다. 어렸을적부터 절에 자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속에 실천하는 신행의 자세가 몸에 배었다.
고 이선길 거사와의 사이에 8남매(4남4녀)를 둔 박만순 보살이 미국에 온 것은 지난 1973년. 60년대말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미국에 와서 정착한 자녀들의 뒤를 따르게 됐다.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뉴욕 일원에는 한국 사찰이 하나도 없어서 집에서 불공을 드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이듬해 원각사가 창건되면서 불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95년 부군이 별세한 이후 보살님의 불심은 더욱 돈독해졌다. 어머니의 가이없는 신심에 자녀들도 원각사를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됐단다. 일요일 정기법회마다 보살님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셋째 아들 이태웅 거사 또한 원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 생전의 박만순 보살과 아들인 이태웅 전 신도회장
이태웅 거사는 원각사 주지스님인 법안 스님의 와병(臥病)으로 가장 힘겨웠던 97년부터 무려 10년간 신도회장을 맡아 원각사의 오늘을 일구는 단초 역할을 맡았다.
이태웅 거사는 “날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히 수행정진하셨던 어머님의 삶에서 저희 자손들이 너무나 많은 감화를 받았다. 어머님께서는 당신이 가셔야 할 길을 온전히 아시고 보살행을 실천하셨다”고 애끓는 마음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