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여름엔 평양의 수양딸 집에 밥솥사들고 가야지요.”
‘재미동포아줌마’ 신은미씨가 뉴욕에 왔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신은미씨는 지난해 온라인신문 오마이뉴스에 북한여행기를 올려 뜨거운 호응을 얻은 주인공이다. 달나라보다 낯설게 생각한 북한을 우연히 여행하게 되면서 편견(偏見)을 버리고 그곳 동포들과 나눈 진솔한 이야기는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한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남편 정태일씨와 함께 시카고에서 강연회를 갖고 지난 11일 뉴욕에 온 신은미씨는 오는 8월 네 번째 북한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0월에 첫 여행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과 5월 등 총 3차례 40일간 북한 전역의 주요 도시를 여행한 신씨 부부의 여행기가 어필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photo by 신은미
한국전쟁이후 북한을 다녀온 남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지만 정치경제적인 행사나 친지방문이 대부분이고 신씨 부부처럼 100% 관광 목적으로 북한을 다녀온 사례는 거의 없다.
이들이 북한을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시민권자여서 가능했다. 대구 출신인 신씨는 태어날때부터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온 세대였다.
외조부는 제헌국회의원(박순석)에 장로교단 목사님이었고 부친은 육사출신으로 반공정신이 투철한 인사였단다. “차라리 북한보다 달나라 여행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북한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요.”
이대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미국에 유학, 미네소타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신씨는 역시 유학생 출신으로 경제학을 전공한 남편을 만나 다섯자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녀가 팔자에 없던 북한관광에 나서게 된 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의 제안때문이었다. 정태일씨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제 연구의 일환으로 해방후 북한영화 비디오를 약 300편이나 섭렵(涉獵)했단다.
영화를 통해 북한에 관심은 두게 되었지만 이산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로 갈 일도 없었다. 그러던중 북한관광 상품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됐다. 시카고에서 한 미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추진하게 됐다.
신은미씨는 처음에 펄쩍 뛰었다. “어머니도 거기가 어디라고 관광을 가냐고 들어누우셨어요. 저 또한 공연히 갔다가 북한에 대한 거부감만 더 커질것 같았어요. 한편으로 북한은 과연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망설이다 북한을 한번 경험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가게 됐어요.”

photo by 신은미
1차 여행엔 이들 부부의 단독 여행이었다. 북한은 외국관광객에게 기본적으로 남녀 안내원 1명씩, 운전기사 1명이 배정된다. 달랑 두명의 관광객을 위해 3명이 동원된 것이다. 이때 만난 남녀 안내원들은 신씨 부부와 수양조카와 수양딸의 인연(因緣)을 맺게 됐다.
“안내원들은 조선국제여행사 소속인데 우리가 관광을 왔다고 하니까 신기해하더라구요. 남한출신사람들이 관광을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두 사람이 어찌나 살갑고 순수한지 열흘 일정을 지내며 한 가족처럼 되었어요.”

photo by 신은미
신씨는 이듬해 4월 북한정부가 전 세계 예술가들을 초청한 행사에 재미동포예술단의 일원으로 다시 북한을 찾아 열흘간 체류한데 이어 5월에 이웃들과 함께 다시 건너가, 20일간의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신씨는 “본래 5월에 몇 그룹과 함께 북한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연 참가 기회가 생겨서 연이어 북한 여행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3차례의 여정(旅情)을 통해 신씨 부부는 평양과 개성 판문점, 사리원, 남포, 삼지연,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나진, 선봉, 원산 등 각지를 방문할 수 있었다.
비록 관광여행일망정 수많은 북한 동포들과 마주쳤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걱정과 관심사를 갖는 생활인이었고 한민족의 뜨거운 정을 느낄 수 있었단다.
정태일씨는 여행하는 동안 사진을 찍는데 제지를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군인이나 군사시설은 촬영하지 말라는 주의는 있었지만 워낙 군인들이 많고 해서 주의문 자체가 무의미했다”고 말했다.

photo by 신은미
탈북자와 같은 민감(敏感)한 이슈에 대해 비난보다는 의연한 반응을 보이거나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태일씨는 “절대신성인 최고지도자를 제외하면 그들도 정권비판을 하고 관료들을 강하게 나무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신은미씨는 글을 연재하는 동안 악성 댓글로 인한 마음고생도 있었다. 한때 중단할 생각도 했단다. 그러나 한 탈북자가 보내온 장문의 메일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단다.
“선생님이 보는 북한도 맞습니다. 주어진 굴레 때문에 좋은 얘기를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 북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랬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내내 미소지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photo by 신은미
신은미씨는 “사실 난 종북이나 좌빨의 뜻도 몰랐다. 북한을 악마로 생각한 보수적인 나였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아름다운 보통사람이었고 사랑해야 하는 이웃이었다. 그걸 종북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종북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올 8월 북한에 가면 수양딸 설경이의 신혼집도 방문할 계획이다. 신씨는 “설경이가 작년 10월에 결혼을 했는데 선물로 쿠쿠밥솥을 주기로 했다. 선물도 주고 평양에 있는 딸의 사는 모습도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photo by 신은미
신씨는 1차 여행때 금강산에서 만난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놀던 아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단다.
“남북의 사랑스런 아이들아. 너희들은 절대로 서로 총을 겨누지 마라. 손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행복의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거라.”

photo by 신은미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북한여행비용 유럽관광상품보다 약간 비싸
신은미씨 부부는 북한여행기 연재를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다.
세차례의 여행을 통해 수천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많은 이야기거리를 갖고 온 이들 부부가 지인들과 모임을 함께 하며 북한방문기를 들려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모임에 UCLA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이병한 박사가 있었어요. 이분이 얘기를 듣더니 그걸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오마이뉴스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시민기자로 등록하면 글을 올릴 수가 있다고 해서 겨우겨우 등록을 하고 올렸어요. 그런데 바로 그날 전화가 오더라구요. 몇회나 연재할 계획이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시작한거니까 나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웃음)”

photo by 신은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편견없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느낌을 담은 북한여행기는 보기 힘든것이었기 때문이다. 글은 신은미씨가 썼지만 하나하나 남편 정태일씨의 감수가 이어졌다.
유려하고 감성넘치는 필력을 칭찬하자 겸양(謙讓)의 손사래를 치며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연재하지 못한 이야기도 참 많아요. 그곳에 사는 분들한테 혹시라도 해가 될까봐 쓰지 않았거든요”하고 털어놓았다.
오마이뉴스 연재후 한국에서 신씨 부부는 TV와 라디오 등 여러 매체에 초대되고 특강도 다니는 등 유명인사가 되었다.

photo by 신은미
그런데 북한여행은 비용이 얼마나 들까. 신씨는 “모르는 사람들은 남녀안내원 두명에 운전기사까지 호화판 여행을 했다고 오해한다. 사실은 패키지 여행상품에 다 포함된 가격이라 유럽여행을 할 때 드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여행자수가 적으면 가격이 다소 올라간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5월 아홉명이 14박15일짜리 상품을 이용할 때 비용은 일인당 2700달러였다. 다만 미국에서 중국 북경까지 가는 항공비는 별도이고 북경과 평양을 왕복하는 북한의 고려항공 이용료와 체류비를 합친 것이다. 신은미씨는 “어차피 북한여행 전후로 한국도 들렀기 때문에 특별히 항공비가 추가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photo by 신은미
안내원 팁은 일인당 하루 5달러였고 현지에서 옵션상품으로 아리랑 공연(1등석 225달러)이나 강서대묘 안압고분석실(100달러) 등은 따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이들 부부는 “아리랑공연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15만 수용 경기장에서 2만명이 카드섹션, 8만명이 매스게임을 하고 5만명은 관객이죠. 그런데 카드섹션으로 어떻게 동영상을 연출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더라”고 말했다.
신은미씨는 평양에서 인상적인 것으로 공연을 위한 극장이 많다는 것을 들었다. 성악가답게 음악과 예술에 관심을 둔 그녀는 자신이 만난 북한사람들은 모두 예외없이 한 개 이상의 악기를 다룰수 있었다고 말했다.

photo by 신은미
“북한에서는 학교에서 악기 한가지와 춤 혹은 시낭송 등 한가지를 의무적으로 배운다고 들었어요. 음악은 전 인민의 생활화를 시켰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북한예술은 90%가 이념과 사상을 내포한 것이지만 한번은 평양교향악단의 연주를 갔는데 림스키의 곡을 먼저 연주하더라구요. 근데 연주솜씨가 정말 대단해요. 나머지는 북한교향곡을 들려주는데 정말 놀랄 일은 도라지와 아리랑 등 우리 민요를 10~20분길이의 교향곡으로 연주하는거에요. 정말이지 대단한 감동을 받았어요.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이런 교향곡들을 한 사람의 작곡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합작해서 만든다는거에요.”
지난 8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한 영화 비디오를 300여편이나 구해 봤다는 정태일씨는 북한의 영화는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는 항일투쟁, 두 번째는 반미투쟁, 세 번째는 서정물과 노동의 인센티브를 다룬 것이다.

photo by 신은미
정씨는 “사회주의는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문제는 인센티브다. 노력을 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정권은 더 열심히 일하고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계몽영화로 이같은 정신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북한 영화 한편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자 주저없이 ‘한 녀학생의 일기’를 소개했다. “5~6년전 제작된건데 1시간30분 분량이에요. 유럽에도 수출되고 한 작품인데 시골집을 배경으로 열악(劣惡)한 환경속에서 사회주의 가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