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마티스 등 천재화가들을 발굴 후원한 스타인 패밀리의 所藏(소장)작품이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대규모로 전시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2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스타인 패밀리의 피카소, 마티스, 파리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의 작품콜렉션(The Steins Collect: Matisse, Picasso, and the Parisian Avant-Garde)’을 전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전시는 20세기초, 파리에 거주하며 현대예술의 대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했던 미국인 스타인가족-걸투르드, 리오, 마이클과 그의 아내 사라-의 콜렉션으로 마티스와 피카소를 중심으로 보나르, 드니스, 그리, 피카피아의 작품 약 200점이 전시된다.
▲ Matisse, 나비채를 쥔 소년, 1907
예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안목)을 지닌 스타인 패밀리가 당시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작품들과 현대예술을 보는 시각을 바꾼 중요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보기드문 企劃(기획)展(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 Matisse, 자화상, 1906
전시에 앞서 열린 22일 프레스 프리뷰에서 토마스 캠벨(Thomas P. Campbell) 관장은, “스타인패밀리는 그다지 부유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파리에 살며, 유명하지는 않지만 재능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 소장하며, 무명의 화가들에게 친구가 되어 용기를 주었던 진정한 후원자들”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무명이었던 작가들은 오늘날 그 이름도 유명한 피카소이며, 마티스, 그리고 이번에 전시된 파리의 아방가르드를 연 작가들이다. 스타인가문의 가족 모두가 현대예술의 巨匠(거장)을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 집안 뒤뜰에서 스타인 패밀리(왼쪽부터 Leo, Allan, Gertrude, 가족친구 Theresa Ehrman, Sarah, Michael) 1905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자넷 비숍 큐레이터는 “스타인 가족은 파리에 살며, 수백점의 작품을 소장했다. 가족가운데, 1903년 리오가 파리에 가서 주머니사정만큼 무명작가들이 그린 작품을 수집했다. 곧 이어, 리오의 여동생인 걸투르드가 파리에 갔고, 1904년 캘리포니아에 살던 큰 형인 마이클이 가족들을 데리고 파리에 합류하여, 본격적으로 수집한 예술작품의 콜렉션은 방대했다”고 소개했다.
▲ 미주류방송과 인터뷰하는 Janet Bishop 큐레이터
비숍 큐레이터는 “파리에 살면서 이들 가족은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었고, 매주 토요일마다 아파트를 개방하여, 작가, 딜러, 후원자 등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 걸투르드와 친구 앨리스 1922
‘스타인패밀리 콜렉션’은 San Francisco의 현대미술관과 파리의 Reunion des Musees Nationaux-Grand Palais에서도 순회전시되며,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기간중에 이 시대작가들을 중심으로 예술사를 정리한 강의와 영화상영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 자넷 비숍 큐레이터가 박물관의 큐레이터들과 카탈로그에 글을 쓴 예술사 학자들 및 평론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뉴욕=한동신특파원 dongsinhahn@gmail.com
<꼬리뉴스>
천부적인 콜렉터 스타인 패밀리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1년만 살기로 계획을 잡고 파리로 떠난 스타인가의 형제자매들은 파리에서 만난 예술가들과 우정을 나누며 평생을 지냈다.
▲ Picasso가 그린 걸투르드 스타인, 1906
천부적인 콜렉터였던 리오의 주도로 걸투르드, 마이클과 그의 아내 새라는 파리에서 세잔, 드가, 르노와르 등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과 교분을 나누고, 20세기초에는 비싸지 않았던 세잔, 고갱, 피카소의 작품들을 구입하며 수많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었다.
유망한 작가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한편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사람들간의 인맥을 나누는 모임을 주선하기도 했던 그들의 아파트에는 전 세계에서 그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 Picasso 'Boy Leading Horse' 1905-1906
그러나 1910년, 귀가 멀어 가던 리오가 점점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마침내 1913년 그는 파리의 친구들을 떠나, 아내 니나와 함께 餘生(여생)을 이태리, 프랑스, 미국 등지를 돌며, 미학을 강의하며 지냈다.
1914년 마티스는 마이클과 그의 아내 새라에게 베를린에 있는 화랑에 자신의 작품 19편을 대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독일이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베를린 화랑에 빌려준 마티스의 작품을 되찾을 수 없게 되자 마이클은 수년에 걸쳐 법적으로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그 작품들은 덴마크의 콜렉터들에게 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베를린화랑에 빌려주라고 했던 마티스는 이 일로 마음고생을 한 뒤, 함께 試鍊(시련)을 겪은 마이클과 새라를 모델로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 Matisse가 그린 '마이클 스타인'과 '새라 스타인' 1916
1, 2차대전을 겪으면서도 방대한 콜렉션을 고스란히 보관했던 걸투르드는 “우리 아파트에 걸려 있던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이 내 취향이 이상하다고 어찌나 타박을 했던지…”하며 초기에 사람들이 마티스, 피카소의 작품들을 이상하게 생각한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 프레스 프리뷰가 열리고 있는 The Tisch Gall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