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수재들의 경연장인 하버드 의과대학원 MD과정에 합격해 화제를 모은 이웅희(28) 씨가 유펜(펜실베니아대학) 치과대학원을 수석졸업한데 이어 금의환향까지 하게 됐다.
이웅희씨는 23일 가족들과 함께 모국행 비행기를 탔다. 고향인 충북 괴산군 향우회(불정면 외령리)가 5년만에 갖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웅희 씨는 지난 3월 하버드 메디컬스쿨의 MD(의학박사) 및 레지던시 통합과정 입학허가를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엘리트 의학도들이 지원, 무려 100대1의 경쟁을 보인 한 MD과정에서 그는 3명의 합격생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일엔 유펜(펜실베니아대학) 치과대학원 졸업식에서 최우등 졸업의 기쁨도 차지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축사연설을 한 이날 졸업식에서 3차례나 상을 받기 위해 연단에 올라가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치과대학원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인 구강외과를 전공한 그는 7월부터 2년 간 하버드 메디컬스쿨에서 구강외과와 안면수술과정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하버드대학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 전문의 레지던시를 4년 간 하게 된다.
의학도로는 보기 드물게 치의학박사(DMD)와 의학박사(MD) 두 개의 학위를 갖게 되는 그는 형 이동희(30) 씨와 형수 신슬기(30) 씨도 의사인 ‘닥터 가족’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의 사연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재경 향우회가 이씨 가족의 고향 방문을 요청했다. 오는 26일 고향에서 열리는 향우회 행사에 주인공으로 초대한 것이다. 미국에 이민한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지만 이웅희 씨 케이스는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본보기로 손색이 없다.
이주태(58) 김선주(56)씨의 2남 중 둘째인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92년 미국에 왔다. 모 은행의 뉴욕주재원으로 부임한 이주태씨는 3년의 파견 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자녀들을 남기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다 미국 정착의 결단을 내렸다. 전도유망한 직장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어렵더라도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뉴욕에서도 알아주는 베이글 컨설턴트가 된 그는 현재 뉴욕주 그레잇넥에서 ‘베이글 타운(Bagel Town)’ 등 두 개의 업체를 운영하며 한인 이민자들을 위한 베이글 비즈니스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좋아하던 골프도 끊고 17년 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온 부모님의 헌신은 이웅희씨 형제에게 성공을 위한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한국의 동년배들 못지 않게 완벽한 한글문장력에 효심 깊은 이들 형제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문직업인까지 되자 주위의 부러움과 축하가 쏟아졌다.

이주태씨 부부는 “타국에서 생계에 매달리느라 해주지 못한게 더 많다”고 하지만 사실 최선의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두 아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1~2년에 한번씩 한국을 방문토록 해 광주이씨 후손들이 살고 있는 충북 괴산의 고향집에서 역사와 문화 예의범절을 익히도록 한 것.
이웅희씨의 증조부는 괴산군수를 지냈고 유학자 출신인 할아버지는 도의원을 역임하는 등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는 “미국에 올 때 할아버지가 ‘웅희의 조국은 한국임을 잊지 말고 훌륭한 인재가 되어 조국에 이바지하길 바란다’고 써주신 족자를 항상 책상앞에 걸어놓았다. 힘들때마다 그것을 보고 할아버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선주씨는 “미국에 온지 1년쯤 됐을 때 아버님이 뉴욕을 방문하셨는데 웅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다 이끌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흐뭇해하셨는지 모른다. 손주사랑이 대단하셨는데 십수년전 칠순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셨다”고 애석해 했다.
괴산 영촌마을엔 올해 여든 넷 되신 할머니(홍숙영)가 자랑스런 손주들의 성공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린 고향땅에서 손주와 자녀들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주태 씨는 “웅희가 언젠가는 고향땅에 돌아가 선진의술로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는 것이 대견할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