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末期癌)으로 투병하는 미국의 60대 한인사진작가가 생애 첫 개인전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시회를 열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애틀랜타의 김종석(65) 씨. 그는 지난 8일부터 애틀랜타 북부 스와니의 새생명침례교회에서 생애 첫 사진전 ‘나의 비전을 탐험한다(Explore my vision)’를 열고 있다. 근 반세기에 가까운 ‘사진인생’을 반추(反芻)하기엔 너무나 적은 30여점의 작품이지만 그를 아는 이들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뜻깊은 전시회이다.
바쁜 이민생활속에서도 그는 여행과 스포츠를 일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카메라는 분신이자 동반자였다. 사진동호회의 일원으로 몇 번의 그룹전을 했지만 하면서도 구태여 개인전을 욕심내지 않았다.
사진촬영을 하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리며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에겐 ‘여행사진작가’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민 생활 40년간 미 전역은 물론이고 인도 유럽 중남미 등 40여개국을 여행했다. 아마존 밀림은 5차례, 페루 쿠스코 등 잉카문명 탐방은 무려 10차례나 거듭했다.
등산과 스키는 물론, 워터제트와 스킨스쿠버 등 익스트림 스포츠도 즐긴 그는 검은 가죽재킷에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니는 멋쟁이 레이서이기도 했다.
건강을 자신하던 그에게 병마(病魔)의 그림자가 닥친 것은 지난해 12월 가까운 이들과 함께 보름간의 유럽여행을 갔을 때였다. 크로아티아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약 8km의 호수길을 걸은 날 숙소에서 몸에 문제가 생긴걸 알았다.
“소변이 와인색깔이더군요. 하지만 열명의 일행을 이끌고 렌트차량 운전까지 책임지고 있어서 내색을 할 수가 없었어요.”
돌아오자마자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방광암이었다.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그러나 5월에 암은 재발했고 한달 뒤엔 온 몸에 암세포가 퍼졌다는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접했다. 그러나 그는 체념하지도 우울해하지도 않았다.
“어느날 선배가 그러대요. ‘자넨 억울할 것 없네. 원없이 하고 싶은것 다 해보고 살았잖아.’ 가만 생각하니까 맞는 말이에요. 내가 육십 중반이지만 남들 팔십 구십 되도록 사는 것보다 낫게 살았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하나도 억울하지 않더라구요. 허허..”
암진단을 받고도 그는 여행과 사진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3월엔 뉴욕에서 12일을 체류했고 1주일후엔 보스턴과 노바스코시아 캐나다까지 다녀왔다. 5월엔 오리건주와 시애틀을 여행했다.
계획대로였다면 8월엔 페루에 다녀왔을 것이다. “잉카문명은 남미여행의 기본이에요. 보통 여행 스케줄을 1년전에 짜기 때문에 계획은 했지만 이젠 여행은 더 이상 못할 것 같네요.”
투병의 와중이었지만 미뤄둔 전시회 얘기가 나왔다. “2000년까지는 필름카메라를 쓰다가 디지털 사진으로 바꿨어요. 제 컴퓨터에 모아놓은 사진들이 수만점인데 컴퓨터를 없애면 사진도 다 없어지고.. 내 인생을 사진으로 한번 말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간 미국서부여행을 소재로 한 것과 14일간 로키산맥의 위험한 광산도로를 누비며 촬영한 것을 사진책(포토북)으로 만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 그의 생애 첫 개인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막상 전시회 준비에 들어갔지만 교회 공간 문제로 작품이 30점으로 제한돼 고르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단다. “여행과 종교 풍경 등 여러 장르를 넣느라 두서없는 전시회가 됐다”며 웃었지만 개막 일주일도 안돼 18개 작품이 팔려나갈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당초 전시일정도 22일까지였지만 주위의 요청으로 26일로 늦춰졌다. “돈이 얼마나 됐든간에 작품들이 많이 팔렸다니까 기분은 좋네요. 내가 세상에 없어도 이 작품들이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면 정말 행복한거지요.”
그가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48년전인 영등포고 2학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제 ‘웨스트 MAT35’ 카메라에 그만 꽂혀 3개월치 공납금을 주고 덜컥 사버렸다. 그 무렵 친구들과 경주 부산 등지로 한달에 걸친 무전여행도 했다니 사진과 여행은 그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찰떡궁합이었다.
74년 아내 김후자씨와 함께 도미(渡美)한 그는 처남이 있던 켄터키 루이빌에서 살다가 79년 애틀랜타에 정착했다. 그로서리 마켓으로 악착같이 일을 했고 24시간 돌아가는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3개까지 늘릴 수 있었다.
더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그는 현지인들에게 계산대를 맡기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일단 배고픈 단계를 벗어나면 돈버는 것에 집착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흑인지역에선 흑인 종업원을, 백인지역에선 백인종업원을 쓰는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줄것 주고 믿고 맡기니까 고객들과 문제가 생길 일이 없어요. 자연히 저도 여가를 즐길 시간이 생기는거죠.”
숱한 여행을 했지만 여행경비는 놀랄 정도로 적게 든다. 수년전 28일간의 인도여행은 1300달러의 항공료를 제외하고 단 480달러가 들었단다. 절약여행을 위해 그는 1년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한다. 조지아산악회 멤버 12명이 18일간 여행을 갈 때는 9인승 캠핑카에 텐트를 싣고 가 숙박비용을 고스란히 줄일 수 있었다.
그의 흥미진진한 여행담과 사진들은 블로그 ‘김종석 사진이야기(blog.daum.net/johnkimphoto)를 통해 만날 수 있다. 24일부터는 ‘개인사진전’ 코너를 만들어 ‘그리스 산토리니 교회 그림자’ 등 이번 개인전에 전시한 작품을 주제별로 연재하고 있다.
“100살을 살아도 지루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남이 못해본 것을 해봤습니다. 후회하는 인생이 되어선 안되잖아요.”
뉴욕=노창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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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만에 방문한 경주<꼬리뉴스>
볼리비아 아마존강을 가다 <김종석 사진갤러리 발췌>
볼리비아 여행중에 예정에 없던 아마존지역 으로 가기로 했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는 해발 4050m 고산도시 이며 온도는 화씨40도(섭시5도) 정도라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고산 증세에 맞물려 추위가 뼈속까지 파고든다
호텔에도 히터는 아예없고 심지어 더운물도 없어 세수 하기도 귀찮아진다.
혹시나 하고 식당이나 술집에 가봐도 사정은 마찬가지,
어디를 둘러봐도 내몸보다 따뜻한 곳이 없다.
앞으로 상당기간 고산지역으로 여행 schdule이 잡혀 있는지라
며칠만이라도 고산증세에서 벗어나 따뜻한 지방에 가 몸을 추스리기로 했다 ,
한마디로 여행중에 휴식을 갖기로 한 셈이다,
이튿날 바로 실행이다. 비행기로 한시간,아마존 상류 Trinidad .
아 얼마나 따사로한 빛인가 숨쉬기도 편하고.
우선 아마존을 여행하기 위해 정보 수집차 오도바이를 빌려타고 강가로 갔다.
강가 구멍가게에 들러 배를 한대 수소문하니 구멍가게 주인이 자기가 배는 한대 있는대 엔진이 없단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올테니 엔진을 구해 놓으라고 단단이 당부를 하고 돌아 오는길에 시장에 가서 과일가게에 들러 파인애플을 사니 써비스로 먹을수있게 칼로 벗겨준다. 파인애플 맛이 이럴수가---- 달콤새콤한 맛이 지금까지 먹어온 파인애플은 무 깎아먹는 정도밖에 안 되는것같다. 과일은 나무에서 저절로 익은 것이라야 제맛 인가보다.
어찌나 맛이 좋았던지 거기 머무는 동안 매일 사먹었다.
비록 바가지는 썼지만 그래도 파인애플 3개에 먹을수 있게 벗겨주고 2불인데 나도 리즌어불한 바가지는 기꺼이 쓰기로 했다.
저 아줌마 우리에게 바가지 쒸우며 얼마나 신이났는지 프라스틱.의자를 빌려와 앉으라고 권하고 다먹고 났더니 물까지 떠 와 손 씻으라고 한다
때로는 바가지도 써볼만한겨. 우리가 가진거 라고는 돈밖에 더 있어 .
야~ 2불 갖고 너무 광 내지마라. 병길이 형님이 나무란다
암튼 아줌마 고맙고 수고 하셨슈.
해가 어둑할 무렵 더위도 좀 가시고 아마존 강가를 조그만 오토바이를 타고
내 달리는 기분 여기 오기를 참 잘했다 생각이든다.
이튿날 아침 오도바이를 빌려 배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한곳을 향해 길을 떠난다 .
숙소에서 강가까지 오도바이로 40여분 거리인데
아침나절 이라 바람도 시원하고 미국과 달리 핼멧을 안 써도 되니 기분이 그리 상괘 할수가없다.
비포장도로에 비가 뿌린탓에 군데군데 물이 고인데가 많지만 병길이 형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요리조리 피해 가지만 병길이 형은 오도바이 못타는 친구를 뒤에 태우니 아무래도 뒤 쳐진다.
Rainforest 는 항상 내마음을 들뜨게한다.
주변에는 파파야나무 망고나무가 많이보이고 길가주변에는 야자나무 같은걸로 얼기설기 만든지붕에
나무판자로 적당히 지은 초라해 보이는 집들, 모든것이 정겨워 보인다
강가에 거의 다다를 무렵 검문소에서 우리를 세운다 .
어제 이곳을 지날때 정지명령을 어기고 우리가 도망을 갔단다.
생각해보니 이곳을 지날때 무슨 부르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그게 우리를 부르는 소리인줄 몰랐다.
아마존 강가에 웬 검문소?
전에 들은 애기로는 안데스 산맥 산중에서 재배한 마약 코카인을 아마존강을 통해 콜롬비아로 전해지는 루트라 들었다.
우리일행이 관광객인지 금새 알아차리고 패스포드를 내놓으란다.
패스포드는 절대로 안돼지 .이런경우 패스포드를 건네주면 꼼짝 못하고 코가 꿰는것을 오랜 여행경험을 통해 터득한것이다.
못들은척 하고 조지아 운전면허증을 건넨다 .
앞뒤로 살펴 보지만 영어로 쓰여있는 면허증 지가 알수가 있겠나
검문에 불응 했으니 두손을 모아 수갑찬 흉내를 내며 잡아갈 수도 있는데 통행료를 내란다.
내가 오직 할수있는 스패니쉬말 관또게스타(얼마요)
흥정 끝에 세명이서 약 2불정도 되는 돈을주었다.
다른 사람들 다 그냥 지나가는데 왜 우리만 내느냐 따지면 되겠지만
권총찬 공권력? 에 도전해서 아침부터 기분 잡치고 싶지 않았다.
돈을 건네니 금방 우리에게 친절하게 군다. 못사는 나라에서 부정부패는 다 인정된 사회 부조리 아니든가.
우리나라도 얼마전 까지만 해도 그러하지 않았나.
배도있고 엔진도 구해 왔고 휘발유 까지 준비되었으니 준비 완료.
떠나기 전에 아침 으로 라면을 끊이기로 했다.
현지음식에 물리고 얼큰한것이 생각날때 아껴 두었던 라면을 끊인다.
우리같은 여행자에게 신라면이 얼마나 소중한가
배낭 한구석에 잘 모셔 두었던 라면. 꺼내면서 다시 세어본다
몇개가 남았는지.라면을 끓이려고 부엌에 가서 물독을 열어 냄비에 물을 넣고 보니
붉으스레 한것이 여과되지 않은 아마존강 물 그대로이다.
끓여 먹는데 괜찮겠지…
구멍가게 집 딸래미 한 열살 정도인데 꽤나 바지런하다 라면 끓이는데 불 켜주고
수저 접시 준비하고 가게 손님오면 물건팔고 참으로 똘망똘망한 아이다 .
접시하나를 더 달래서 우리일행 셋하고 그집 딸네미 것하고 넷이서 라면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딸이 부산을 떨며 일하는데 한쪽 구석에 앉아 우리를 쳐다만 보고있는 어머니 얼굴이 밝지가않다.
알고보니 중풍으로 반신을 못쓴다.
30대 후반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젊은 나이에 참으로 딱해 보인다.
우리가 쓸 휘발류를 사갖고 들어서는 남편을 보고 살며시 미소 짓는다.
저렇게 예쁜 마누라, 건강하고 잘생긴 남편, 똘망똘망한 딸, 그리고 아들, 참으로 다정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인데.
중풍 맞은지 6개월 됐다는데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 해본다.
특히 춘삼이 형 몹시 안타까워 한다. 침을 맞으면 나을수 있는데
저 병은 침으로 밖에 못 고치는데 하며 남편한테 네 부인 침을 맞으면 나을수 있다고 열심히 설명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의사 소통이 안 된다. 그네들이 침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반신불수 부인을 뒤로한채 우리일행이 배에 오르자 그집 딸하고 아들도 같이가고 싶어 하는데
아버지가 안 된다고 호통을친다.데려가도 우리에게 짐이 될것 같지않아 타라고 하자 아주 신이 났다.
배라고 해봤자 통나무 속을 파내고 배모양으로 깎은 커누 같은 것인데 오래 되어서 인지 바닥에서 연실 물이 새 들어온다
이 집딸 바가지로 물을 계속 퍼낸다.저놈을 안데려 왔으면 저일은 내가 해야할 일인데.
구멍가게 에서는 손님에게 물건팔고 라면 끓일때 우리를 돕고,
배를 타더니 시키기도 전에 물을 퍼내고 참으로 영특한 아이다.
저놈이 아마존이 아니고 미국이나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제몫을 단단이 할 아이다.
하늘은 저 아이에게 부지런함과 풍요로움을 다같이 주지는 않는구나.
문득 우리 아이들 생각이난다.
고요한 아마존에 6명을 태우고 엔진이 깨질것같이 내달린다.
한참을 가더니 어느 민가에 배를댄다.엔진소리가 멈추니 그집내외가 위에서 내려다 보며 우리를 맞이해준다
배주인하고 인사하는 모양이 서로 아는 사이 인것같다.
우리를 인사소개 시키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그네 식대로 볼을 나에게 맞 댈려는데
나는 얼른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고 말았다.
조금은 어색해서 웃고 말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 식 대로 하는건데.....
집주위를 돌아보니 돼지를 놓아 기르는데 개처럼 사람을 꿀꿀대며 따라다닌다.
앞뜰에 옷 잘입은 큰앵무새가 있는데 속 깃털을 잘라서 날르지는 못하고 집주변을 기어만 다닌다
이쁘다고 손을가까이 대면 무는데 전에 이놈들한테 물려 손가락에 피가 난 경험이 있다.
뒤뜰에 아름드리 망고나무가 있지만 따먹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바닥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약간 시며 단맛, 열대 과일 중에 망고가 으뜸이리라, 단맛 때문에 벌이 망고를 파먹느라 우글댄다 .
집주인 할아버지 웃통을 벗었는데 모기가 수십마리 등에 붙어 있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
우리는 keep off 모기약을 전신에 뿌렸는데 물지는 못하고 귓가에서만 윙윙댄다.
떠나오는데 할아버지가 배주인한테 파파야, 망고, 바나나 를 따서 한짐 지워준다 하기야
이분들 이런것들을 현금화 하기는 힘들겠다 하는생각이든다
이런과일 따서 엔진 달린 배로 읍내 까지 오면 아마 운송비가 더 들겠지.
떠나면서 사진 찍겠다고 하니 기다리란다. 방에 들어가서 웃옷을 입고서야 카메라 앞에 서신다.
이런 분깨 사진을 보내주면 좋아하실텐데 이런곳에 사시는 분들은 우편주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편지를 보낼수 없는곳이다. 누구든 그네들에 삶을 간섭 하는 사람도 없고 세금 내라는 독촉장도 없으니
그들에 삶이 진정 인간 다운것은 아닌지?
셀폰, 아이팟, 컴퓨터,이들에게 소용이 닿지않는 물건들이고,우리는 그걸위해 악다구리 부리고살지않나?
작은것과 적은것에서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함에도 우메스러운 삶이 전부인듯 착각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것을 이런 기회를 통 해서 조금이라도 깨우친다면 또 하나 이번 여행에서의 의미 이리라.
암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세상에 부러움 없으신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