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꼬리뉴스
·꼬리뉴스 (13094)
·뉴스로 창(窓) (274)
·뉴스로TV (127)
꼬리뉴스
육하원칙(六何原則)?역(逆)피라미드 형식의 스트레이트 뉴스? 정형화, 제도화된 뉴스만 뉴스가 아니다. 뉴스뒤의 뉴스, 뉴스속의 뉴스를 읽자. 뉴스로에선 "꼬리뉴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선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뒷 이야기, 기감 없는 에피소드, 촌철살인의 한마디까지, 뉴스로 독자들은 정규뉴스 바로 뒤에 물리는 꼬리뉴스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틀에 박힌 뉴스는 거부합니다. 오직 뉴스로만이 가능한 꼬리뉴스에서 뉴스의 새로운 멋과 맛을 느끼십시오.

총 게시물 13,094건, 최근 5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국립중앙박물관 이화문보검은 고종의 칼?

글쓴이 : 민지영 날짜 : 2013-11-04 (월) 00:06:46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화문 보검이 대한제국 황제의 도검일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가 보도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3일 국립중앙박물관에 60년 넘게 정확한 출처가 없이 소장된 이화문 보검이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안민석 의원과 혜문스님은 지난달 30일 국립중앙박물관을 직접 방문, 이화문 보검에 대한 소장 경로를 확인한 결과 이 칼이 울사조약 당시 일본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해방후 미군정이 보관하다 정부수립후 이관됐으나 6.25 전쟁중 도난된 유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안민석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이화문 보검이 조선 왕실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추정되며 사용자, 제작연도, 제작 목적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안민석 의원은 “칼의 이화문양이 선명할 뿐만 아니라 고종의 대례복 착용 사진에서 보이는 도검의 모양과 유사하다. 황실의 소장품이었다면 고종이 사용한 칼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당시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101헌병대 및 서울시 경찰국 수사과는 서울 관훈동 고물상을 수색, 은닉해 둔 이화문조각보검을 입수, 한국은행에 보관하다 조선 왕실 유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 조치했다.


이화문 보검은 을사조약 당시 일본에 강탈된 후 1946년 8월 15일 맥아더 사령부 군정장관 하지 중장이 임시보관하다가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이를 인수하여 모처에 보관하던 중 분실되어 한국전쟁 후 불법 유출돼 관훈동 골동상에 흘러가 이를 외국인 모 소령에게 매도하려다가 수사 당국에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혜문스님도 “고종의 대원수 군복도 68년 육사박물관 이강칠 관장에 의해 인사동 골동품상에서 발견된 정황으로 볼 때 전쟁 당시 황실에 보관되었던 황제의 칼도 도난당해 흘러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혜문스님은 “칼 손잡이 전체가 금으로 장식되었고, 특히 칼에 늘어뜨리는 술이 금사(금으로 만든 실)로 만들어 진 점이 인상적”이라며 “대한제국기 최고 지위의 황제가 사용했던 물건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뉴욕에 거주하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 이해경(황실명 이공) 여사는 “문양과 형태로 미뤄 조선왕실의 유물이 분명하다. 을사조약이후 강탈된 유물이라면 고종황제의 대례복 사진에 나오는 도검과 동일한 칼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경 여사는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자녀로 의친왕비의 호적에 입적되어 함께 궁(사동궁) 생활을 한 유일한 생존인물이다. 고종황제의 풍모를 빼닮은 이해경 여사는 “이화문양은 대례복과 보검 등에 어김없이 나오는데 아버지 의친왕께서도 도검을 착용하고 계신 것으로 기억한다. 사동궁에도 도검 등 많은 유물들이 있었는데 6.25 피난통에 도둑맞거나 분실된게 많다”고 말했다.



안민석의원과 혜문스님은 열람 당시 칼집에서 칼을 뽑아 명문 등을 확인해보고자 했으나, 오랜 기간 칼을 손보지 않아 안전장치 등이 녹슬어 뽑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손잡이를 분해하거나 칼날을 확인하면 구체적인 단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향후 X 선검사 등을 통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정확한 기록없이 61년간 방치된 이화문 보검이 6.25 당시 황실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이 칼이 황제의 칼로 확인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보관하던 궁중유물이 누구의 책임하에 어떤 경로로 빠져나갔는지 조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robin@newsis.com


 
 
 

<꼬리뉴스>


이화문보검 을사조약당시 일본에 약탈


다음은 안민석 의원실에 보내온 국립중앙박물관의 답변서


이화문 조각보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장은정, 2077-9395)



ㅇ 1952년 2월 13일 오후 3시 김완룡 서울지구 계엄민사부장의 지휘하에 101헌병대 및 서울시 경찰국 수사과가 서울시내 고물상(관훈동 142번지, 한장수 경영)을 습격하여 은닉해 둔 이화문조각보검과(신수210)과 함께 발견하여 압수한 후 한국은행에 보관(경향신문, 1952년 2월 18일자 보도)
ㅇ 국방부는 총무처에 동 압수품의 처리 방법 의뢰(1952. 3. 10.)
ㅇ 총무처가 국립박물관에 동 압수품의 진상 의뢰(1952. 3. 13.)
ㅇ 국립박물관은 동 압수품이 당관 소장품은 아니나 조선 왕실 유물로 추정되므로 박물관에 이관 조치되는 것이 적절함을 회신(1952. 4. 4.)
ㅇ 총무처는 국립박물관과 국방부가 직접 연락하여 동 압수품의 회수에 관한 건을 처리할 것을 통지(1952. 4. 10.)
ㅇ 국방부가 계엄사령부에 동 문화재를 국립박물관에 이관할 것을 통지(1952. 4. 23.)
ㅇ 문교부가 국립박물관에게 서울계엄민사부와 연락하여 동 압수품을 인수할 것을 통지(1952. 4. 26.)
ㅇ 국립박물관이 서울계엄민사부에 동 압수품의 인수 협조 요청(1952. 5. 5.)
ㅇ 국립박물관이 서울계엄민사부로부터 동 압수품 인수(1952. 5. 21.)
※ 위의 소장 경위는 2013.10.18.(금) 제출한 환수 경위 관련 문서에 근거 한 것이며, 보다 자세한 사항은 제출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전 소장처
ㅇ 이화문조각보검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기 이전 소장처에 대한 기록은 아래 신문 기사를 통해서만 확인되고 있으며, 우리 관은 이에 대한 별도의 기록은 가지고 있지 않음.


ㅇ 을사조약 당시(기사에 명시된 시기 불명확) 일본 정부에게 조약문과 함께 강탈된 후 1946년 8월 15일 맥아더 사령부로부터 당시 군정장관인 하지 중장이 8․15기념식 전날 오세창에게 조약문과 함께 반환하였으나, 다시 하지 중장이 이를 임시보관하게 됨. 이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이를 인수하여 모처에 보관하던 중 분실되어 한국전쟁 후 불법 유출되던 중 관훈동 142번지에서 골동상을 경영하는 한장수에게 전해짐. 한장수는 이를 외국인 모 소령에게 매도하려다가 수사 당국에 적발되었음(경향신문, 1952년 2월 19일자 보도)


- 보검의 사용자, 제작연도, 제작목적

 
ㅇ 이화문조각보검은 조선 왕실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사용자, 제작연도, 제작 목적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음.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등록일 : 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607-204 / 전화 : 010-2041-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