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뉴미디어의 장르를 넘나드는 백평훈 감독.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을 아우르는 김기화 안무가.
두 사람이 콤비를 이룬 이색 작품 ‘더 우먼(The Woman)’이 뉴욕 맨해튼의 갤러리에서 선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더 우먼’은 지난 18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맨해튼 소호20 첼시갤러리(Soho20 Chelsea Gallery)에서 열리는 그룹전시 ‘위민 인 차지(Women In Charge)’의 메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의 리더십을 테마로 한 이번 전시는 여러 예술가들이 탐구하는 ‘여성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백평훈 감독의 ‘더 우먼’은 단연 튀는 작품이다.
작은 모니터와 헤드셋, 그리고 앞에 걸린 짚신. 모니터에선 한 여인의 신비로운 춤사위가 펼쳐진다. 갤러리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작품앞에 섰다가 헤드셋을 써 본다. 그리고 이내 영상과 소리에 고요히 빠져든다.
‘더 우먼’은 지난한 역사속의 한국 여성을 비롯한, 사회 속에서 약자(弱者)였던 여성의 삶을 표현 한 것이다. 모니터를 통한 백평훈 감독의 짧은 영화는 여성의 사회적 과도기를 절제된 영상으로 함축(含蓄)하고 있다. 특히 비가 내리는 장면은 여성의식의 전환을 나타내는 실마리로 탁월한 영상미로 감탄을 자아낸다.
극의 초반부가 억압된 여성의 의식을 영상적 해석으로 드러냈다면 말미에 비춰진 빗속에 남겨진 ‘짚신’은 얽매임에 대한 해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화속의 짚신과 갤러리의 짚신이 갖는 의미를 각자의 해석으로 풀어낸다.
‘더 우먼’은 2011년, 매 달 새로운 댄스필름이 상영되는 ‘댄스 메이드 투 오더(Dances Made To Order)’ 에서 처음 선보였던 영상이다. 당시 ‘댄스 메이드 투 오더’의 킹슬리 아이런(Kingsley Irons) 디렉터가 뉴욕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주목을 받고 있었던 백평훈 감독에게 직접 러브콜해 탄생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아리랑 블루스(Arirang Blues)’와 ‘바운더리(Boundary)’를 통해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 뭉클하게 다뤘던 백평훈 감독은 최근 김기화 안무가와 함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잇따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오는 24일까지 역시 첼시의 쿠하우스(Coohaus) 갤러리에서 계속되는 ‘Variation on the Canon’에서 백평훈 감독은 ‘허트(Hurt)’ 사진 시리즈 중 하나를 소개했다. 인간의 아픔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한 디지털 아트인 ‘허트’는 무대에서 ‘브로큰 윙(Broken Wing)’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것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브로큰 윙’은 김기화 안무가가 뉴욕대 대학원 수잔 코프(Susan Koff) 교수와 함께 공동 안무한 작품으로 공연 당시 많은 관객들을 울렸다는 후문이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넘나들며 특유의 느낌을 거침없이 전달하는 그이의 ‘더 우먼’ 역시 여성의 억압(抑壓)과 자유(自由) 그리고 감성(感性)을 춤으로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김기화 안무가는 “백평훈 감독과 영화제작 현장에서도 영화의 흐름이나 촬영적 아이디어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더 우먼’에서도 여성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댄스 컴퍼니에서 주목을 받았던 유명 안무가 더글라스 던(Douglas Dunn)에게 발탁돼 그의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위민 인 차지‘ 오프닝 리셉션 라이브무용 펼쳐
그룹전 ‘위민 인 차지(Women in Charge)’의 기획의도는 현대 사회 속의 여성의 영향력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자리에서는 여성의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에서 비롯됐다.
“여성에 대한 의식이 많이 변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신분은 아주 변한 것이 아닌 과도기에 있다”라고 말하는 백평훈 감독의 ‘더 우먼’이 소호20 첼시 갤러리의 그룹전시의 기획의도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은 자명하다.
무용의 장르와 장소의 한계를 넘어서 몸으로 표현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안무가 김기화와 여성과 삶에 대한 실험영화를 많이 만들어 온 감독 백평훈이 힘을 합친 ‘더 우먼’ 앞에서 많은 방문자들은 오랫동안 서서 감상하고 지나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그룹 전시회엔 다양한 예술가들의 사진, 영상, 인스톨레이션, 조각들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시되어 있다.
한편 18일에 있었던 리셉션에서는 Soho20 첼시갤러리의 큰 규모에 맞게 두 명의 무용가들의 라이브 퍼포먼스도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