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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한인청소년 서재필박사 유적지탐방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07-30 (화) 07:44:29

  

 

광복의 달 8월에 미주 한인들이 송재(松齋) 서재필 박사 유적지 탐방을 계획해 관심이 일고 있다.

 

 

대뉴욕광복회(회장 이용찬)가 주최하고 뉴욕한인학부모협의회(회장 최윤희 라정미)가 후원하는 제2회 서재필 박사 유적지 탐방이 다음달 7일 열린다. 구한말 선각자이자 독립운동에 평생 헌신한 서재필 박사는 1925년부터 별세(別世)한 1951년까지 필라델피아 이스트 링컨스트릿의 하우스에 거주했다.

 

 

  

 

 

이 집은 87년 서재필재단이 인수해 90년부터 일반에 공개됐으며 필라델피아 주정부가 사적지로 지정했다. 한인 초, 중, 고교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탐방은 지난 2007년 첫 행사이후 5년만에 열리게 되어 더욱 관심을 모은다.

 

 

당시에도 대뉴욕지구광복회와 뉴욕한인학부모협회가 행사를 열어 참가자들이 기념관을 방문해 서재필 박사의 기록물과 유품 등을 둘러보고 애국가와 아리랑을 배우고 한국 역사 퀴즈게임 등을 즐기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용찬 회장은 “우리 자녀들에게 일제 치하에서 나라를 찾기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의 독립 정신과 애국심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특히 서재필 박사님이 미국시민권자 1호라는 점에서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자세와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윤희 회장도 “이번 탐방은 광복 68주년 되는 뜻 깊은 해에 독립 운동가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행로는 민족의식의 산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며 “자라나는 후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미 주류사회에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일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재필 박사 유적지 탐방이 무려 5년만에 재개된 것은 예산 때문이다. 탐방지까지의 하루 여정이 식사를 포함, 전액 무료로 진행되지만 특별한 스폰서가 없어 예산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탐방을 위한 예산도 연로한 광복회 회원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성금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윤희 회장은 “미국의 학교에선 박물관이나 역사기념관 등을 수시로 방문하며 역사를 배우고 그들의 영웅에 대해 공부한다”면서 “우리 주변에도 서재필 애국지사와 같은 위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있는데 예산 때문에 자주 할 수 없다는게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2세, 3세들은 물론, 부모세대들의 롤 모델로 서재필 박사만큼 훌륭한 분이 없다. 우리 한인사회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 서재필 박사

 

 

서재필(徐載弼, 1864년 1월 7일 ~ 1951년 1월 5일) 박사는 조선의 무신, 대한제국의 정치인, 언론인이자 미국 국적의 한국 독립운동가, 언론인, 군의관, 정치인, 의학자였다. 미국에서 해부학자, 의사로 활동했다. 미국 귀화명은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 Philip Jason)이다.

 

 

다음은 위키피디아의 자료.

 

 

1882년(고종 20년) 과거에 급제, 교서관부정자(校書館副正字)로 관직에 올랐다. 그 뒤 승문원부정자, 훈련원부봉사를 거쳐 1883년 일본으로 유학, 게이오 의숙과 토야마 육군하사관학교의 단기 군사훈련을 받고 1884년 귀국했다. 귀국 직후, 병조 조련국 사관장이 되었다.

 

 

김옥균, 홍영식, 윤치호, 박영효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일본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가 망명 생활을 했다. 1895년 귀국하여 독립 협회를 조직했다. 이후 독립협회를 통해 토론회와 강연회, 상소 활동, 집회 및 시위 등을 주도했고, 민주주의와 참정권(參政權)을 소개하고, 신문물 견학을 위한 외국 유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는데, 후일 이 신문의 창간을 기념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지정하였다.

 

 

 

 

 

그의 개화 계몽사상을 견제하던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추방된 뒤 미국에 체류, 대학을 다니며 의사로 활약했다. 이후 문구점과 상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이승만, 박용만, 안창호 등과 함께 재미한국인 교민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1919년 3.1 운동 전후, 자신이 운영하던 문구점과 가구점이 파산하면서 생계에 곤란을 겪던 그는 독립운동과 동시에 병원에 의사로 취직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중에는 징병검사관으로 봉사하여 1945년 1월 미 의회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광복 직후 미군정 사령장관 존 하지 등의 주선으로 귀국하여 미군정과 과도정부의 고문역을 역임하다가 1948년 출국 후 미국에서 병사하였다. 한때 그를 대통령 후보자로 추대하려는 운동이 있었으나 사양하였다. 1890년 6월 10일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도 했다.

 

 

 

 

 

갑신정변의 주동자라 하여 그의 두 형과 부모는 자결했고, 옥에 갇힌 그의 본처 역시 자결했다. 당시 군대에 있던 그의 동생 서재창과 동생 서재우 역시 처형되었다. 그때 그의 맏형 서재춘의 아들 중 살아남은 조카들과 서재우의 아들 등이 혈통을 이어 그 후손이 현존하고 있다. 또한 시집간 큰누나와 누군가에 의해 구출된 여동생 서기석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본관은 대구이고, 자(字)는 윤경(允卿), 호는 송재(松齋)·쌍경(雙慶)이며, 영문명은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으로 일명 “피제손” 이는 그의 이름 서재필의 글자 순서를 거꾸로 한 필재서를 음역한 것이다. 또는 또는 제이슨(Philip Jason)이라고도 자칭했다. 1900년대 당시 조선에서는 이를 다시 제선(堤仙) 또는 피제선(皮堤仙)으로 음역하였다. 필명은 오시아(N. H. Osia).

 

전라도 보성군에서 태어났고 본가는 충청남도에 있어 충남 출신으로도 고려된다. 그는 한국인 출신 최초의 의학박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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