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경각심과 삶에 대한 실험영화를 많이 만들어 온 백평훈 감독의 독특한 디지털 아트가 뉴욕 첼시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출품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1일 개막해 24일까지 첼시의 쿠하우스(Coohaus)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서 백평훈 감독은 ‘허트(Hurt)’ 사진 시리즈 중 하나를 소개했다. 인간의 아픔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한 디지털 아트인 ‘허트’는 무대에서 ‘브로큰 윙(Broken Wing)’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것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브로큰 윙’은 뉴욕대 대학원 수잔 코프(Susan Koff) 교수와 뉴욕에서 활동중인 김기화 안무가가 함께 안무(按舞)한 작품이다.
보통 무용사진은 완벽한 몸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떠올리기 쉽지만 백평훈 감독의 사진은 처음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작품 ‘허트’가 무용수의 ‘등’에 시선을 맞춘 이유다. ‘무용수의 등이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가 작품의 중점인 셈이다.
백평훈 감독은 “실험 영화를 많이 만들어 온 경험 때문에 사진 속에 대상의 감정을 싣는 것에 더욱 집중한다”면서 “무용수가 아름다운 포즈를 취할 때보다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무용수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백평훈 감독의 또다른 작품은 쿠하우스 바로 옆에 위치한 소호20(Soho20) 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18일부터 상영 및 전시되는 ‘더 우먼(The Woman)’이다.
2011년 ‘댄스 메이드 투 오더(Dances Made To Order)’라는 댄스필름 영화제에서 초연(初演) 된 ‘더 우먼’은 “붓 대신 카메라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고 평가할만큼 탁월한 영상미로 관객들의 격찬을 받았다.
내러티브 형식을 벗어나 영화와 비디오 아트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작품으로 뮤지션 차승민, 교코 키타무라, 아키코 사사키의 인상적인 실험음악도 감상 할 수 있다.
‘위민 인 차지(Women In Charge)’라는 타이틀 아래 열리는 소호20 전시회는 사회속에서 리더로서 살아가는 ‘여성들’과 미래의 일꾼이 될 젊은 여성들에게 롤 모델로서 영감을 주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수 만날 수 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백평훈감독 지난해 5월 ‘바디로그’ 전시회
백평훈 감독은 지난해 5월엔 뉴욕 롱아일랜드 시티 소재 ‘오픈 스페이스 갤러리에서 생애 첫 단독전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비주얼아티스트이자 독립영화감독인 그이의 ‘바디로그(Body-logue)’ 전시회였다. 전시공간엔 스무점 남짓한 작품들이 독특한 영상과 사진을 선사하고 있었다.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가 되는 푸르고 보랏빛, 연홍색의 파스톤컬러가 교차하는 영상(映像)은 산처럼 솟아올랐다가 계곡처럼 침잠하는, 때로는 물결같은 잔영들이 투영됐다. 화면을 가로로 분할하며, 고동치는 심장이 멎은듯한 짧은 정지선들은 격렬한 빛의 파동(波動)을 순식간에 잠재운다.
단지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투사되는 빛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자가 영상과 결합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컬러 오케스트라(1분48초 2008년)’에 대해 그는 “말은 한마디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부드럽게 감쌀 수도 있다. 같은 말로 높낮이에 따라 다른 의도를 줄 수 있다. 이러한 파동의 그래프를 보고 느끼는 침묵의 대화가 우리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갤러리 왼편에 걸린 아홉점의 사진들의 제목도 그래서 ‘무제(Untitlied)’이다. 오른편 벽에 걸린 포스터 크기의 두점을 포함, 사진들은 공통점이 있다. 무용(Dance)이었다.
‘바디로그’가 몸(Body)과 대화(Dialogue)의 합성어이고 몸의 움직임을 통해 진실된 ‘소통’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출입구 벽에 걸린 두점의 컬러작품, ‘Andante’와 ‘Apart A Part’ 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현대무용의 장면을 담은 이 작품들 앞에는 헤드폰이 걸려 있다. 헤드폰을 끼자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이자 안무가인 김기화 씨는 “무용가가 공연한 무대에서 나온 음악들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무용가가 표현하는 육체의 언어를 음악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바디로그’엔 숨어있는 작품을 찾는 즐거움도 누린다. 왼편 사진들 아래 놓인 두 개의 작은 상자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비디오영상들이 나오고 있다. 역시 육체의 몸짓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갤러리 입구 창에 화분사이에 장식처럼 붙은 모니터도 놓칠 수 없었다. 스마트폰만한 크기의 화면에서도 꽃의 이미지가 화사하게 빛나고 있다. 백평훈 감독은 ‘아리랑블루스’ 등 큰 반향을 일으킨 단편영화들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이지만 비주얼 아티스트로서도 여러차례 그룹전에 참여했다. 같은 기간 그의 또다른 설치작품 하나가 뉴욕의 그룹전 ‘WOMB’에 전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