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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눈의 간호사’ 나노열씨 70년대 한국풍경 수묵화 작품집 출간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12-16 (월) 13:47:54






지금은 사라진 70년대의 한국풍경을 수묵화(水墨畵)로 그려 화제를 모은 미국의 할아버지 간호사가 작품집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닐 랜드레빌(Neil Landreville 67) 씨는 70년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와서 전북 김제와 전주, 서울 신촌 등지에서 7년간 살며 나노열(羅魯烈)이라는 한국이름도 얻게 되었다. 한국의 정취와 한국인의 푸근한 정에 빠졌던 그는 미국에 돌아와 먹과 붓으로 화선지에 틈틈이 그린 한국 풍경의 수묵화 11점을 지난 8월 뉴욕 퀸즈 갤러리카페에서 전시했다.




지난 가을 그는 한국을 찾아 뜻깊은 추억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40여년전 김제 시절 인연을 맺은 후 ‘한국 엄마’라고 부르는 하숙집 아주머니와 가족들과 오래전 친하게 지낸 이웃들을 만난 것이다.

 






‘한국엄마’는 2년전 방문에서도 만났지만 동갑내기 큰아들 등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은 근 40년만의 만남이었다. 노구의 백인간호사가 수묵화로 추억하는 사연이 본지에 의해 알려지면서 한국의 매체들과 인터뷰도 했고 덕분에 더 많은 지인들을 상봉할 수 있었단다. 뉴욕에선 김제향우회원에도 가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방문길에 수묵화들을 세종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기증하는 문제도 협의했다는 그는 그림과 얽힌 이야기들을 함께 수록한 작품집 ‘한 평화봉사단 자원봉사자가 기억하는 70년대 한국(a peace corps volunteer remembers Korea in the 70s)’를 펴냈다.




 


작품집엔 전시하지 않은 두 개의 작품을 포함, 총 13점이 있고 빛바랜 ‘그때 그시절’의 흑백사진들과 현재의 한국 모습, 그리운 사람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이는 사진도 넣었다. 지난번 전시회 때 작품들을 포스트 카드형태로 만든데이어 나노열씨의 그림과 구체적인 사연들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소장용인 셈이다.


 



 


그는 작품들에서 40년전 살았던 김제와 전주, 신촌골목의 소소한 일상(日常)들을 감탄사가 불러일으킬만큼 정밀하게 묘사했다. 길거리 쓰레기통에서 미처 끄지 않은 담뱃불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부터 두터운 방한용 장갑이 핸들에 끼어진 짐자전거의 모습,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연탄 리어카’, 건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일하는 구두닦이까지..

 



 


작품 ‘포장마차’에선 전등 불빛 아래 영업중인 신촌 포장마차들의 정경이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를만큼 구체적으로 묘사됐고 ‘마산할매집’ 할머니의 에피소드도 만날 수 있다.




뉴황금당 신덕상회 봄남집 마이홈다방 태양여관….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20년전 신촌하숙집을 배경으로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주듯 나노열 씨의 작품들도 우리가 잊고 살았던 70년대의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려주는 셈이다.


 


 


밭에서 분주히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과 평화로운 원두막, 멀리 ‘미원’ 간판이 보이는 여름날 정경을 묘사한 ‘수박조각속의 여름’엔 ‘런닝구’ 차림의 젊은 나노열씨가 어린아이와 함께 수박을 먹는 사진도 곁들여졌다.


 


 


무심코 그려진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하나하나 사연이 담겨 있는, 그리운 추억의 편린들이다. 이런 모습들이 질박하고 부드러운 수묵화로 표현돼 더없이 정겹다.



‘나의 한국가족들’이라는 사진 스토리에는 그가 하숙집 식구들과 어떻게 만나서 정을 나누게 되었는지 이야기 보따리를 감상할 수 있다. 1976년 하숙집 엄마 아버지와 4남매 자녀들이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엔 ‘미국아들’인 그도 ‘당연히’ 들어있다.


 


 


20원짜리 담배 ‘백초’와 ‘아리랑’ ‘신탄진’의 값을 줄줄 꿰는 그는 “여인숙은 하루에 350원이었고 여관은 좀 비싸서 하루에 1천원 정도 했다”고 회상한다. 그 무렵 제일 좋아하는 한국 가수는 키보이스였다.



“3년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종문화회관 전시장에서 우연히 키보이스의 ‘바닷가에서’ 등 추억의 음악들이 나와 너무 좋았다”면서 “이번에 한국에 가서 배호의 더블디스크를 샀다”고 자랑했다.

 

 

나노열씨의 전시회를 감상했던 신해숙 씨(퀸즈 거주)는 “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뇌리속에 잊혀졌던 풍경들이 수묵화로 표현된 것을 보다가 옛 추억이 떠올라 눈물이 날뻔했다”면서 “이 작품들을 그린 분이 미국인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의 사연이 처음 한인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10여년간 친남매처럼 우의를 나누고 있는 황순희 씨 덕분이었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나노열 씨를 만난 그녀는 지난해 평화봉사단 관련 전시행사에서 반세기에 걸친 나씨의 특별한 한국사랑을 처음 제보했다.




 


황순희 씨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오라버니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오라버니가 미국의 동료들을 집에 초대할 때면 꼭 한국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가끔 돕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 식순이야”라고 짖궂게 농담하는 나노열 씨에 눈흘기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슬그머니 웃음이 피어오른다.





뉴욕 퀸즈의 엘머스트 병원에서 교수급 간호사로 재직한 나노열 씨는 27일 30여년의 병원근무를 마무리하는 명예로운 은퇴식을 갖는다. 그리고 내년 1월 17일 새로운 봉사 인생을 위해 에티오피아로 떠날 예정이다.


 


 


수년전부터 에티오피아를 몇 차례 방문하며 그곳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한 그는 “에티오피아는 의료시설 등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내가 할 일이 많아요. 한국은 더 이상 저같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없잖아요. 오히려 코이카라는 국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라인걸요”하고 말했다.


 


 


김치찌개와 국밥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에게 에티오피아에서 한국 음식이 그리워서 어떡하냐고 물었다. “객지에서 고생 해야죠”하며 넉넉한 미소를 짓는 그는 영락없는 한국인 ‘나노열’이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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