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재 서재필 박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뉴욕과 뉴저지, 필라델피아에서 이어지고 있다.
서 박사의 탄생일인 지난 7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기념식에 이어 뉴욕, 뉴저지 지역 단체가 공동으로 마련한 ‘서재필 박사 탄생 150주년 기념식’(대회장 윤여태 시의원)이 10일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파인플라자에서 열렸다.
대회장 윤여태 저지시티 시의원은 “계몽주의의 선각자자로 민족의 방향을 제시한 서재필 박사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환영의 말을 전했다.
서재필 기념재단의 최현태 대표는 “서재필 박사는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독립을 염원한 선구자로 미주 한인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며 “서 박사의 숭고한 조국사랑 정신이 미주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백영현 1492그린클럽회장은 “미국이 미주한인들에게 우리 후손을 맡길 수 있는 휼륭한 나라라면 대한민국은 우리 후손들의 DNA라고 말하고 싶다”며 “서재필 박사는 격동기의 등대였다. 150주년을 맞아 우리도 후손들에게 애국 애족의 등대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념식은 서재필 박사의 항일운동, 미국 망명 등의 내용이 담긴 영상물 관람순으로 진행됐고 팰리세이즈팍 고등학교 한국어반(교사 황정숙) 학생들이 서재필 박사를 주제로 한 에세이 작성을 위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서재필 재단은 기념식 이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미 우정국으로부터 공식 인증 받은 서재필 박사 기념우표 2종이 1월 중 발행되며 3월 29일에는 시티라인 소재 힐튼호텔에서 이정식 교수를 초청해 서재필 박사 탄생 150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개최할 예정이다.
미국 최초의 한인 의사이자 독립신문을 발간한 언론인, 독립운동가로 헌신한 서재필 박사는 미주한인 1호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뉴욕=민병옥특파원 newsroh@gmail.com

이상 사진 교회일보 제공
<꼬리뉴스>
미국시민권 1호 한국인 서재필 박사
서재필(徐載弼, 1864년 1월 7일 ~ 1951년 1월 5일) 혹은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 Philip Jason)은 조선의 무신, 대한제국의 정치인, 언론인이자 미국 국적의 한국 독립운동가, 언론인, 군의관, 정치인, 의학자였다. 미국에서 해부학자, 의사로 활동했다.
1882년(고종 20년) 과거에 급제, 교서관부정자(校書館副正字)로 관직에 올랐다. 그 뒤 승문원부정자, 훈련원부봉사를 거쳐 1883년 일본으로 유학, 게이오 의숙과 토야마 육군하사관학교의 단기 군사훈련을 받고 1884년 귀국했다. 귀국 직후, 병조 조련국 사관장이 되었다. 김옥균, 홍영식, 윤치호, 박영효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일본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가 망명 생활을 했다. 1895년 귀국하여 독립 협회를 조직했다. 이후 독립협회를 통해 토론회와 강연회, 상소 활동, 집회 및 시위 등을 주도했고, 민주주의와 참정권(參政權)을 소개하고, 신문물 견학을 위한 외국 유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는데, 후일 이 신문의 창간을 기념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지정하였다.
그의 개화 계몽사상을 견제하던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추방된 뒤 미국에 체류, 대학을 다니며 의사로 활약했다. 이후 문구점과 상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이승만, 박용만, 안창호 등과 함께 재미한국인 교민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1919년 3.1 운동 전후, 자신이 운영하던 문구점과 가구점이 파산하면서 생계에 곤란을 겪던 그는 독립운동과 동시에 병원에 의사로 취직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중에는 징병검사관으로 봉사하여 1945년 1월 미 의회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광복 직후 미군정 사령장관 존 하지 등의 주선으로 귀국하여 미군정과 과도정부의 고문역을 역임하다가 1948년 출국 후 미국에서 병사하였다. 한때 그를 대통령 후보자로 추대하려는 운동이 있었으나 국회 투표에서 1표를 얻었다. 1890년 6월 10일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도 했다.
갑신정변의 주동자라 하여 그의 두 형과 부모는 자결했고, 옥에 갇힌 그의 본처 역시 자결했다. 당시 군대에 있던 그의 동생 서재창 역시 처형되었다. 그때 그의 맏형 서재춘의 아들 중 살아남은 조카들과 동생 서재창의 유복자, 서재우의 아들 등이 혈통을 이어 그 후손이 현존하고 있다. 또한 시집간 큰누나와 누군가에 의해 구출된 여동생 서기석 등은 겨우 살아남았다.
본관은 대구이고, 자(字)는 윤경(允卿), 호는 송재(松齋)·쌍경(雙慶)이며, 영문명은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으로 일명 “피제손” 이는 그의 이름 서재필의 글자 순서를 거꾸로 한 필재서를 음역한 것이다. 또는 제이슨(Philip Jason)이라고도 자칭했다. 1900년대 당시 조선에서는 이를 다시 제선(堤仙) 또는 피제선(皮堤仙)으로 음역하였다. 필명은 오시아(N. H. Osia) 전라도 보성군에서 태어났고 본가는 충청남도 논산에 있었고 논산과 대전에서 성장했으므로 충남 출신으로도 간주된다. 그는 한국인 출신 최초의 의학박사이기도 했다. 김성근(金聲根),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의 문인이다.
<이상 자료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