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농구교실의 원조, 프로농구 에이전트1호, 남북통일농구 특별상 기획자...
박명호 원장(45)은 독특한 이력의 농구인이다. 20대에는 가수 매니지먼트를 했고 30대에 농구판에 복귀, 프로농구스타들의 에이전트 계약을 주도하며 선수 매니지먼트의 개념을 도입했다.
2000년엔 우리나라 스포츠사상 처음으로 한국프로농구 수퍼스타인 이상민을 비롯, 김병철, 김 훈, 조성원과 에이전트 계약을 해서 화제를 모았다. IMF 여파로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허 재와 강동희, 이상민 등 최고 스타들을 섭외해 결식아동돕기 자선음반 ‘별들의 전쟁’을 출시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상민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고 프로선수 1호로 이상민 농구교실을 경기도 일산 등지에 오픈해 오늘날 전국적인 어린이농구교실의 붐을 촉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 이상민이 현역시절 '이상민농구교실' 어린이들과 함께 한 모습.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유소년농구교실이다. 호칭인 원장도 바로 농구교실을 시작하면서 가진 직함이다. 그 자신 농구선수로 활약했기에 농구교실를 통한 어린이 건강증진과 저변확대, 그리고 농구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익을 담당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런 그가 부산에서 일단의 농구인들과 함께 새롭게 유소년농구교실을 열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 겨울부터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 유초등생, 중학생 대상의 농구교실을 오픈하는 것.
부산시 북구 화명동과 동래구, 해운대구, 수영구 등 5개 지역에서 운영되는 농구교실은 과거 이상민농구교실을 운영하던 경험과 노하우가 응축돼 있다. 박명호 원장은 “수년전부터 수도권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어린이농구교실이 많이 생겨났지만 비농구인들이 운영하거나 지나치게 상업적으로만 접근하는 곳들이 많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농구교실을 위해 파트너로 손잡은 후배 오승환 실장과 이은호 등 프로리그에서 심판 및 선수로 활약한 전문가와 선수 출신의 젊은 코치들도 가세했다. 박 원장은 “농구전문가들이 직접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점에서 교육수준이 다르고 재미도 훨씬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농구는 그야말로 전신운동이다. 요즘 부모들이 선호하는 키 큰 자녀들을 위해선 농구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농구예찬론을 폈다.
유소년중에서 미래의 스타들을 발굴할 자신이 있다는 그는 “한국농구가 프로리그 출범이후 학교팀들이 줄어드는 등 저변이 축소되고 수준도 떨어졌다. 90년대까지 중국와 자웅을 겨루던 한국농구가 지금은 아시아 4강도 힘들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학교체육과 사회체육이 균형을 이루는 선진국 시스템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박명호 원장은 “농구교실의 활성화로 저변을 넓히면 8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의 인기도 회복하고 유망주들도 많이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산=노창현기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북한에서 여는 통일어린이농구교실”
박명호 원장은 언젠가 통일어린이농구교실을 열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갖고 있다.
지난 2002년 서울서 열린 남북통일농구대회 때 북한의 세계최장신센터 리명훈(235cm)에게 팬들이 선정하는 크리스탈 트로피를 전달하는 깜짝이벤트를 기획했던 그는 “당시 송별 만찬장에서 이상민이 리명훈에게 트로피를 증정했을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박명호 원장은 “그때 북한선수단에 대한 안전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마치 007작전 하듯 이벤트를 준비했다”면서 “깜짝 트로피 덕분에 만찬장의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리명훈 선수가 트로피를 받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남북통일농구처럼 남북의 농구인들이 교류하는 통일어린이농구교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금은 남북이 정치적 이유로 소원한 관계지만 남북통일과 화합을 위해선 우리 스포츠인들이 앞장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보다는 경제교류가 쉽고 경제보다는 문화가, 그중에서도 이데올로기가 필요없는 스포츠가 최고 아니겠어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이상민농구교실이 평양에서, 리명훈농구교실이 서울에서 열리는 장면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