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문스님, 에모리대 서면동의서 확보..한국정부 애국가작사자 인정 조건

미국의 에모리 대학이 윤치호의 애국가(愛國歌) 친필본(親筆本)을 반환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4일 에모리대학이 한국정부가 애국가 작사자로 인정한다면 반환할 용의가 있다는 서면 동의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동의서에는 ‘에모리 대학은 윤치호의 애국가 친필본을 유족들과 한국정부와 협의하여 한국으로 반환할 용의가 있다’고 돼 있다.

혜문스님은 “지난 1월 31일 친필본 열람(閱覽)을 위해 에모리 대학을 방문했을 때 대학측이 ‘1945년 윤치호가 딸에게 직접 써준 친필본을 1990년대 기증(寄贈)받은 것이다. 윤치호가 애국가 작사가로 한국에서 인정되고 유족들의 반환요청이 있다면 다시 한국으로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소개했다.
동의서는 당시의 구두약속을 문서로 전해온 것이다. 이에 앞서 윤치호의 유족은 혜문스님에게 ‘윤치호를 작사가로 인정한다면 애국가 친필본의 반환에 동의한다’는 서면 약속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국가 친필본은 1945년 해방직후 윤치호가 딸(윤문희)의 요청으로 1절부터 4절까지 붓글씨로 쓴 것으로 한글 서명과 함께 ‘1907년 작’이라고 표기돼 있다. 뒷면엔 ‘1945년 9월 아버지께서 친희 써주신 것’이라고 윤문희씨가 한글과 영문으로 직접 기재했다.

윤문희 씨는 애국가 작사자로 부친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다 윤치호의 모교인 에모리대학에 기증했으나 훗날 애국가 작사자로 공식인정받을 경우 한국에 반환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955년 국사편찬위는 윤치호를 유력한 애국가 작사가일 것이라고 11대 2로 표결했지만, 만장일치(滿場一致)가 아니란 이유로 작사가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유는 윤치호가 말년의 친일행적에 대해 부담을 느꼈기때문이라는게 지배적이다. 다만 국사편찬위는 ‘1907년 윤치호 작’ 친필본이 위조가 아니라면 애국가 작사가를 윤치호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기재했다.

▲ 애국가 작사자로 윤치호를 명기한 1910년 신한민보.(미 샌프란시스코 발행)
이와 관련, 혜문스님은 “에모리대의 친필본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애국가 작사 심의 당시 증거로 제출되었던 문서와 동일한 것으로, 윤치호가 1945년 직접 작성한 친필본임을 입증하기 위해 남아 있는 윤치호 필적들을 수집, 대조 작업을 진행중이다”라고 밝혔다.
윤치호의 친필이 입증된다면 유력한 애국가 작사자가 남긴 유일한 문서라는 점에서 응당 대한민국 정부가 소장(所藏)해야 할 국가적 기록물이라는 것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애국가 친필본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윤치호의 작사사실 인정으로 반환이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욕=민병옥특파원 newsr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