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안에서 취미로 사격(射擊)을 하는 민간인들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실이다. 캄보디아의 색다른 사격장이 외국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8일 전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15 km 떨어진 한 공수부대에는 민간인의 출입이 잦다. 특수부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통제(統制)가 허술한 정문 입구에 닿으면 캄보디아 군인의 정중한 안내를 받는다.
사격장에 들어서면 벽에 있는 수많은 총기들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AK-47은 기본 30발을 40 달러에 쏠 수 있고 M-60 머신 건은 100발에 120 달러다.
원래는 군부대이지만 언제부턴가 방문객들의 사격을 허용하면서 이색적인 관광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동남아시아에는 호치민시를 비롯한 몇몇 장소에 사격장들이 있는데 이곳에선 총을 들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여러 종류의 표적을 조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문객들의 흥미를 돋군다.
스위스 관광객 요한 마스(28)씨는 “맥주 캔부터 폐자동차에 이르는 다양한 표적물(標的物)을 대상으로 현실감 넘치는 사격을 경험할 수 있는게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특히 논쟁거리가 될 법한 살아있는 오리 표적은 거의 사냥이나 다름없어 일부 사격 애호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호주에서 온 스티브 리(33) 씨는 “살아있는 동물 표적은 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이곳에서의 경험을 짜릿하고 위대하다”고 찬사를 보냈다. “세계 어디에서 이곳처럼 자유롭게 총을 쏴보겠냐”며 말하는 그는 “여기서 소비한 7000달러가 스트레스 해소로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그는 유투브에 이곳의 경험을 담은 앨범을 공개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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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수백만명이 학살된 ‘킬링필드’로 세계인들을 전율(戰慄)케 한 캄보디아는 잔혹한 내전의 아픈 상처가 서서히 씻겨지고 있다. 군부대가 민간인의 취미사격장으로 이용되는 캄보디아의 오늘에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뉴욕=노정훈특파원 jungroh8909@gmail.com

▲ 앙코르와트 사원 www.en.wikipedia.org
<꼬리뉴스>
킬링필드의 아픔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다른 이름인 깜부자(Kambuja)로부터 유래된 프랑스어 국명인 "캉보즈"(Cambodge)가 영어화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970년 이전 왕국시대에는 캄보디아로 불려오다가,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공화국이 성립되자 국명이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루즈(Khmer Rouge)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陷落)되고 국명은 또다시 민주 캄푸치아로 바뀌었다. 4년 뒤인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가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가, 이후인 1993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되돌아왔다.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본명 살로트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虐殺)을 말한다.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강제노역을 시키거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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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후 베트남군이 철군(撤軍)하고, 1991년에는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결되고 유엔의 임시 관리하에 놓이게 됐다. 1993년에는 망명해 있던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를 다시 불러오고 보통 선거를 통해 정체를 입헌군주제로, 국명을 캄보디아왕국으로 바꾸었다. 이후 총리 훈 센에 의한 쿠데타가 한 차례 있었지만, 1993년 이후로 정치는 대체로 안정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