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희씨 25일 워싱턴DC 컨벤션 참석
미국에서 태동한 한국전 참전용사 청년봉사단에 백선엽 장군의 딸이 한국인으로는 처음 합류하게 돼 관심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백남희(65) 씨. 코네티컷주에 거주하는 백남희 씨는 25일부터 28일까지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국전 참전용사 청년봉사단(Korean War Veterans Youth Corps)’ 컨벤션에 초청, 참석하게 됐다.
한국전 참전용사 청년봉사단은 참전용사들의 자료보존과 유업(遺業)을 후손을 통해 잇자는 취지로 한국전쟁유업재단(KWLFI 이사장 한종우)이 발족한 단체로 지난해 첫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보훈처와 팬택 씨엔아이(Pantech C&I)의 후원 아래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터키,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콜롬비아, 그리스, 에티오피아, 스웨덴 등 13개국 참전용사 후손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한종우 이사장은 “참전용사 청년봉사단에 당사자인 한국용사들의 후손이 가세한 것은 더욱 뜻있는 일이다. 특히나 백선엽 장군의 따님이 합류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남희 씨는 참전용사청년봉사단 자문위원단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백선엽 장군은 한국 최초의 사성장군으로 낙동강전투에서 한미최초의 합동작전을 통해 한국전쟁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특히 미국에선 그를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2010년엔 미국의 전쟁영웅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을 기리는 밴플리트 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한국군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한 백선엽 장군은 61년 퇴역후 중화민국 대사, 프랑스 대사, 캐나다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 일선에 나섰고 1969년엔 교통부 장관이 되어 서울의 1기 지하철 건설을 지휘하기도 했다.
백남희 씨가 참전용사청년봉사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컨벤션에 참석한 밴플리트 장군의 손자인 조셉 맥크라이스트 씨가 “백선엽 장군의 딸이 미국에 있다”며 재단에 소개한 덕분이었다.
한국전쟁에 직간접으로 참전한 21개 유엔 회원국 용사들 후손과 한국 참전용사 후손과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백선엽 장군과 노인숙 여사의 2남2녀중 맏인 백남희 씨가 미국에 온 것은 1972년 결혼후 미국 유학을 온 남편(박동욱씨)과 함께였다. 남매를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는 바쁜 이민 생활속에서도 컬럼비아대에서 장애인 관련 공부를 하며 꾸준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백남희 씨는 한국전쟁중 타임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뉴시스에 제공했다. 백선엽 장군이 참모총장 시절인 1952년 어린 남희씨를 안고 입맞추는 사진이었다. “아버지는 아주 무서울정도로 엄격하셨지만 집에서는 너무나 자상하신 분이었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내게 ‘안된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답니다.”
보름전 부모님을 뵈러 서울에 다녀왔다는 백남희 씨는 “아버님이 고령(95세)에도 아주 건강하시다”고 근황을 전하고 “풍전등화에 처한 조국을 돕기 위해 먼 나라에서 희생한 수많은 분들의 후손과 함께 한국전쟁의 유업을 이을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이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참전용사 청년봉사단 컨벤션은 25일 개회 만찬을 시작으로 나흘간의 일정에 들어간다. 만찬엔 개막연설을 맡은 보훈처 최완근 차장을 비롯, 윌리엄 웨버 한국전추모재단 이사장, 살 스칼라토 미참전용사협회 뉴욕지회장, 노만 샴페인 한국전쟁유업재단 사무총장, 래리 키나드 미참전용사협회장, 미의회도서관 로버트 패트릭 디렉터와 초청 참전용사, 후손 등 100여명이 참가한다.
한국에선 김정훈 국회 정무위원이 지난해에 이어 참석한다. 김정훈 위원은 지난 1월 참전용사들과 후손을 지원하는 한국전참전용사지원재단을 창립하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한 바 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백선엽, 한국 군대 현대화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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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白善燁, 1920년 11월 23일 ~ )은 만주국의 간도특설대 군인 장교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 교육인이다.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9기로 졸업하여 만주국의 장교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였으며 만주군 중위로 있을 때 1945년 광복을 맞았고, 해방 직후에는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활동하였다. 이내 소련군이 이북 지역에 진주하게 되자, 1945년 12월에 월남하게 된다. 1946년 군정기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활동하였고, 1949년 제5사단장이 되었으며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국군 장군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1950년 제1사단장으로 승진한 뒤, 줄곧 전쟁에 참전하다가 1952년의 휴전 회담 때 한국측 대표단의 한사람으로 휴전문서에 조인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예편 후에는 중화민국·프랑스·캐나다 대사 등의 외교관을 지냈다.
호는 우촌(愚村)이고 본관은 수원(水源)이며 평안남도 강서 출생이다.
<자료=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