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남긴 말이 있다. “100마일 공도 가운데로 몰리면 홈런을 맞는다. 그러나 작 제구된 공은 빠르지 않아도 치기 어렵다.”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메이저리그를 호령한 박찬호가 늘 화두로 삼았던 것이 바로 제구력(制球力)이었던 것이다.

25일 류현진의 메츠전은 선배 박찬호가 했던 이 말의 의미를 잘 보여준 예다. 이 날의 최고 구속은 148km. 평균 구속은 145km 정도였다. 메이저리그 투수로는 그다지 빠른 공이라 할 수 없는 이 구속으로 7이닝 동안 삼진을 여덟 개나 잡아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제구력이었다.
오른 쪽 타자의 무릎 높이로 홈플레이트를 대각선(對角線)으로 걸쳐 들어가는 140km 중반대의 직구는 메츠의 간판 타자 데이빗 라이트도 얼어붙게 할만큼 위력적이었다.

뉴욕의 MLB전문가 앤드류 림씨와 류현진의 투구내용을 분석해봤다.
-류현진의 컨트롤에 대한 자신감이 보이는 경기였다.
“타자의 팔꿈치와 무릎사이 높이로 들어가는 공이 홈플레이트의 구석에 걸치기만 해도 스트라익이다. 류현진의 투구는 이런 룰을 최대한 이용이라도 하는 듯 했다. 컨트롤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영리함 마저 돋보였다. 1회에 빠른 공 떨어지는 공 휘어져 나가는 공을 테스트하듯 던지니 타자들은 방망이를 갖다 대는데 급급했다. 특히 1회 마지막 타자 데이빗 라이트를 상대할 때 빛을 발했다. 직구로 스트라익 두개를 잡으며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더니 변화를 예상하고 한 템포 죽이는 타자에게 예상을 깨고 직구를 꽂아 넣어 루킹 삼진을 끌어낸 것이다.”
-2회는 아주 빠르게 승부를 하던데
“효율적인 투구가 뭔지를 보여주었다. 한 타자 당 공 두개씩을 직구 위주로 던져 빠르게 승부를 몰고 간 것이다. 삼진을 잡아야만 맛이 아니다. 삼진 잡기 위해 유인구까지 포함해 대여섯개 공은 던지는 것보다 공 한 두개 던져 아웃 카운트를 잡을 필요도 있는 것이 선발 투수 아닌가. 선발 투수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가능한 많은 이닝을 던져 최소한의 실점으로 하고 팀에게 승리할 기회를 주는 것 아닌가.”
-3회 이후엔 투구패턴이 달라졌다
“그것이 류현진의 영리한 점이다. 투구 패턴을 완전히 다르게 가져가면서 또다시 상대 타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고 4회와 5회를 수월하게 처리하며 투구수 조절에도 성공했다. 다만 4회 데이빗 라이트와의 두번째 대결에서 지나치게 신중했다는 점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1회에 자신 있게 던진 직구를 거의 던지지 않고 변화구와 로케이션을 지나칠 만큼 의식해 사사구를 내 준 것이다. 강타자에게 한번 눈에 익은 직구를 던지지 않게 하려는 포수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1회의 통쾌한 직구 삼진이 독이 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후속 타자를 떨어지는 변화구로 유인해 그라운드 볼 처리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
-6회의 위기 상황은 어떻게 보나
“메이저리그의 제 아무리 훌륭한 투수라도 그런 위기는 한 경기에 한번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를 한 점으로 막아낸 위기관리 능력을 칭찬할 만하다. 또한 7회에 투구수 백개를 채우고도 삼진까지 곁들이며 세타자를 가볍게 제압한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투구수가 많아져도 얼마든지 던질 수 있다는 점과 아직은 미확인 상태였던 체력 부분을 확실히 코칭 스태프와 미디어에 확실히 못박아두는 효과였다.”
-승리를 아깝게 놓쳤는데
“메츠 투수 해프너가 효과적으로 던졌기 때문이지만 다저스 타선의 응집력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루 플레이에서의 허술함은 류현진의 3승을 앗아간 결정적인 실수로 보여져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3승에는 실패했지만 5번의 선발 등판 중 4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했다는 점 그리고 한경기 만에 방어율을 3점대로 돌려 놓은 점 등에서 성과가 있는 등판이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안정된 구위와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류현진에게 앞으로의 경기에서 더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 하다.”
뉴욕=임지환특파원 jylim@newsr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