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이주 150주년기념 광복절에 판문점 넘을듯
사상 처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평양 서울 부산으로 이어지는 1만5천km 의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大長程)이 장도에 올라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 기념 자동차 랠리 종주 행사가 7일 모스크바에서 시동을 걸었다. 이번 자동차 종주(縱走)는 한인(고려인)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기획된 것으로 한인들의 러시아내 주요 도시는 물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시베리아 이주 경로를 거슬러 가며 평양과 서울에 이어 부산까지 달리는 레이스이다.
7일부터 8월 25일까지 50일간 진행되는 이번 종주는 고려인 60여명이 러시아 지프에 분승할 계획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동부 블라디보스토크를 들러 북러국경을 통과하고 평양을 거쳐 8월15일 광복절에 금단 지역인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서울을 거쳐 부산에서 대장정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다.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 기념행사 조직위원회는 이날 모스크바의 롯데무역회관에서 축하기념식을 열고 러시아와 한반도 간 우호증진과 남북한 평화를 상징하는 기나긴 여정(旅程)의 첫발을 디뎠다.
행사에는 러시아 지역개발부 이고리 니콜라예비치 스류나예프 장관을 비롯해 러 행정실 마고메드살람 마고메도프 차장, 전(全)러시아 고려인 협회 조바실리 회장, 김펠릭스 러시아고려인통일연합회 위원장, 러시아 연방 외무부 제1아시아국 알렉산드르 마제고라 부국장, 알렉산드르 파노프 러한협회 회장, 이석배 러시아대사관 공사, 김원일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 등이 참석했다. 또한 북한의 강성호 러시아대사관 공사참사가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유라시아 횡단종주는 북한이 그동안 군사분계선 통과 불허 입장을 밝히면서 난항을 겪었지만 지난 5일 자동차 랠리 팀의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러시아외무부에 통보하면서 극적으로 행사가 성사됐다.
이날 이고리 니콜라예비치 스류나예프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한반도는 작은 나라지만 러시아의 발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협력국”이라며 “러시아에 이주한 한인 이주 역사 150주년을 맞은 지금 그들이 러시아 전역에 거주하며 이룩한 공적과 장구(長久)한 세월을 러시아의 한 구성원으로서 산 고려인들이 러시아 대륙과 남북한을 잇는 이번 랠리 종주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성공적으로 행사가 끝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알렉산드르 마쩨고라 러시아 연방 외무부 제1아시아국 부국장은 “이번 행사는 남과 북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상호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러시아에서 시작해 평양을 거쳐 서울, 부산을 종주하는 이번 행사가 서로의 남과북 관계 발전에 디딤돌을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조 바실리 전 고려인협회 회장은 “이번 행사를 개최하는데 있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러 연방 관련 정부 당국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도 고려인 역시 같은 민족으로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대종주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 조 바실리(왼쪽) 고려인협회 회장과 김원일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 회장
이석배 주러 대한민국 공사는 “이번 오토랠리 행사는 고려인들이 자유와 평화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며 “동포의 염원처럼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향해 마음을 모으는 이번 행사가 잘 치러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강성호 북한 대사관 공사참사는 “조선(북한)과 러시아는 오랜 친선 관계를 유지해왔다.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행진이 잘 진행되도록 힘쓰겠다”고 전했다.
▲ 김원일 회장과 민주평통 관계자들. <이상 사진=모스크바뉴스 제공>
김원일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은 “주최측에선 북측이 끝까지 통과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두 개 팀으로 나눠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달려 군사분계선 앞까지 가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했다”면서 “고려인사회가 앞장서고 남북이 협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뜻 깊은 행사가 된 것 같아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고려인 구소련 지역 약 50만명 거주
고려인(高麗人) 또는 고려 사람(Корё сарам 코료 사람)은 옛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의 독립 국가 연합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까레이스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한반도 일대를 지배했던 옛 나라인 고려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며, 한국인과 조선인을 절충하기 위해 고려인이라 부른다.
이들 국가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이 포함된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였으며, 남부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부근, 코카서스, 남부 우크라이나에도 많은 고려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이들 공동체는 19세기 말의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에 기원한다.
사할린 섬에도 독립된 사할린 한민족이 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의 이주민으로 구성된 러시아 본토의 공동체와는 달리, 사할린의 한민족은 주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이주하였다.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강제로 사할린의 탄광에 끌려가 노역하였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등 러시아 문화에 상당한 적응을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땅에서 수탈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이주의 가장 큰 이유였다.
1937년에서 1939년 사이, 스탈린은 172,000명의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명목이었다. 여러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추방되고 유배되었고, 이주 도중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고려인이 중앙 아시아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다. 글라스노스트 이전까지는 이주에 대해 발언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이주민들은 협력하여 관개 시설을 설치하였고,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국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는 한국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구소련 붕괴 이후 연구에 따르면, 2002년에 약 470,000명의 고려인이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며, 그중 198,000명이 우즈베키스탄에, 125,000명이 러시아, 105,000명이 카자흐스탄, 19,000명이 키르기즈스탄, 12,000명이 우크라이나, 6,000명이 타지키스탄, 3,000명이 투르크메니스탄, 5,000명이 기타 지역에 살고 있다.
러시아[편집]2002년의 인구 조사에서는 148,556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며, 남자가 75,835명, 여자가 72,721명이었다. 그중 1/4 정도는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에 거주한다. 그곳의 고려인들은 그 이주 경로가 다양하여, 1937년 선대의 강제 이주로부터 돌아온 독립국가연합 국적의 33,000명 외에, 약 4,000~12,000명의 북조선 이민자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나 중국 소수 민족 출신의 고려인 또한 정착, 투자하며, 국경 무역에 참여하고 있다.
<자료=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