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자성남 유엔 대사가 뉴저지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 화가들의 전시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저지 해켄색의 리버사이드갤러리(관장 윤승자)에서는 지난 14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북한의 인민예술가(人民藝術家)로 잘 알려진 선우영 화백, 정창모 화(이상 작고) 화백과 북한의 떠오르는 서양화가 탁효연(46) 화백의 작품 등 20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워싱턴의 미국조선미술협회 신동훈 회장이 20년 넘게 북한을 100회 이상 방문하며 모은 것들이다.
신동훈 회장은 16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회에 자성남 대사를 정식으로 초청했다. 리셉션에는 사정상 오지 못했지만 전시가 끝나기전 그림을 감상하고 돌아갈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신동훈 회장은 지난 1999년 국내에서 '북한 미술가 6인전'을 처음 여는 등 십수차례 북한작가전을 열었고 2006년 뉴욕에서 개최한 전시회는 당시 문봉주 뉴욕총영사와 박길연 북한 유엔대사가 만나서 화제를 모았다.
'광복 70년 남북분단 70년'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북한 미술을 대표하는 선우영, 정창모 두 거장(巨匠)이 나란히 그린 '독도'와 처음 공개되는 희귀본(稀貴本)들이 선보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선우영 화백은 대표작 '독도'(2007)를 비롯, '금강산 기암성벽'(2007) '금강산 옥류동', '남천폭포'(이상 1999년) '기슰의 파도', '칠보산의 피아노 바위'(이상 2004년) 등을, 정창모 화백은 '독도는 우리 피줄'(2009) 외 4점, 탁효연 화백은 '산촌', '산골 마을 풍경' 등 5점을 선보이고 있다.


'독도'는 100호(100x180) 크기의 대작이다. 선우영 화백이 작고하기 2년 전인 2007년 완성한 작품으로 진채세화(眞彩細畵)의 거장답게 독도의 한 섬인 동도를 두드러지게 성격화해 우리 민족의 굳센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전주 출신인 정성모 화백의 ‘독도는 우리피줄’(125x37)은 동도(東島)와 서도(西島)의 온화한 자태 위로 남녘으로 기러기떼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통해 떠나온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은유(隱喩)하고 있다.
왼쪽 상단에 낙관 형태로 '한길을 영원히'라고 한글로 쓴 도장도 눈길을 끈다. 사이좋게 바다에 떠있는 동도와 서도처럼 남과 북의 한민족이 함께 화합하며 가고싶다는 작가의 소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리셉션에서 윤승자 관장은 레오나드 홀든과 몰턴 미셀 등 외국작가 작품수집가들이 찾아와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남편과 딸을 데리고 전시장을 찾은 중국계 란 장 씨는 "북한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미국에서 감상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독도 그림에 압도됐다. 너무나 멋진 작품"이라고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신동훈 회장은 북한의 화가들이 독도 그림을 약 20점 소장(所藏)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작가들이 독도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사연이 있다고 말한다. 선우영 화백과 정창모 화백 등은 지난 90년대초 일본서 열린 전시회에서 한국의 작가들과 만나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독도를 작품화하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특히 5만원권 지폐의 신사임당 초상을 그린 이종상 화백과 2인전을 열기로 했는데 두 화백이 2009년과 2010년 차례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동훈 회장은 "비록 두 분은 이 세상에 없지만 작품은 남아 있으니 언젠가는 남과 북의 화가들이 그린 독도 그림을 모아 전시하는 '남북 독도전'을 꼭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했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북녘의 미술가들 <Le Monde October 29, 2011>
북한미술가들이 선전용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그린 조선화는 암시장을 형성할 만큼 미술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지난 8월 서울에서 북한그림을 밀반입한 부부 일당이 경찰에 검거되자 뜻하지 않게 베일에 가려져 왔던 미술시장의 이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조선족 출신인 여성은 북한국적의 남편과 함께 1300점의 북한그림을 밀반입해 이중에서 3분의 2 이상을 인터넷을 통해 2만8,000달러를 받고 갤러리에 판매해 왔다. 일부 그림에는 유명화가의 낙관이 찍혀 있었으나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점 등을 미루어 몇 안 되는 이 분야 전문가들은 작품의 진품여부에 의심의 눈치를 보이고 있다. 이 그림들은 위작일까?
이 부부는 북한전문위조단이 한국에 모조품을 유통시키기 위해 고용한 ‘브로커’일까?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강도 높은 선전용 미술을 장려해왔다. 따라서 북한미술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절대적 지도자, 김일성(1912-1994)을 위시한 정치 지도자들의 초상화나 거리, 학교, 공장 벽을 장식하고 있는 ‘사회주의 낙원’의 영광을 묘사한 대형그림 내지 (베트남에서는 이른바 ‘북 치는 그림’이라고 부르는) 등장인물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선전용 포스터 등이다. 그러나 비록 이념에 예속된 이 같은 창작활동이 북한미술의 주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리얼리즘(북한은 1970년대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신해 자립과 자급자족을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국가이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보다는 ‘주체사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에서 벗어난 서정적 미술작품도 엄연히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이국적 색깔을 지닌 작품에 열광하는 고객층이 있기 때문에 미술품 딜러들은 구 소련의 스탈린식 그림이나 중국의 마오쩌둥식 그림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전통적 그림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혁명을 주제로 한 그림보다는 북한화가들의 독특한 화풍을 느낄 수 있는 조선화를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조선화의 주제는 목가적 풍경이나 동물 등이다. 중국의 서화와 비슷하나 한민족 특유의 미감을 지니고 있는 한국의 전통적 수묵화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용시킨 것이 바로 조선화의 특징이다.
1950년대 말 김일성이 예술의 ‘민족화’를 주장하면서 엘리트 작가들이 그린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시적인 작품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따라서 조선화는 이념과 시대를 초월해 남북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것’의 정수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비록 이 작품들도 북한의 우상화 작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평양에서 만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김동환 단장은 “조선화의 주된 주제는 풍경”이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교에서 관련 콘퍼런스를 주최한 쿤 드 퀘스터(Koen De Ceuster) 교수는 “조선화를 본 남한사람들이 친숙함과 동시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특한 예술 양식이 탄생한 것이다.
대표적인 북한그림 수집가들도 역시나 한국인들이다. 미국조선미술협회 신동훈 회장은 조선화의 거장으로 알려진 정창모(1931-2010) 화백과 선우영(1946-2009) 화백의 작품들 중 가장 독특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독학으로 북한미술을 공부한 신동훈 회장은 본인을 몇 안 되는 조선화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특히 20여 년 전부터 정창모 화백이나 선우영 화백과 두터운 인연을 맺어온 그는 두 화백의 작품들을 해외에 알리는 것이 두 화백이 자신에게 맡긴 소임이라고 말했다. 신동훈 회장은 1999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북한미술 전시회를 개최한 데 이어 2004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으며 뉴욕에서도 조선화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는 조선화에 대해 “조선화는 어떤 경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아주 깊이 있게 표현한다.”고 평하며 “필치가 남한의 그림보다 더 강렬하고 대담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개념은 추방되었다. 미술작품의 가치는 예술성과 더불어 사상성에 의해 결정된다. 북한미술가들은 노동당의 추천을 받아 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한 후 우수한 인재들이 미술창작단체인 만수대창작사에 들어간다. 실력을 인정받은 미술가들은 ‘공훈예술가’를 거쳐 ‘인민예술가’ 칭호를 부여 받는다. 천여 명의 미술가들이 만수대창작사에서 수묵화, 유화, 포스터, (모자이크 기법을 이용한 대형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조형물 등으로 나뉘어진 부서에 소속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로 반출된 북한미술작품들 중 대부분은 바로 이곳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쿤 드 퀘스터 교수에 따르면 “북한 미술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당이 요구하는 이념과 미학적 완성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었는지 여부”이다. 그는 “북한의 미술가들이 서양의 미술가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며 “이들이 처한 전근대적 창작 환경은 엄격한 규율을 앞세워 주제를 서열화하고 승인된 화법만을 고집했던 과거 유럽의 아카데미 체제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한 “대가들은 당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최대한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으나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 북한의 미술가들도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강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전문가가 없어서 해외 북한미술시장에 위조품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동훈 회장은 “거장의 낙관이 찍힌 작품들이 10,000달러 이하에 유통된다면 그것은 위작이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위작과 모조품들 중 일부는 중국과 북한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북한의 미술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작품들은 거의 모두 복제품이다. ‘국가 보물’로 지정된 진품은 국가가 관리하는 수장고로 보내진다. 북한의 미술창작단체는 해외의 주문을 받아 외국의 (밀레, 고흐의 작품 같은) 유명그림을 모사하기도 한다.
미술품 거래가 내부적으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북경에서는 북한미술 전문갤러리들을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만수대창작사도 이곳에 지점을 두고 진품증명서와 함께 그림을 판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도 북한그림이 거래되고 있다. 신동훈 회장은 “수요가 적진 않지만 시장이 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남북관계는 조선화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남한의 친북정책으로 북한미술품 반입규제가 완화된 덕분에 조선화 시장은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만수대창작사도 이때부터 북한미술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자 미술품 왕래가 다시 차단됐다. 이로 인해 출처가 의심스러운 작품들이 넘쳐나는 암시장이 성행하게 되었다.
니콜라스 보너(Nicholas Bonner) 고려그룹 대표는 불투명한 생산 및 유통망과 날로 교묘해 지고 있는 위작기술 그리고 전문가 부족이 밀거래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5년 동안 다양한 북한 그림을 수집하고 있는 그는 1950-1980년대의 희귀한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특히 “혁명사상을 담고 있는 그림들은 내부 선전용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구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니콜라스 보너 대표는 “북한 미술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는 모조품들로 가득한 암시장에서 재능 있는 작가를 발견하고 그 작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아쉬워했다. 더욱이 “과거 수집가들과는 달리 최근 구매자들은 해외에 나와 있는 수준 높은 작품들을 닥치는 대로 사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기대원 스님과 함께 호놀룰루 동서문화센터 미술관에서 5개월 동안 소장품을 전시했다. 하지만 북한미술 관련소식은 신문 사회면에서나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조선화는 선전화인가?
조선화가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사상의 굴레에 얽매인 국가에서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의 리얼리즘과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예술가들이 당의 방침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스탈린주의자이자 악명 높았던 검열가 안드레이 즈다노프(1896-1948)의 즈다노프주의를 토착화한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1966년 민족주의라는 카드를 앞세워 중국, 구 소련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김일성은 스탈린의 “예술은 외부적으로는 민족적 색채를 띄어야 하고 내적으로는 사회주의 사상을 담아야 한다”는 발언을 내세웠다.
한국미술사학자인 프랑크 호프만은 김일성이 스탈린의 문화정책을 따랐으나 예술적인 면에서는 식민지 시대 말기 일본화풍의 표현을 장려했다고 덧붙였다.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19세기말 일본에 서양화 화풍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화는 일제 식민지 시대(19210-1945년)에 여러 한국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프랑크 호프만은 조선화를 정립했다는 평을 받는 ‘조선화의 아버지’ 김용준(1904-1967) 화백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본인이 발전시켰던 주제들을 후에 답습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인덴 대학교의 쿤 드 퀘스터 교수는 북한미술이 단순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모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전적이며 서정적 주제인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나 중국의 고전사상에 따르면 우주의 두 극을 이룬다는 산수 등을 그리며 북한의 조선화 화가들은 자신들만의 화풍을 다듬어 나갔고 다양한 색채를 개발해 왔다.
Le Monde
Saturday, October 29, 2011
Philippe P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