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문화유산 한글을 국보1호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국보1호로 지정하자는 10만 서명운동이 마감을 앞둔 가운데 뉴욕한인사회가 막판 뜨거운 열기를 보이고 있다.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 10만 서명 운동’은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사)우리문화지킴이 공동으로 지난해 11월 11일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발대식을 가진 이후 다음 아고라와 오프라인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오는 11일 마감하는 청원운동(請願運動)은 지난 1일 현재 7만5천명을 돌파, 목표의 75%를 넘어섰다.
해외에서는 뉴욕 뉴저지 한인사회가 가장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둔 미주한국불교문화원에서는 김정광 원장이 발대식에 직접 참석한데 이어 뉴욕 일원에서 온라인 서명을 독려하고 있다.
김정광 원장은 “세계의 모든 민족이 어울린 뉴욕에서 살면서 한글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문자인지 실감하고 있다”면서 “한글은 우리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진정한 마음속의 국보 1호”라고 강조했다.
뉴저지 환경운동단체 1492그린클럽을 이끄는 백영현 대표도 회원들은 물론, 각 단체장들과 접촉하며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서명 동참은 한인들이 주도하지만 미국인들에게도 한글을 홍보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1492그린클럽의 회원들은 한인들보다 주류 정치인들을 비롯한 미국인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백영현 대표는 “미국인들에게 한글의 창제원리와 역사를 알려주면 한결같이 놀라워하고 국보 지정을 너무나 부러워한다”면서 “우리 민족이 세계에 자랑해야 할 국보중의 국보가 1호가 되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인기독교 사회에 국보1호 지정운동을 홍보하고 있는 교회일보의 우병만 대표목사도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지정하는 것이야말로 해외동포들의 자존감(自尊感)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1호인 숭례문과 교체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게 된 것은 1934년 조선총독이 임진왜란 당시 가토오 기요마사가 한양으로 입성한 숭례문을 1호로 지정했다는 역사적 배경때문이다.
1996년 김영삼 정부는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해지(解止)하려고 노력했으나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고 2005년에도 감사원이 국보 1호 해지를 권고했지만 당시 문화재위원회가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숭례문이 2008년 방화로 소실되고 복원과정 또한 부실과 비리로 얼룩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짝퉁 숭례문 대신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게 됐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감사원이 숭례문 국보 1호 해지를 권고한지 10년이 되는 해”라며 “이제는 조선 총독이 지정한 국보 1호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 지정한 국보 1호가 우리나라를 대표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혜문스님은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10만 고지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만큼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시면 목표 달성이 무난하리라 기대한다”며 마지막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 훈민정음 국보 1호 서명운동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objCate1=1&articleId=159200&pageIndex=1
뉴욕=노정훈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세종대왕이 들고있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
광화문 세종대왕상이 들고 있는 책은 다름아닌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이다.
지구상 수천개의 언어중에 백여개의 말만이 글자를 가지고 있으며, 만든 목적과 만든 사람 만든 때를 알고 있는 문자로 한글이 유일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에 의해 1943년에 세상에 빛을 보았다. 간송은 10만석 부호가의 상속권자로 그의 재산으로 그는 우리 문화재가 일본에 유출되는 것을 막은 주인공이다.
그가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수장하던 1930∼40년대는 일제의 수탈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로 문화재 감식에 뛰어난 오세창과 함께 모은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 청자상감운학매병(국보 68호)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 등 다수의 문화재였다.
<사진=문화재청 제공>
해례본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누구도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알지 못했다. 그전까지 훈민정음은 여러 창제 학설이 있었는데, 인도 구자라트 문자나 산스크리스트어, 몽골의 파스파문자, 갑골문자를 모방했다는 설부터 문고리나 창살모양을 본 땄다는 설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이 천지인 삼재(三才)의 원리와 태극,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간송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키기 위해 6‧25 전쟁 당시에도 오직 이 책 한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난을 떠났고, 잘 때도 베개삼아 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