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의 ‘12년 통치’를 이을 차기 뉴욕시장으로 유력한 빌 드 블라지오가 남다른 전력(前歷)의 부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 블라지오 후보는 지난 9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강력한 경쟁자들을 따돌린 후 한달 이상 공화당 후보를 세배 가까운 지지율로 압도하고 있다. 지난 9월 19일 퀴니피액대학이 실시한 ‘뉴욕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66%의 지지율을 얻어 공화당의 조셉 로타 후보(25%)를 40% 포인트 차이로 앞선 바 있다.
그는 한달뒤인 지난 21일 여론조사에서도 68%의 지지율로, 24% 지지율을 얻는데 그친 로타 후보를 무려 44% 포인트 차이로 따돌림으로써 다음달 5일 예정된 본선거에서 사실상 승리를 예약해 놓았다.
드 블라지오는 지난 여름만 해도 민주당 내에서 중위권 후보였다. 그러나 선두그룹의 앤소니 위너 후보가 외설(猥褻) 문자메시지 파문으로 추락하면서 지지기반 일부를 흡수한데 이어 1년여간 여론조사 선두를 달렸던 크리스틴 퀸 뉴욕시의장까지 제치고 예비선거에서 당당 1위를 차지했다.
시장과 감사원장에 이어 뉴욕시의 넘버3인 공익옹호관 직책을 갖고 있는 그가 돌풍을 일으킨데는 중산층과 서민을 아우르고 친소수계 정책으로 뉴욕시의 과반을 차지하는 이민자커뮤니티의 호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인후보인 그가 흑인 등 유색인종은 물론, 동성애 커뮤니티의 폭넓은 지지까지 받고 있는 비밀이 있다. 바로 아내인 셜레인 맥크레이다. 만 52세의 드 블라지오는 만 59세의 셜레인과 순애보(純愛譜)적인 사랑을 통해 맺어졌다.
<이하 사진 www.en.wikipedia.org>
일곱 살 연상의 아내가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백인남편-흑인아내’ 커플은 미국사회에서도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더욱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셜레인이 유명한(?)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다.
매사추세츠 출신인 셜레인은 백인동네에서 성장했다. 60년대 이웃주민들이 이사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고 그 자신 고교시절엔 전교생 중 유일한 흑인이어서 적잖은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다. 사춘기(思春期)를 지나며 그녀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레스비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립명문 웰리슬리 칼리지를 졸업한 셜레인은 스물다섯이던 1979년 ‘나는 레스비언’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당시만 해도 동성애자의 공개적인 커밍아웃은 흔치 않은 시절이었고 더구나 흑인여성이라는 사실이 세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던 셜레인이 드 블라지오를 만나게 된 것은 1991년 데이빗 딘킨스 뉴욕 시장 사무실이었다. 당시 드 블라지오는 부보좌관이었고 셜레인은 연설담당 작가였다.
셜레인은 유머러스하고 배려심이 많은 드 블라지오에게 어느 순간부터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철썩같이 믿었던 그녀로선 당혹(當惑)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렸고 3년뒤 화촉(華燭)을 밝혔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드 블라지오와 셜레인 커플은 지난 예비선거에서 ‘다문화가정’의 덕을 제대로 보았다. 드 블라지오는 매일같이 아내와 함께 유세장을 누볐다.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연설문은 물론, 프로연설문작가인 아내의 몫이었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드 블라지오는 아들과 딸을 모두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다. 예비선거에서 치열한 각축을 벌이던 여름, 10대 아들 단테와 함께 출연한 선거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바마처럼 고수머리의 흑인아들과 백인아버지의 다정한 모습이 선거 막판 유권자들의 정서를 파고든 것이다.
아들과의 광고가 중산층과 소수계 가정의 심금을 울렸다면 최초의 여성 동성애시장을 꿈꾸던 크리스틴 퀸 후보를 좌절(挫折)케 한 것은 바로 레스비언 전력의 아내 셜레인이었다. 동성애 여성과 결혼한 퀸 후보와 동성애를 포기(?)한 흑인여성과 결혼한 드블라지오 후보는 기묘한 구도였다.
셜레인은 지난 여름 뉴욕의 선정적인 타블로이드 매체들이 동성애 전력을 화제 삼는 등 네거티브 캠페인이 우려됐을 때 “난 아직도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가슴이 두근댄다. 하지만 나에겐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 그이 외에는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토로(吐露)해 더 많은 호감을 이끌 수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11월 5일 뉴요커들은 시장 관저에서 사상 처음 레스비언 전력의 흑인 퍼스트레이디를 보게 될 모양이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블룸버그시장 딴죽, “드 블라지오 인종차별 캠페인 전개했다”
뉴욕시장 선거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민주당 예비선거 직전인 지난 9월 7일 선두주자인 빌 드 블라지오가 계급투쟁(階級鬪爭)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시장은 이날 뉴욕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드 블라시오가 지지를 얻기 위해 다인종으로 구성된 자신의 가족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계인 드 블라지오는 거의 매일 부인인 셜레인 맥크레이와 유세를 벌인다. 맥크레이는 드 블라지오보다 7살 연상의 흑인이다.
드 블라지오는 7일 열린 선거유세에서 블룸버그의 주장을 반박(反駁)했다. 그는 “블룸버그 시장이 한 발언에 놀랐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좋게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시장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드 블라지오의 뉴욕시장 선거 경쟁자들인 민주당의 윌리엄 톰슨 전 뉴욕시 감사원장과 크리스틴 퀸 뉴욕시의회 의장은 “시장이 이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며 블룸버그의 발언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