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상 뉴욕한인사회의 ‘뜨거운 감자’ 신세였던 뉴욕한인회관을 매각하는 계획이 추진돼 비상한 관심이 일고 있다.
민승기 뉴욕한인회장은 6일 맨해튼 24가에 위치한 뉴욕한인회관을 매각하고 퀸즈 플러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뉴욕한인회관은 지난 1983년 강익조 회장(17대) 시절 동포사회의 성금을 모아 매입한 것으로 뉴욕한인사회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지만 악성 세입자 문제로 수십년째 골머리를 앓는 등 ‘뜨거운 감자’로 불려왔다.
민승기 회장은 “지난 5월 외국계 부동산개발업자로부터 빌딩 매입을 제의받고 그동안 전직회장단에 자문을 구하는 등 내부 논의를 해왔다”면서 “매각 후 새 한인회관을 플러싱에 마련한다는 방침아래 오는 15일 임시이사회에서 공식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한인회관 매각문제는 지난 수년사이에 맨해튼 지역에서 재개발 붐이 일면서 부동산개발업자들의 러브콜을 받아온게 사실이다. 뉴욕한인회관은 조닝(부동산 용도)상 호텔 신축이 가능하며 최고 15층까지 세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뉴욕한인회관의 매입 요청가는 1500만 달러 이상이며 매매가 성사될 경우 새로운 한인회관은 플러싱 노던블러바드 167가의 리셉션하우스 건물을 허물고 신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승기 회장은 “뉴욕한인사회 공동의 자산인 뉴욕한인회관의 매각은 회칙에 따라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계약을 한다 해도 클로징까지 최소한 6개월이 걸리고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맨해튼 한인타운에 사무실을 두고 회관은 한인 최대 밀집지역인 플러싱으로 이전해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한인회관이 지난 30여년간 뉴욕한인사회에 차지해온 역사성과 세계의 중심인 맨해튼에 있다는 상징성, 미래 가치를 생각할 때 성급히 떠나서는 안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에 40년전에 이민온 이인석 씨는 “지난 30년간 맨해튼 24가의 한인회관 밖에 걸린 태극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코리아라고 하면 한국전쟁과 김치밖에 모르던 미국 사람들에게 저 건물이 우리 한인사회 것이라고 얘기하던 자랑스러운 상징물인데, 어떡하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매각을 조건으로 1개층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이 맨해튼 사무실과 뉴욕한인역사박물관을 운영하자는 의견에 대해 민 회장은 “고려해볼만한 아이디어다. 그러나 매각 조건에 영향을 주는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민승기 회장으로부터 뉴욕한인회관 매각에 관한 계획을 들어보았다.
- 매각문제가 갑자기 공론화됐는데
“뉴욕한인사회와 한국 중소기업들과의 업무교류차 한국출장을 갔다고 어제 왔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신문(뉴욕한국일보)에 나와 깜짝 놀랐다. 매각문제는 한인사회의 의견을 수렴해야하는만큼 절차를 밟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계획은 사실이지만 이사회와 총회를 통해 의결되야 하고 클로징을 하기까지 변수와 고비가 많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어렵다.”
- 회관 매각이 추진된 배경은
“지난 5월 취임이후 부동산개발업자로부터 매각 제안을 받았다. 사실 한인회관 매각제의는 전직 회장 때도 여러번 있었지만 건물의 상징성도 그렇고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기엔 회장의 임기(2년)가 너무 짧아 엄두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금의 한인회관은 플러싱은 물론 맨해튼 한인타운(32가 브로드웨이)와도 떨어져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차제에 건물을 처분하고 맨해튼한인타운에 사무실만 두고 플러싱에 새로운 한인회관을 만드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매각 조건은 어떤가
“일단 뉴욕한인회관이 악성세입자 문제가 있지만 최소한 1500만 달러는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회장 임기때 빌린 60만 달러의 융자금, 수수료, 세금만 제외하면 된다. 역대 한인회가 건물관리 문제로 그동안 골치를 많이 앓았지만 30여년전 100만 달러에 매입한 투자가치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맨해튼 남단 일대에 재개발 붐이 일고 있고 이자율이 낮은만큼 매각의 적기라는 평가도 고려했다.”
- 악성 세입자문제에 대해선 그간 회관정상화 노력을 통해 많이 해결되지 않았나?
“1층의 경우 겨우 2년전부터 정상적인 렌트비를 받고 있지만 2층부터 5층까지 12가구 세입자들에겐 정상적인 렌트비를 못받고 있다. 지난 30년간 한 푼도 내지 않는 세입자도 있고 월 500달러의 헐값에 사는 세입자도 있다.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최하 500만~1천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 뉴욕한인회관엔 암세포가 있지만 2년 임기의 회장이 절대 고칠 수 없는 암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차제에 한인사회와 떨어진 곳의 건물을 처분하고 한인타운 안에 새로운 회관을 마련하는게 옳다고 본다.”
- 그러나 맨해튼 한인회관의 역사적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맨해튼에 사무실이 필요한데 부동산개발업자와 계약할 때 건물 1개층을 한인사회 소유로 하고 한인사회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각종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는 명소로 만들면 어떤가.
“그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달면 매매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고 맨해튼 사무실이 한인타운과 떨어진 문제점도 남는다. 플러싱으로 한인회관이 이전한다 해도 뉴욕한인회의 역사는 그대로 안고가는 것 아니겠냐.”
-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현재의 뉴욕한인회관은 걸어서 10여분이면 가는데 굳이 32가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뉴욕한인회는 플러싱은 물론, 맨해튼, 뉴저지 포트리와 팰팍, 심지어 코네티컷까지 뉴욕메트로폴리탄 지역을 아우르는 대뉴욕지구한인회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플러싱에 가는것이 한인사회 속으로 들어간다는 명분은 있지만 반대로 주류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중심을 포기하고 변방에 있는 특정한 한인타운으로 넘어간다는 비판도 나온다.
“물론 양면성이 있다. 그러나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볼 때 뉴욕한인회관은 접근성의 문제로 한인사회에 기여한게 너무 없다. 무슨 행사를 해도 찾아오는 한인들이 가뭄에 콩나듯 한다. 역설적으로 그런 점 때문에 플러싱 등지에 비영리단체들이 많이 생겨나 정부그랜트를 얻어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또다른 발전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뉴욕한인회가 기본 정신인 한인사회에 대한 봉사의 목적을 피해선 안된다. 지금 플러싱엔 연회장 외에는 한인들을 위한 쉼터나 세미나, 재교육을 위한 저렴한 문화공간을 찾기가 어렵다. 뉴욕한인회관이 만들어지면 비영리단체들의 봉사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많은 한인들이 찾아오는 동포사회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
- 향후 일정은 어떤가.
“15일 임시이사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사회에선 토론과 함께 찬반 의견을 집계할 것이다. 하지만 참고사항일뿐 결정은 이후 총회에서 이뤄져야 한다. 총회 의결은 정관상 250명 이상이 참석하여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된다. 회원자격은 한국 혈통을 가진 뉴욕 일원의 한인들이다.”
- 찬반여론이 첨예할 수도 있는데 공청회 등 여론 수렴의 기회를 확대해야 하는것 아닌가.
“회칙상 여론 수렴을 위해 공청회를 꼭 해야 할 의무는 없다. 어차피 공론화되었으니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기본 의도가 한인사회를 위한 것인만큼 90%가 찬성하지 않겠나. 총회를 통과해도 꼭 된다는 보장이 없다. 클로징을 하기까지 최소 6개월이 필요하고 뉴욕시장 교체에 따른 시정책의 변화 등 여러 변수로 인해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뉴욕한인사회의 대의를 위해 회칙에 따라 신중하게 진행하겠다.”
뉴욕=노창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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