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만 77세의 한인배우가 BMW TV광고에 출연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30년 넘게 LA에서 배우와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김광태(미국명 피터 김) 씨.
그가 캐스팅 된 광고는 BMW3시리즈 디젤 차량으로 지난달부터 캘리포니아 지역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특히 이 광고는 한국인 가정을 컨셉으로 한 최초의 자동차 광고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광고는 다소 코믹한 내용의 반전극이다. 상류층으로 보이는 한인 가족이 응접실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데 딸의 남자친구(미국인 배우)가 눈치를 보며 아버지역을 맡은 김광태 씨에게 다가와 결혼 허락을 청할 것처럼 말을 더듬다 “우리가 BMW 디젤을 샀어요” 한다.
딸이 미국남자와 결혼할까봐 은근히 걱정했던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예비사위와 함께 환한 얼굴로 BMW 디젤을 타고 드라이브 나간다. BMW디젤 덕분에 결혼허락을 받은 것이다.
김광태 씨는 “본래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예비사위에게 ‘이젠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게(You can call me daddy)’라는 대사를 했는데, 말보다는 미소가 낫다고 판단해 대사는 생략됐다”고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30초 분량의 광고지만 꼬박 사흘간 촬영이 이어졌다. 이틀동안 저택 한 채를 빌렸고 밤길 드라이브는 이스트LA 지역의 한 도로를 8시간이나 통제한 가운데 촬영됐다.
김 씨의 캐스팅도 미 전역에서 100명이 넘는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한 것이었다. 미국의 광고모델은 보통 3단계 과정을 거쳐 선정되는데 한국어 대사가 없기때문에 1차 오디션엔 한국과 중국, 일본인 모델들이 대거 지원했다.
광고에선 50대 아버지역이었지만 실제보다 훨씬 젊어보이고 탁월한 표정연기 덕분에 주인공을 거머쥘 수 있었다. 딸 역은 뉴욕 출신의 한국인 모델이 맡았고 미국인사위는 시카고 출신 배우가 캐스팅됐다.
이번 광고는 BMW가 미국 시장의 새로운 히트작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차종으로 알려졌다. 2015년 상반기까지 광고가 나갈 계획이어서 김광태 씨는 그때까지 동급의 다른 차량 모델로 나가지 않는다는 옵션 계약을 했다는 후문이다.
광고는 지난 9월 BMW골프 챔피언십을 앞두고 첫 선을 보였으며 연말 전국으로 방영을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태 씨는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맥도날드 광고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당시 광고는 맥도날드 광고 사상 처음 등장 인물을 전원 아시안으로 캐스팅, LA의 ‘리틀 도쿄’ 촬영장을 서울 종로처럼 꾸며 제작했다. 그가 한국인 다이빙코치역을 맡은 광고는 6개월간 미 전역의 TV에 방영됐다.
1970년 미국에 이민 온 김광태 씨는 미국영화배우조합(SAG) 회원으로 코카콜라, 노스웨스트 에어라인, LA 유나이티드 등 수백편의 광고에 출연한 것은 물론, 영화배우, TV 탤런트, 성우 등으로 활약했다.
연기자가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미국 생활 초기엔 주유소 종업원, 구두 수선공, 공사장 인부 등 험한 일을 전전했다. 합기도 5단의 무술실력을 갖춘 덕분에 헐리우드의 거물 프로듀서 퀸 마틴의 리무진 기사 겸 보디가드로 채용된 그는 3년후 TV프로 ‘바니 비 존스’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행운을 잡게 됐다.
이후 ‘MASH(야전병원)’ 시리즈의 한국 의사역, ‘엘렌’의 한국인 남편, ‘와이즈 가이’의 비즈니스맨 등으로 출연했고 최근엔 FOX의 인기드라마 ‘Bones'와 CBS의 범죄수사프로 CSI에서도 단역이지만 꾸준히 출연했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그는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소년가장이 되어 늘 배움에 목말라 했단다. 기왕이면 배우하는데 도움이 되는 언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그는 1990년대 초 UCLA 익스텐션 과정에 등록, 일본어를 3년 간 배웠다. 환갑을 넘긴 97년엔 중국어를 정복하기 위해 중국 명문대 칭화(淸華)대학으로 유학까지 떠났다.
당시 중국대사관이 60세 이상 외국인에게 유학비자를 내주지 않는다고 거절했지만 안면이 있는 칭화대 교수의 추천을 통해 기어코 입학했을만큼 만학도의 의지는 대단했다.
3년간의 유학생활을 통해 중국어 고급과정까지 마스터한 그는 이후에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모교로 잘 알려진 상하이 교통대학에서 6개월 간 연수도 받기도 했다.
덕분에 이제 그는 종종 중국인으로 착각할만큼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한다. 2년전 출연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의 중국인 CEO역은 수많은 중국인 경쟁자들을 뚫고 캐스팅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광고에 중국어 대사가 있기 때문에 중국 배우만 지원하라는 조건이 있었어요. 하지만 한번 해보자고 도전해봤지요. 최종 오디션에 4명이 올랐는데 가장 먼저 중국어로 내 소개를 하고 주어진 연기를 하고 나왔어요. 며칠후에 합격 소식을 듣고 촬영장에 갔더니 후보로 올랐던 중국인 연기자들이 엑스트라로 왔더라구요. 좀 미안하더군요. 허허..”
동갑인 부인 헬렌 김 씨와의 사이에 본 2남1녀는 모두 명문 UCLA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파트타임 배우와 모델로도 활약한 딸 줄리 씨는 파인애플 컴퍼니 ‘돌’의 부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줄리 씨의 딸인 외손녀 에리카 민(23) 씨는 아기때부터 모델로 데뷔, 미스코리아 남가주 미로도 선발되는 등 재색을 겸비하고 있다.
팔순을 불과 2년 앞두고 있지만 김광태 씨의 의욕은 열혈청년 못지 않다. 지난달엔 패서디나에서 중국 정부가 주관하는 중국어수능시험도 치렀다. 공식적인 중국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다. 지금도 중국 무술 ‘영춘권(詠春拳)’의 사범으로 활동할만큼 건강도 자신 있다.
그는 “지금 제가 55세부터 75세까지의 역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앞으로 10년은 활동할 겁니다”하고 활짝 웃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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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김광태씨 2008년에 맥도날드광고에서 대통령 역
김광태 씨는 지난 2008년 맥도날드 광고에서 한국의 대통령 역을 맡아 화제를 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맥도날드 광고는 '세계의 지도자들'이라는 주제로 그해 9월 제작됐다. 촬영은 LA의 맥도널드 광고세트장에서 진행됐다.
내용은 두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리무진을 탄 이명박 대통령(?)이 맥도날드 매장을 찾아 ‘드라이브인 쓰루’로 주문한 후 차 안에서 비서실장(?)에게 훈계조의 전화를 하는 것이다. 특히 광고 속 대통령은 한국말로 “박 실장. 일을 어떻게 그렇게 처리하십니까? 잘 하세요. 아시겠습니까?”라고 했다.
출연진으로는 경호원역에 흑인과 백인 두 명이 캐스팅됐고 치어리더 3명, 엑스트라 30명이 동원됐다. 김광태 씨는 “한국말로 적당한 대사를 하는게 좋겠다고 해서 애들립으로 했더니 반응이 좋았다”면서 간단한 대사지만 세시간을 되풀이할만큼 공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대통령 역은 100여명이 오디션에 참여, 3주간의 선발 과정을 거쳐 김씨가 최종 영광을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