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가 9일 도쿄지방재판소에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할 것을 고려하라는 행정소송(行政訴訟)을 청구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도쿄국립박물관은 도굴품이 확인된 오구라컬렉션의 보관을 중지하고, 원산국인 대한민국으로의 반환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혜문스님은 “피고가 도굴품이나 도난품일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1년 오구라 컬렉션을 기증받은 것은 국제박물관 협회의 윤리강령(ICOM Code of Professional Ethics)의 2조 3항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하고 “즉각 보관을 중지하고 원산국 반환을 고려해야 한다”고 소송의 청구 취지를 밝혔다.
이번 소송은 문화재 반환 문제를 다루는 일본내 최초의 법정소송으로 한일협정 50주년을 맞아 오구라 컬렉션 문제를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올릴 것으로 보여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최근 오구라 컬렉션 문제는 한일간의 중요한 이슈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김종덕 문화부 장관은 지난 2014년 일본 문부장관 시마무라와 만난 자리에서 오구라 컬렉션 반환문제를 언급한 적도 있었다. 이번 법정 소송으로 한일간 문화재 반환 문제의 양국간의 주요 키워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강점기에 남선합동전기회사의 사장을 역임한 오구라 타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96~1964)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유물 1,100여점을 지칭한다. 이 컬렉션은 오구라 타케노스케 사망후 ‘재단법인 오구라컬렉션 보존회’에 의해 관리되어 오다 아들 야스유키(安之)에 의해 1981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다.
65년 한일협정 당시에 일본 외무성은 “일본 외무성이 돈을 주고 구입해서라도 일부 한국으로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개인 소장품’이란 이유로 반환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정현숙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오구라, 일본 패망후 유물 밀항선에 싣고 도망
1964년 5월 대구 시내의 한 육군부대 대장실 마루 밑에서 전기시설 보수 공사 중 도자기 140여 점이 무더기로 나왔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다양한 시기를 아우르는 명품이었다.
이 건물의 전 주인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기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1964)다. 대낮에도 인부를 끌고 고분을 도굴하러 다닌 그에게 문화재를 넘기려는 암거래상이 종일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오구라는 일본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후 1904년 경부철도회사에 입사해 회계를 담당하면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 전기회사를 설립, 재력가로 부상했다. 이때 쌓은 부를 바탕으로 1920년대부터 닥치는 대로 한국 문화재를 모았고 일본 패망후 수집했던 유물 1100여점을 밀항선에 싣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마루바닥밑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그가 급히 도망가면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것들이다.
그의 사망 후 1981년 아들 야스유키가 이 유물들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이다. 오구라 컬렉션은 고고 회화 조각 공예 전적 복식 등 전 분야의 유물을 망라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수집망을 펼쳐놓고 고대 유물을 긁어모았던 만큼 양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높다.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5~6세기 신라 금동투각관모(金銅透刻冠帽)는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신라시대 백화수피제(자작나무 껍질) 관모가 발굴된 적은 있지만 금동관모는 나온 적이 없다.
청동기 시대의 어깨갑옷 모양 장식판인 견갑형 동기도 한국 미술사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문화재다. 표면에 새겨진 그림들이 고대 회화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일본에서도 오구라 컬렉션의 가치를 인정해 금동관모 등 8점을 중요문화재, 견갑형 동기 등 31점을 중요미술품으로 인정하는 등 유물 39점을 국가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오구라 컬렉션은 우리가 일본에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 중 하나로 꼽혀 왔다.
1965년 한일 회담에서도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개인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댔다.
그러나 우리 학계와 반환운동을 이끄는 시민단체는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만큼 더 이상 사유 컬렉션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역사학자는 “40년 전에는 사유 재산이라 안 되더니, 이제 와선 또 국유 재산이라고 돌려줄 수 없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