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최초로 아무런 조력자의 도움없이 LA부터 뉴욕까지 '나홀로 미대륙횡단 마라톤'에 도전한 재미동포 강명구(58) 씨가 출발한지 64일만에 예정뙨 거리의 절반을 돌파했다. 사실상 반환점(返還點)을 지난 셈이다.
강명구씨는 지난 5일 아칸소주의 포트 스미스를 통과함으로써 1600마일(약 2560km) 지점을 지났다. LA-뉴욕 구간은 약 3150마일(약 5040km)에 해당된다. 지난 2월1일 LA의 산타모니카 비치를 출발한 그는 현재 페이스를 지속할 경우 6월 초순 목적지인 뉴욕 유엔본부 앞에 골인할 예정이다.
미대륙횡단 마라톤은 지난 2010년 6월 권이주 전 뉴욕한인마라톤클럽 회장이 한인 최초이자 만65세의 최고령 아시안 기록을 세우며 완주(完走)한 바 있다. 강명구씨의 도전이 주목받는 것은 지원 차량 등 일체의 조력자나 보호장비 없이 나 홀로 달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혼자서 달려야 하기 때문에 그는 텐트와 취사도구 등 캠핑 장비와 여벌의 옷 등 최소한의 물품을 실을 특수 유모차(아이언맨 유모차)를 구입했다. 맨몸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100파운드(약 45㎏)의 유모차를 끌고 달리는 일종의 핸디캡 레이스인 셈이다.
극한의 레이스를 평범한 50대 후반의 그가 뛰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불가능하다며 한결같이 말렸다. 그러나 그는 "LA에서 뉴욕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의 근육만을 사용하여 달려오는 것을 오래 전부터 꿈꾸어왔다“면서 "올해로 분단 70년이 되는 조국의 통일이 내가 떠나는 길보다 더 멀고 험해도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더욱 가까이 느껴질 것이라는 믿음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기어코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밀고 뛰는 특수유모차 앞에는 한반도 이미지를 배경으로 '남북평화통일 LA to NY‘이라는 배너가 붙어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지난 두달여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사막을 건너고 눈보라치는 험산준령도 넘어야 했다. 수십 km를 달려도 인가 하나 없는 황무지(荒蕪地)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유카밸리로 넘어가는 구간에선 한 밤중 길을 잃고 들짐승과 마주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새벽 6시에 길을 떠나 거리와 행로를 GPS를 통해 표시해주는 시계의 배터리도 다 되고 몸의 에너지도 다 방전되어 다음날 새벽 2시경 목적지에 간신히 도착하는 일도 있었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언감생심 고기 등 상할 수 있는 음식은 싣지도 못하고 통조림으로 며칠을 버티는 날도 계속됐다. 유모차에 결국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서 야영(野營)하는 일도 있었다.
손수레를 밀며 37 마일 길을 이동했으니 몸과 마음이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내비게이션과 구글 맵을 이용해 한참을 따라왔는데 길이 없었어요. 스마트폰의 지도 앱 몇 개를 씨름해도 하나는 왔던 길을 돌아서 높은 산을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진 길로 안내를 하더군요. 세상에서 제일 빠르게 업데이트 한다는 구글 맵도 그럴진데 삶의 길을 인도하는 인생의 안내서는 어떻겠어요. 다만 필요한 것은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고 실패를 해도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갓길이 없는 도로도 꽤 있었다. 쏜살같이 차량이 지날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다. 어둠이 이슥할 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극도로 위험했다. 한번은 경찰차가 그를 발견하고 날이 밝으면 가라고 4마일 떨어진 모텔의 약도를 그려줬지만 불빛도 보이지 않는 사막(砂漠)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 텐트를 치고 곤한 잠을 청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무거운 손수레를 밀고 힘겹게 오를때는 80이 넘은 노모와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려 펑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 모텔에선 모처럼 샤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했는데 한참 달리다 빨래를 두고 온게 생각이 났다. 그러나 온 길을 돌아갈 수가 없어 옷가지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나쁜 일만 있었던건 아니다. 모하비 사막에선 리차드라는 현지 도로국 감독관이 그가 달리는 것을 보고 중간에 샌드위치와 물 등 비상식량을 조달해주기도 했다. 그이가 아니었다면 폐쇄된 도로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서 미아(迷兒)가 될뻔 했단다.
애리조나 킹맨의 원주민 보호구역에선 한류팬인 딸과 함께 사는 가정의 호의로 집에 초대되기도 했다. 사슴같은 눈망울의 원주민 소녀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를 하며 한국 드라마와 가수들에 대해 질문해 강명구씨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일차 관문으로 잡은 록키산맥 플랙스팁스에선 우연히도 한국인 남성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뉴스로 등 한국언론을 통해 내가 달린다는 것을 들은 그는 뉴욕에서 LA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는데 반대편 도로에서 차를 돌려 온 것이었다.
그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줄 몰랐다"며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힘찬 응원과 함께 음료수를 한보따리 전해주는 등 훈훈한 정을 베풀었다.
뉴욕=노정훈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누가 사막을 척박하다했는가."
강명구 씨는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서 야영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는 텐트도 치지 않고 그냥 침낭(寢囊) 속에 누웠어요. 밤하늘의 별들이 아이맥스 영화관에 들어온 듯 찬란하게 빛나더군요. 저렇게 맑고 깨끗한 것을 바라보니 내 눈빛도 맑아지고 마음도 찬란해졌습니다. 사막이 척박(瘠薄)하다고 누가 말했나요. 풍요로운 햇살과, 대지에 충만하게 흐르는 기와, 저렇게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와 바람 그리고 밤하늘에 맑게 빛나는 별들이 있는데요. 내가 흘리는 땀이 사막을 적실 수는 없겠지만 아무도 없는 사막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