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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여성, 10대소년도 남파공작원?’ 美한인소장가 사진첩

‘이승만 암살 시도’ 등 희귀사진첩…1955년 특무대장 김창룡 제작
글쓴이 : 임지환 날짜 : 2015-04-22 (수) 21:54:50

 

'기지촌 여성위장부터 부채수선공, 10대소년 공작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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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대통령의 암살 시도 장면이 공개돼 화제를 모은 육군 특무대(구 방첩대) 제작 앨범에 기지촌 위장 여성과 10대 공작원 등 희귀사진(稀貴寫眞)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사진첩은 1955년 7월 육군특무대장 김창룡이 제작해 미국의 영국의 정보기관에 전달한 것으로 뉴저지의 김태진 국제지도수집가협회(IMCoS) 한국대표가 2년전 런던의 한 고서전문 딜러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1948년 방첩대로 탄생한 특무대는 초기엔 군부내 좌익세력을 솎아내는 역할을 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파 공작원 검거, 정치적 사건 모의공작 등 이승만정권의 비밀경찰 역할을 했다.

 

사진첩엔 한국전쟁 중이던 52년부터 54년사이에 특무대가 검거한 북한 공작원이나 간첩활동을 한 피의자들의 사진과 신상정보, 행적 등이 영문으로 소개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속에 이승만 대통령 암살 시도 사진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알려진대로 '이승만 암살' 시도는 항일독립운동가 출신 유시태(당시 63세)와 민의원인 김시현(당시 70세) 등이 1952년 6월 공모한 사건이었다. 이 사진이 체포된 북한공작원들과 함께 수록된 것은 특무대장 김창룡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국가원수인 이승만을 저격 시해하려 한 유시태 등의 배후에 북한이 있는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또한 이 앨범이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에 제공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세기의 특종'과도 같은 희귀사진을 수록해 공적(功績)을 과시하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창룡이 사진첩 서문에 "고도로 훈련되고 사상으로 무장한 수많은 간첩들이 북한괴뢰정권(North Korean Puppet Regime)에 의해 남파돼 왔다. 수록된 사진들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야만적인 사례들을 말해주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 사진첩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성에 대한 귀 기관의 정보에 가치있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영문이름과 친필사인을 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사진첩엔 북한공작원 사건과 관련, 상세한 정보들과 희귀 사진들이 다수 눈에 띈다. 총 52 페이지 분량으로 수록 사진은 54장이며 3페이지까지는 북한의 남파공작원과 양성소 정보, 침투 경로 등이 표시된 한반도 지도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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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공작원 침투로'라는 영문제목이 달린 한반도 지도엔 평안도 벽동과 만포, 신의주, 평양 인근의 강동 등 5개 공작원 양성소를 표시했고 강원도 통천과 고성, 강화도 인천 충남 서산의 서해안 루트 등 총 10곳의 침투로,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대구 등 공작원들이 암약(暗躍)한 대도시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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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와 주요 혐의, 체포일시 등이 영문으로 명기된 사진중엔 1954년 2월 대구에서 검거된 팔공산 부대장 유응재(당시 37세)가 눈에 띈다. 함경남도 홍원 출신인 그는 '남도부'라는 가명으로 널리 알려진 거물 하준수 등 5명과 함께 체포돼 그해 10월 사형이 언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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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수선공으로 위장한 김 모(55)는 평양여성연맹 위원장 출신 남 모(39)와 부부로 가장해 서울의 한 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다가 1953년 8월7일 특무대에 체포됐다는 설명이 달려 있다. 또 '에스더'라는 별명의 강모(25) 여성이 소총을 잡고 있는 사진을 수록(收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여성이 미군부대 기지촌에서 매춘부(賣春婦)로 위장 생활하며 미군정보 수집과 심지어 게릴라 활동을 위해 미군들의 무기도 수집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앳된 얼굴의 청소년 6명이 두줄로 포즈를 취한 것도 있다. "1953년 7월16일 체포된 김 모(16) 등 6명의 청소년 공작원들은 북한에서 짧은 훈련을 받고 남파(南派)돼 국군이 사용하는 우물이 취수장에 독극물을 타는 임무가 부여됐다"며 독극물 캡슐 사진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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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양씨 성을 가진 중국 국적의 공작원(33)을 비롯, 남파공작원들의 공작자금을 위한 아편 등 마약을 촬영한 사진, 단파라디오 세트와 암호해독본을 들고 온 김모(25) 공작원도 있다. 박모(34) 공작원은 왼쪽 귀옆 흉터(SCAR)를 화살표로 표시하고 신원 확인용 마크라는 설명을 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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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의 마지막 장은 박모 경찰서장이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가는 장면이다. 사진설명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박 서장을 사형장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돼 있다.

 

이 사진첩은 오는 6월24일 국내최대의 문화예술 경매사이트인 코베이(www.kobay.co.kr 대표 김덕기)를 통해 거래될 예정이다.

 

뉴욕=임지환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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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특무대 전신 방첩대로 탄생…이승만반대세력 사찰 탄압도

 

특무대의 전신 방첩대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후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의 활동 감시, 북한정권의 대남간첩활동 조사, 대북 첩보·정보수집 등 반공·방첩·정보업무을 수행하는 동시에, 이승만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사찰탄압(査察·彈壓) 등을 담당한 군사기구로 탄생했다.

 

정보국의 활동이 확장·강화된 데에는 4·3제주도 민중항쟁, 여순반란사건 등으로 인한 위기감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여순사건 발생 직후인 1948년 11월 1일 정보국 특별조사과는 특별정보대(Special Intelligence Service)로 개칭되었고, 권한도 강화되었다. 특별정보대는 본격적인 숙군작업(肅軍作業)에 착수하여, 제3과장 김안일의 지휘 하에 김창룡·이세호 등이 이끄는 특별조사반의 주도 하에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9월 사이에만도· 좌익 혐의를 받은 570여 명의 군인과 민간인 85명을 검거했다.

 

또 김창룡 중령과 오제도 검사 등이 참여한 ‘군·검·경 합동수사대’를 조직하여, 김종석·오일균 등 고위급 장교를 체포하였으며, 거물간첩 성시백을 체포하였고, 간첩활동 연루 혐의로 민간인 135명을 검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별정보과는 정보수집·색출·검거 및 증거수집 등의 능력이 한 단계 상승되는 등, 정보기관으로서의 역량이 향상되었다. 1949년 10월 특별정보대는 제2과 방첩대로 개칭되었고, 군·검·경 합동수사대를 예하(隸下)로 편입하였다.

 

이후 한국전쟁 초기 이적성이 우려되는 집단인 좌익전향자로 구성된 보도연맹원과, 정치범으로 간주된 형무소의 수용자의 학살을 주도하는 등, 반공 좌익세력 척결(剔抉) 의 최선봉 역할을 하였다.

 

1950년 8월 낙동강전선까지 밀린 전황을 배경으로, 종래의 부산지구 방첩대는 경남지구 방첩대로 개칭되었고, 김창룡 중령이 부대장에 임명되었다. 서울수복 후에는 경인지구 방첩대가 발족하여 군·검·경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본부장: 김창룡, 1950. 10. 7∼1951. 5. 25), 북한군 점령기간의 적극적인 부역자(附逆者) 색출작업을 주도하였다.

 

합동수사본부 활동을 통해, 김창룡을 위시한 정보장교들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1951년 5월 국회의 규탄에 의해 합동수사본부는 해체되었지만, 김창룡은 부역자 처벌의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특무부대장으로 영전하였다. 학살현장을 목격하고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방첩대는 경찰과 함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방첩대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 많은 야만적인 수단을 사용했고, 민간인을 강탈하기도 했다.

 

<자료 출처 민족문화대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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