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최초의 동해병기 법안이 일본의 노골적인 로비를 뚫고 마침내 통과됐다. 미버지니아주 상원은 23일 전체 회의에서 ‘동해병기 법안’을 표결, 찬성 31표 대 반대 4표로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동해병기 법안이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 표기를 의무화하는 이번 법안은 하원에 계류중인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통과되면 상하원 조율과정과 주지사 서명을 거쳐 7월 1일부터 정식 발효된다.
이번 상원 통과는 미국의 지방자치단체로는 최초의 사례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총력 로비를 뚫고 이뤄낸 개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형 로펌을 로비스트로 고용해 법안 통과 저지를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
일본의 로비는 지난 16일 상원 교육보건위원회에서 당초 만장일치 통과 예상을 깨고 9-4로 반대가 4표나 나오면서 심상치 않은 기류를 조성했다. 특히 반대표중에 2012년 상정된 동해병기법안을 찬성했던 의원 두명이 입장을 바꾼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당초 21일 예정된 전체 회의가 확실치 않은 이유로 하루 밀렸다가 때마침 몰아친 눈폭풍으로 또 하루를 연기해 23일 회의를 열게 된 것도 일본의 로비시간을 벌게 해주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보이지 않는 고비는 22일 미국무부의 정례 브리핑이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하도록 하는 법안 표결에 관한 미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미국 정부는 지명위원회(BGN)가 결정한 ‘일본해’(Sea of Japan)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세계의 지명에 대해 하나의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계속된 미국의 정책”이라고 밝혔다.
미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새로울게 없는 것이지만 ‘동해병기 법안’ 통과의 마지막 단계를 코앞에 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불길한 조짐으로 해석됐다. 국무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에 따라 최소한 중도입장 의원들이 ‘동해병기 반대’로 선회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일었기때문이다.
마지막 위기는 본회의에서도 있었다. 민주당 원내 대표인 도날드 맥키친 의원이 돌연 ‘동해와 일본해를 표기하지 말자’는 수정안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교과서의 기존 명칭 자체를 없애자는게 아니라 동해병기 법안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꼼수‘로 지적되었다.
이날 회의를 참관한 ‘미주한인의 목소리(VoKA)’ 피터 김 회장은 “만일 수정안이 받아들여지면 지금까지 노력한 동해병기 법안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엄청나게 긴장했다”고 털어놓고 “회의장엔 한인들이 100명이상 모인 것이 원안대로 표결하도록 의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해병기 법안은 아직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하원에 상정된 법안이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원은 내주부터 소위 심의에 들어가고 전체 회의 표결은 다음달 중순께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은 상원의 실패를 거울삼아 하원의 법안 저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동해병기 법안이 버지니아주에서 공식화 될 경우 하나의 선례가 되어 다른 주로 퍼져나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동해병기 법안이 하원에서도 통과하려면 하원의원들에게도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동해병기 법안 지지 의견을 지속적으로 보낼 필요가 있다. 피터 김 회장은 “하원은 의원들이 100명이나 되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버지니아 한인들이 일치 단결해 상원 통과의 결실을 이룬 것처럼 하원에서도 꼭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동해의 이름에 대한 논쟁
다음은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동해 지명에 대한 해설이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 연해주 및 사할린 섬에 둘러싸인 바다는 그 호칭 및 명명(命名)에 대한 논쟁이 있다. 이 바다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의 주권과 관할권이 미치는 해역으로, 이들 연안국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동해"(東海)’,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동해(朝鮮東海)’, 일본에서는 ‘니혼카이(日本海 にほんかい)’, 러시아에서는 ‘야폰스코예 모레(Японское море, 일본해)’로 부르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양측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 분쟁은 양측이 국내에서 사용하는 명칭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명칭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해가 역사적으로 ‘동양해(Oriental Sea)’ 또는 ‘한국해(Sea of Korea)’로 불려 왔으므로 ‘동해(East Sea)’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 1810년 일본이 만든 지도에도 '조선해'라는 한자가 표기됐다. www.en.wikipedia.org
반면 일본은 ‘일본해(Sea of Japan)’가 19세기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된 이름이며 이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북조선은 대한민국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조선동해(East Sea of Korea)’로 표기하기를 주장한다.
이 해역이 일본해로 굳어진 계기는 1929년 국제 수로 기구(IHO)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제1판에서 국제수로기구 창립 회원국이었던 일본의 주장에 따라 일본해로 표기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국권을 피탈 당한 상태였다. 가장 최근에 나온 <해양과 바다의 경계>는 1953년 발간된 제3판이며, 여기에도 일본해로 단독 표기되어 있다.
한국은 1957년 국제수로기구에 가입하였고, 1992년부터 일본해 명칭에 이의를 제기했다. 1974년 국제수로기구는 특정 바다의 인접국 간에 명칭 합의가 없는 경우, 당사국 모두의 명칭을 병기하도록 하는 기술적인 권고를 하였으나, 일본은 이것은 만이나 해협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동해와 같은 공해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은 1991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제 연합 동시 가입한 후인 1992년 제6차 유엔 지명 표준화 회의(UNCSGN)에서 최초로 동해의 국제적 통용 명칭인 ‘Sea of Japan’에 대하여 정부 차원에서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명칭 시정을 공식 요구했다. 이후 유엔의 관련 회의와 국제수로기구 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이 문제를 재차 제기하고 있다.
1998년의 제7차 유엔 지명 표준화 회의에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 목소리로 일본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본은 이 문제를 쟁점화하는 것을 꺼려, 대한민국 측의 협상 요구를 번번이 거절하였다. 2002년 제8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는 남한과 북한 대표단이 과도기적 조치로서 일본해와 동해(북한은 조선동해)의 명칭 병기를 요구했으나, 일본은 이를 일축하며 한국 측 요구를 저지하기 위한 치열한 로비를 벌여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켰다.
현재 국제 수로 기구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4판을 발간 준비 중이다. 2002년 총회에서 대한민국은 동해 명칭 문제를 의제 상정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일본의 로비로 무산되었고, 2007년 총회에서는 총회 의장에 의해 동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우선 발간이 제안되었다. 2012년 총회에서도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 문제는 끝내 결정되지 못하였으며, 이 논제는 2017년 총회로 다시 연기되었다. 다만 2012년 총회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 방안은 일본을 제외한 어떠한 회원국의 찬성표도 받아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