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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신대운동은 세계적 성공사례”

美원로사회학자 민병갑 석좌교수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5-07-07 (화) 12: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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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신대 운동은 세계적인 성공사례입니다."

 

미국의 원로사회학자 민병갑교수(뉴욕퀸즈칼리지 석좌교수)는 1990년 태동한 한국의 정신대 운동을 현대사에서 전시 인권유린의 문제를 환기시킨 역사적인 운동으로 평가했다.

 

민병갑(73) 교수는 5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창설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전범국가 일본의 법적 역사적 책임을 지우는 한편, 한국의 가부장적 (家父長的) 문화의 폐해(弊害)까지 개선시켰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고 지적했다.

 

재외한인사회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는 민병갑 교수는 미주 아시아이민사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로는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민병갑 교수가 위안부 이슈에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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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갑 교수는 최근 퀸즈의 미주한인청소년재단에서 위안부를 주제로 특별강연도 해 시선을 끌었다. 원로학자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돌연한 관심은 왜일까? 사실 민병갑 교수는 이미 90년대부터 위안부 이슈를 연구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나눔의 집'도 네차례나 방문했고 할머니들과 몇주간 생활을 같이 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 글도 쓰고, 다른 분들의 인터뷰도 도와드리고 했지만 이민사 연구에 매달리느라 위안부문제에 관한 영문 서적을 쓰지 못했어요. 그게 마음의 부채처럼 있었는데 근자에 와서 일본이 역사퇴행으로 나가고 급기야 위안부 문제를 왜곡할 수 있는 책자가 미국에서 발행돼 더 이상 가만있어선 안되겠다 마음 먹게 되었어요."

 

정신대 이슈는 1990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시민단체에서 일본이 위안부역사를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이를 회피하자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됐다. 1991년 8월14일 위안부 피해자 최초로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을 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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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갑 교수는 "한국의 정신대운동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되레 큰 반응이 있었다. 사실 일본은 60년대부터 정신대 문제를 연구했고 일본 주오(中央)대의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같은 역사학자는 일본 국방문서를 파헤쳐 일본이 위안부 조직을 다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피해자인 한국이 90년대에 들어서야 이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가부장제도의 폐해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자 일본에서는 그럼 증거를 대라고 압박했다. 증인을 나오라고 한건데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에서 부끄러운 과거를 감히 끄집어낼 여성이 없을거라고 생각한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이후 봇물 터지듯 피해할머니들의 사례가 수집됐고 이대 이효재 교수, 윤정옥 교수 등 정신대운동을 선두에서 이끈 지식인들이 있었다. 유엔에서는 일본의 사과와 책임을 명문화하는 성과가 이어졌고 특히 일본에서도 위안부들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93년 '고노 담화'와 일본의 침략피해를 사과한 95년 '무라야마 담화'까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민병갑 교수는 "일본에서 96년 교과서에 정신대문제를 넣자 우익들이 나섰다. 미군이 한국에서 한것도 똑같은데 왜 우리만 그러냐. 교과서에 넣으면 후손들이 어떻게 보겠느냐, 하면서 보수국수주의 운동이 일어나서 교과서를 바꿔 나갔다. 그리고 2006년 아베 신조(安倍晉三)가 처음 정권을 잡고난후 역사왜곡의 형편없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위안부 운동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여전한 걸림돌이 있다. 위안부 피해자를 부끄러운 개인의 과거로 인식하며 편견을 갖는 삐딱한 시각이다. 민병갑 교수는 "위안부기림비는 미국 뉴저지에서 2010년 처음 세워졌다. 지금 뉴욕과 뉴저지, 워싱턴, 캘리포니아 등 10곳에 기림비와 소녀상이 12개나 있다. 한국은 어떤가. 정대협 등이 각고의 노력으로 2011년에야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평화비)를 세웠다"고 말했다.

 

민병갑 교수에 따르면 90년대 부산공원에 기림비를 세우려 했을 때 한 독립운동관련 단체에서 '그런 여자들 비석 못세운다'고 강력 반대해 무산됐다. 다른 지역에서도 대동소이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민병갑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 전까지 왜 50년동안 한국에서 피해자들이 말도 못했겠나. 정대협이 정말 설득 많이 했다. 여러분들이 죄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죄인이라고. 그래서 이분들이 용기를 낸거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등록된 위안부 피해할머니들 230분중 다 돌아가시고 48분만 남았다. 일본이 민간에서 운영하는 재단통해서 돈을 받으라고 한건 할머니들에 대한 굉장한 모욕(侮辱)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만이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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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갑 교수는 효과적인 위안부 운동을 기림비 건립과 학자들의 연구에서 찾았다. 미국에서도 기림비를 세우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림비가 하나 세워지면 하나의 상징물로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에 대한 역사교육, 시의원들의 동의가 전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안부문제 연구하려 해도 우리 정부가 아니라 일본 등 다른데서 온다. 위안부 역사연구도 정신대협회 연구위원들이 한거다. 일본역사학자처럼 생명을 바쳐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병갑 교수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정신대운동 관계자들 정말 잘했다. 아마 남자들이 했으면 감투싸움하느라 제대로 못했을거다. 정대협 공동대표로 앞에서 이끌었던 이효재(91) 교수, 윤정옥 교수(92), 정말 훌륭한 분들이다. 무엇보다 우리 할머니들, 그 힘든 시련을 겪고 노구를 이끌고 유럽이며 워싱턴에서 증언하시는 할머니들 얼마나 용감한 분들인가. 대학생, 정치인 다 눈물 흘리고 할머니들에 감동 받는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 인정안하면 안보리 이사국 절대 못한다"고 강조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민병갑 교수는 2012년 1만2000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미국사회학협회(ASA)에서 수여하는 평생공로상을 아시안으로는 유일하게 수상한 주인공이다. 2013년에는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선정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받았고 뉴욕시 감사원장이 수여하는 ‘우수 아시안 아메리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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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민병갑 퀸즈칼리지 석좌교수 ‘자랑스런 한국인상’ <2013년 6월 3일>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m0604&wr_id=2600

 

뉴욕 퀸즈대학 석좌교수 / 뉴욕 퀸즈대학 재외한인연구소 소장 /뉴욕 시립대학 교수

미국에 온 연도 : 1972년

학력 : 1970년 서울대학교 사학과 / 1972년 조지아 주립대학 학사 / 79년 석사(사학) / 79년 교육철학 박사 / 83년 사회학 박사 / 1987년 퀸즈대학 및 뉴욕 시립대학 대학원

저서 : 1988년 Korean Small Business in Atlanta / 1996년 Caught in the Middle Korean Merchant in America’s Multi Ethnic Cities / 1998년 Korean Immigrant

Families in NY / 2009년 10월 해외 한인동포의 모국과의 연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 / ‘종교를 통한 민족성의 보존’ (2010) / 2010년 12월1일 UCLA 학술대회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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