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도자 장준하선생의 서거 40주기 추모행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8일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장준하선생의 3남인 장호준 목사와 이재수 미주희망연대 사무총장, 김인숙 LA사람사는세상 대표 등 다수의 한인들이 참석했고 한국에서 장준하기념사업회 이준영 상임운영위원장 영화배우이자 시민운동가 문성근 국민의명령 상임위원장, 이재명 성남시장이 동영상 기념사를 보내왔다.
일제하 광복군으로 항일투쟁을 했고 해방후 민족 지도자로 존경받은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를 당한 지 37년이 지난 2012년 타살(他殺)의 증거가 밝혀진 바 있다.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작가의 집'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항일과 친일로 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 38명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한 "캐리커처로 보는 '같은 시대 다른 삶' 기획전이 함께 열려 눈길을 끌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이 작품들은 8월15일에 LA 평화의 교회와 Washington DC, 샌디에고 등에서도 순회 전시를 하게 된다.
이와 함께 장준하 선생이 발행했던 사상계와 씨알의 소리, 저서 돌베개 등을 전시해 고인이 생전에 글로써 민족을 깨우기 위해 고민한 흔적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날 장호준 목사는 '해방과 분단 70년-같은 시대 다른 삶'이란 주제로 한 시간 반에 걸친 열띤 강연을 펼쳤다. 장호준 목사는 장준하 선생의 삶과 친일 민족반역자들의 삶을 비교하며 장준하 선생이 편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선택과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해야만 하는 옳은 선택의 기로에서 매번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았는지, 또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것을 주문했다.
<이상 사진 유정석씨 제공>
장호준 목사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암살(暗殺)'의 명대사 "알려 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를 인용하며 부친 장준하 선생이 평생 목숨을 걸고 투쟁하며 이루고자 했던 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목이 메인 듯 눈물을 흘리며 강연회를 마쳤다.
장호준 목사는 2013년 5월 북미에 거주하는 민주시민들의 모임인 '미주희망연대'를 설립, 현재 의장직을 맡고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들의 역사인식을 깨우치기 위해 미주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장준하 광복군 출신 민족지도자
장준하(張俊河 1918년 8월27일-1975년 8월17일) 선생은 일본군 쓰가다 부대에 자원 입대, 1944년 1월에 제65사단 7991부대에 배치됐으나, 그해 7월 장쑤 성 쑤저우에서 탈출, 중국 중앙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군 중앙군 준위가 되었다. 1945년 쓰촨 성의 한국 광복군을 찾아가 1945년 2월부터 한국 광복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광복군으로 재직 중 미국 CIA의 전신인 OSS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였다. 1945년 11월 임정 귀국 제1진으로 귀국, 이후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에서 공무원에 채용되어 서기관으로 임용되었고, 1950년 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 1952년 문교부 국민사상연구원 기획과장, 서무과장, 사무국장 등을 지내고 '사상계'를 창간하고, 1956년 동인문학상을 제정했다.
'사상계'는 당시 자유당 정권을 신랄하게 규탄하며 4·19 혁명의 단초가 되었으며, 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 장면내각의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 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국토건설단장 등을 지냈다.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 2013년 1월 24일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하 위키피디아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A4%80%ED%9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