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한을 모두 담은듯 그이의 목소리는 차라리 피울음이었다. 노래가 아니라 칼날처럼 폐부(肺腑)를 찌르는 아픔이 마디마디 배어 있었다.
지난 19일 뉴욕 맨해튼 무대에 선 소리꾼 장사익의 ‘소리가 춤을 부른다’ 공연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분위기속에 치러졌다.
맨해튼 55가 뉴욕시티센터에서 펼쳐진 무대는 16일 캐나다 토론토에 이어 22일 LA로 이어지는 북미 세 도시 공연의 하나로 5년만에 성사된 뉴욕 공연이기도 했다.
투어중 세월호의 참사소식을 접한 그는 안타까운 심정과 깊은 애도를 담은 유인물을 공연안내 책자에 첨부했다. 무대 중앙엔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가 생환(生還)하기를 간절히 희구하는 영문 배너를 설치했다.
한국 명인들의 무대로 꾸며진 1부도 살을 풀고 액을 푼다는 뜻의 살풀이 춤을 먼저 선보이도록 순서를 바꿨다. 이정희의 도당살풀이 춤이 끊어질듯 끊어질듯 구슬픈 구음에 맞추어 무대를 채워 나갔다.
밀양 북춤의 대가인 하용부와 흰 띠 상모를 빙글빙글 돌리는 채상소고춤의 김운태의 무대, 고운 빛깔 한복에 한과 멋, 흥을 담은 박경랑의 교방춤이 이어졌다.
2부는 한복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장사익의 독무대였다. ‘허허바다’를 시작으로 ‘꽃구경’ ‘봄날은 간다’ ‘동백아가씨’ ‘이게 아닌데’ ‘님은 먼곳에’, 그리고 ‘찔레꽃’이 관객들의 빈 가슴을 시나브로 적셨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소리와 섬세하게 연출된 공연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당초 공연은 노래와 신명나는 흥, 춤사위가 어우러지도록 짜여졌지만 세월호의 참사로 장사익은 구성진 사설과 걸죽한 입담을 생략한 채 혼신의 힘을 다한 깊은 소리를 내지르며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노랫말을 읊어냈다.
특히 ‘허허바다’에서 “살아도 산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것이 없네. 태풍이 지나간 자리 겨자씨 하나 떠있네”라는 구절이 나올 때에는 객석에서 흐느낌이 나오기도 했다.
한 관객은 “그가 노래하는 내내 속으로 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로 분위기는 시종 무거웠지만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상처난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장사익씨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에 반해서 5년전에도 공연장을 찾았다”는 미국인 관객 피터슨 씨는 “지난 공연과 비교해서 미국인 관객들이 많이 늘어난 것을 보니 한국의 소리가 미국인에게도 울림이 온 것 같다”고 촌평을 했다.
뉴욕=김진곤특파원
ckkim@newsroh.com
<꼬리뉴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넘어서야”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모든 크고 작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어 미국 공연도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했으나 장사익의 소리와 울림을 사랑하는 두터운 관객층으로 해서 예상을 뒤엎고 1, 2층 만석을 이뤄 공연 관계자들 조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공연은 한자리에 모두 모이기 힘든 명인들이 대거 합류하여 한국 예술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도살풀이'춤은 목과 손목, 발목의 섬세한 움직임과 정적인 춤사위를 통해서 한국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듯한 깊은 슬픔과 아픔이 공감되었다는 평도 나왔다.
캐더린 카슨(Catherine Carson)씨는 “한류드라마에 심취하다보니 한국의 소리에도 관심이 생겨 동료와 공연장을 찾았다. 여느 한국 가수들과는 차별성이 두드러진 특별한 무대였다”고 극찬했다. 이밖에 아프로 어메리칸들의 단체관람도 눈길을 끌었다.
동포인 케이트와 카렌 씨는 “고인이 되신 엄마가 늘 흥얼대던 노래가 '봄날은 간다'였는데 그 노래를 장사익씨 소리로 들으니 왈칵 눈물이 솟을만큼 엄마의 정이 그리워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전 블루스'는 대중 가요임에도 장사익씨가 부르면 차원이 다른 격상된 노래로 들린다”며 “5년전과 변함없는 무대매너와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덧붙였다.
장사익 씨는 공연 끝 무렵 “세상에 두마리의 말이 있었습니다. 젊은 말은 목적지를 향해서 손쌀같이 달려가지만 나이가 든 말은 속도를 내지않고 천천히 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름길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라는 멘트를 하면서 (세월호 참사로 인한)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해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는듯 했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고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그것을 넘어서야 하듯이.....시련 많은 민족이 그동안 잘 해온것 처럼 이번에도 그 고난을 서로 감싸주고 같이 아파하면서 극복하자도 다독이는 장면이 마치 집안 어른의 모습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