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문화와 역사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8일 이봉창 의사 의거 84주년을 맞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사 지식 캠페인-이봉창
이봉창(李奉昌)'편을 공개했다.
이번 캠페인은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에 맞춰 그 날의 정확한 지식을 누구나 다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모바일용 이미지 파일을 제작하여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에 올려 SNS상에 널리 퍼트리는 방식이다.
지난해 8월29일 '경술국치'로 시작한 이번 캠페인의 두 번째 주제는 '이봉창 의거일'이다. 이봉창 의사의 투탄 의거는 조선인의 항일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주요 사건이지만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캠페인부터는 여러 장의 이미지를 활용한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됐고 이봉창 의사와 김구의 만남, '한인애국단'의 1호 단원이 된 상황, 일왕을 향한 투탄 의거의 실패와 순국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광복절 및 삼일절 등 국가적인 큰 기념일은 네티즌들이 잘 알지만 '이봉창 의거일'같은 역사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날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이번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일본의 역사왜곡만 질타(叱咤)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다 쉽게 한국사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접근방식을 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서 교수의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seokyoungdukPR)를 통해서는 자비로 광고까지 집행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 지식 캠페인'에 동참할 수 있도록 홍보중이다.
서 교수는 "향후 '한국사 지식 캠페인' 시리즈를 날짜별로 엮어 '한국사 아트북'을 제작 할 계획이다. 영어 및 일본어 등 다국어로도 출판하여 전 세계 주요 도서관에 기증하여 비치할 계획인만큼 해외에 계신 한인들도 적극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독립운동가 이봉창의 생애
이봉창(李奉昌 1900년 8월10일~ 1932년 10월10일)은 한성부 용산방에서 이진규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공주. 자신의 신문조서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건축청부업과 우차운반업을 하고 있었고, 당시 건축수요의 증대로 인해 자신이 자산을 모은 신흥자본가였다고 한다.
이봉창은 용산의 문창보통소학교에 다녔다. 도왜실기에서는 이봉창이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릴 때는 집에서 글씨를 배우고 10세 이후 어렵게 소학교에 입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서당이나 집에서 글을 배우다 늦게 소학교에 입학하는 일이 매우 흔했다.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도 할아버지에게 글을 배우다가 소학교김중환 교장의 권유로 소학교 학생이 되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게 점원과 철도 운전 견습생 등으로 일하다가 1919년 이후 일을 그만두고 동해를 건너 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다.[3] 그뒤 조카인 이은임과 함께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때 철도국을 그만 둔 일본인 지인이 조선인 식모를 구하여 데려가고 싶다는 의사를 타전해오자 자신의 조카딸인 이은임을 식모로 주선하여 여비를 받았다. 이 여비로 일본인, 조카 이은임 등과 함께 배편으로 일본으로 건너온다.
일본으로 건너가 상인 등으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원이 되었다. 1932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경시청 사쿠라다몬(櫻田門) 앞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폭탄으로 저격하려 하였으나 적중하지 못하였다. 일본식 이름은 기노시타 쇼조(일본어: 木下昌藏)이다.
이하 자료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4%89%EC%B0%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