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기자가 최근 촬영한 북한 신의주(新義州)의 모습들을 페이스북에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사진들은 평양과 개성 원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신의주의 현재 모습들과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사진들은 신의주 러시아 최대 국영신문인 러시아스카야 가제타의 알렉 키리야노프 동아시아특파원이 지난해 4월 신의주 방문당시 촬영한 것으로 총 49장이다.
키리야노프 특파원은 2014년 11월에도 남북한과 러시아의 삼각물류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취재하고 현지 취재기와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린 바 있다.
2005년 금강산을 시작으로 2006년과 2014년 각각 개성공단을 취재하는 등 총 5차례 북한을 방문한 그는 신의주에서 경공업 단지와 압록강(鴨綠江) 철교, 이 지역의 유명 유치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 도심 등 다양한 풍경을 소개하고 있다.
평안북도 최대 도시인 신의주는 압록강하구를 경계로 중국 단둥(丹東)시와 마주하고 있다. 서기 1388년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성계가 '요동정벌'의 왕명을 거스르고 '위화도 회군'을 통해 조선 건국의 계기를 마련한 위화도(威化島)가 바로 이곳에 있다.





키리야노프 특파원의 사진중에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신의주교원대학 부속유치원을 방문한 모습들이 시선을 끈다.
이 유치원은 음악과 외국어 예능에서 탁월한 영재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곳으로 1986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여러나라 대표단이 어린이들의 공연을 참관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지난 28년간 총 21개국 27만2천명이 참관했다는 기록과 함께 관련 사진들이 게시되고 있다.
유치원 건물 정문 위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글씨판이 붙어 있고 벽에 걸린 어린이들의 솜씨를 자랑하는 작품 중에는 남녀어린이가 몽둥이와 주먹으로 공격해 코피를 흘리는 미군의 모습을 어린이 사진과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취학 전 연령인 만 5세 정도의 어린이들이 장구와 거문고 등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한복과 중국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공연하는 장면도 있다.
또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라는 초대형 구호 아래 신랑 신부 이름과 함께 '축복하노라 그대 새 가정'이라는 전광판이 달린 예식장 건물도 눈에 띈다.
최근 북한 주민들의 생활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류(氣流)를 반영하듯 경공업 단지 사진에선 '경공업 제일주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붉은 색 구호가 단지 앞에 내걸린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밖에 중국 단동면세점의 풍경, 청량음료 판매대, 신의주화장품공장의 상품 전시장, 그네타는 처녀들의 모습 등 다양한 풍경들을 소개했다.
임지환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신의주의 반공학생사건
신의주 반공학생사건(新義州反共學生事件)은 1945년 11월 23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벌인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이다. 11월 18일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소련군과 조선 공산당의 실정과 횡포를 비난하는 시민위원회 주관의 ‘인민위원회 지지대회’가 열린 뒤, 공산당이 경금속 공장직공을 동원해 이를 점거하고 간부들을 폭행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분격한 신의주 학생자치제 대표들과 학생들은 공산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운동을 전개한데 이어, 23일 오후 2시부터 신의주의 6개 중학교와 부근의 5,000여 명의 학생과 함께 궐기해 공산당 본부, 인민위원회 본부, 보안서 등을 점거했다. 이에 공산당의 보안대와 소련군이 무력으로 대응해 23명이 사망했고 1,000여 명이 검거됐다.
1945년 11월 16일 평안북도 용암포에서 열린 기독교사회민주당의 지방대회에서, 평북자치대 용암포 대표가 기념사를 통해 폐교조치된 수산기술학교의 복구를 요구하고 공산당 용암포 대장 이종흡의 만행 등 공산당의 불법을 규탄하자, 이를 지지한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학원의 자유’를 부르짖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소련군과 공산당이 경금속 공장직공을 동원해 이들을 기습했다. 소련군이 평안교회의 장로 홍씨를 현장에서 죽이고 학생과 시민들에게 중상을 입히자, 격분한 신의주시의 6개 중학교 학생들과 부근의 5천여 명의 학생이 이날 시위를 했다. 학생들은 ‘공산당을 몰아내자!’, ‘소련군 물러가라!’, ‘학원의 자유를 쟁취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가지를 행진했으며, 공산당 본부, 인민위원회 본부, 보안서 등을 습격했다. 이에 시위대를 향한 공산당의 보안대와 소련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24명의 학생이 피살됐고, 35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천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체포되어, 그중 200여 명이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신의주사건은 해방 이후 평양 , 함흥 등 북한 지역의 반공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동안 이 사건은 남한의 반공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제5공화국 당시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1956년 헝가리 반소 시위와 함께 수록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11월 23일을 반공 학생의 날로 기념했다. <자료=위키피디아>
<이상 사진 알렉 키리야노프 기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