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컬럼비아대에서 훼손된 채 발견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화백의 수묵산수화 복원(復元) 기념식을 가졌다.
컬럼비아대는 25일 동아시아 라이브러리 켄트홀에서 2년에 걸쳐 복원작업을 한 70호 크기 고희동화백의 금강산 진주담도를 공개했다. 금강산 진주담도는 1934년작으로 추정되며 일제시대 조선에서 유학온 학생이 컬럼비아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까지 컬럼비아대 도서관에 걸려 있다가 언제부턴가 사라진 이 작품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지난 2013년 2월10일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에 의해서다. 뉴욕을 방문한 혜문스님이 김정광 미주한국불교문화원장과 함께 한국미술품을 확인하다가 고화백의 작품이 김은호화백의 미인도와 함께 특별열람실 구석에 방치(放置)된 것을 발견한 것.
대한제국의 마지막 궁정화가인 김은호화백과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가 그린 보기드문 수묵산수화가 방치된 것도 놀라웠지만 고화백의 작품은 두군데가 찢어지고 구멍이 나는 등 크게 훼손된 상태여서 충격을 주었다. 김은호화백의 작품은 괜찮았지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액자가 손상돼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같은 사실이 뉴스로와 뉴시스에 의해 처음 알려진 후 당시 뉴욕총영사관 손세주 총영사가 직접 컬럼비아대를 방문하는 등 실태조사에 나섰고 북촌 한옥마을의 고희동화백 가옥을 관리하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기금이 보수 예산을 전액 부담하겠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컬럼비아대의 관리소홀을 탓하기도 했지만 소장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우리의 관심 부족이 더 크다는 자성론이 제기됐다.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콜롬비아대학이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작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는 얘기다.
이에 컬럼비아대는 훼손된 소장 작품을 외부기관의 지원으로 보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아래 자체적으로 복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념식엔 복원작업에 참여한 다트머스대 김성림 교수와 시카고대학의 일리노어 현 교수, 컬럼비아대의 알렉시스 해가돈, 씨어도어 휴스 교수 등 관계자들이 자리해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특히 고종황제의 손녀로 잘 알려진 이해경(84) 여사가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이해경여사는 비운의 황태자 의친왕의 다섯번째 딸로 정실 왕비 연안 김씨의 호적에 유일하게 올라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불리는 인물이다.
경기여고와 이대 음대를 졸업하고 1956년 도미, 텍사스 베일러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이여사는 1969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컬럼비아대 동양학 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27년간 일하고 1996년 정년 퇴직했다.
이해경 여사는 "내가 근무할 당시만 해도 고희동 화백 작품과 이당 김은호화백 작품이 도서관에 걸려 있었다. 아마도 그후에 옮겨졌다가 훼손된 것 같다"면서 "다행히 컬럼비아대의 노력으로 잘 복원되고 다시 걸릴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라고 소회(所懷)를 피력했다.
춘곡 고희동(1886~1965) 화백은 한국 최초의 미술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귀국하여 휘문, 보성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다. 1915년 매일신보는 그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했다는 뉴스를 사회면 머리기사로 '서양화가의 효시(嚆矢)'라고 평가했고 서양화 작품인 ‘자매’ 사진을 싣고 "조선에서 처음 나는 서양화가의 그림"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서화협회를 결성하기도 한 고희동 화백은 해방후 친일작가들을 화단에서 배제하는 중추역할을 맡았고 국전 심사위원장을 초대부터 여섯 차례 연임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고 초대 예술원장도 지냈다.
뉴욕=민병옥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美대학방치 희귀작 뉴욕총영사관 실태조사 <2003.2.11>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m0604&wr_id=2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