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꼬리뉴스
·꼬리뉴스 (13091)
·뉴스로 창(窓) (274)
·뉴스로TV (127)
꼬리뉴스
육하원칙(六何原則)?역(逆)피라미드 형식의 스트레이트 뉴스? 정형화, 제도화된 뉴스만 뉴스가 아니다. 뉴스뒤의 뉴스, 뉴스속의 뉴스를 읽자. 뉴스로에선 "꼬리뉴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선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뒷 이야기, 기감 없는 에피소드, 촌철살인의 한마디까지, 뉴스로 독자들은 정규뉴스 바로 뒤에 물리는 꼬리뉴스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틀에 박힌 뉴스는 거부합니다. 오직 뉴스로만이 가능한 꼬리뉴스에서 뉴스의 새로운 멋과 맛을 느끼십시오.

총 게시물 13,091건, 최근 2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백남준 10주기’ 서경덕교수 ‘백남준의 시대정신’ SNS 알린다

시대를 앞서간 '창의와 배려, 해학과 도전'의 아이콘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6-01-29 (금) 12:59:17


백남준 카드뉴스 - Copy.jpg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시대정신'을 알리는 카드뉴스를 제작해 SNS 홍보를 시작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경덕교수는 백남준 10주기인 29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술계 거장인 백남준을 요즘 젊은층들이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그의 '시대정신'을 카드뉴스로 제작하여 스마트폰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상에 빠르게 배포되고 있는 백남준 시대정신의 네가지 키워드는 '창의(創意)'와 '배려(配慮)', '해학(諧謔)'과 '도전(挑戰)'이다.

 

1960년 한 퍼포먼스 자리에서 백남준은 정신적 스승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창의적인 퍼포먼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기존의 관념과 형식을 파괴한 상징적인 행위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1994년 휘트니 뮤지엄. 백남준은 후배 강익중과의 2인전을 앞두고 미술관 관장 앞으로 보낸 팩스에 '나는 괜찮다. 강익중이 좋은 자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보내 관계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998년 백악관 만찬자리에서 백남준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악수하려고 일어나는 순간 바지가 벗겨지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백남준은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클린턴의 섹스스캔들을 풍자 (諷刺)한 것으로 이해했다.

 

 

백남준 카드뉴스 - Copy (2).jpg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예술에 대한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병마(病魔)와 싸워가며 3년간 준비한 회고전 '백남준의 세계'는 당시 구겐하임 최다 관객수 기록을 세웠으며 세계적인 예술가로 재조명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경덕 교수는 "백남준이 몸소 보여준 창의, 배려, 해학, 도전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젊은층에게 꼭 필요한 '시대정신'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우리의 영웅을 기리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에 배포할 '백남준 동영상'을 제작 중"이라고 귀띔한 그는 "피카소하면 스페인, 반 고흐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듯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계 거장 백남준을 전 세계에 꾸준히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지금까지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웅들에 관한 동영상을 다국어로 제작해 국내외로 알리는 '대한민국 영웅 프로젝트'를 펼쳐왔고 내레이션에 송일국, 윤종신, 김윤진 등이 참여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백남준 카드뉴스.jpg

 

<꼬리뉴스>

 

바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1932년 7월 20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 서린동)에서 아버지 백낙승과 어머니 조종희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수송국민학교와 경기보통중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니스트 신재덕에게 피아노 연주를, 작곡가 이건우에게 작곡을 각각 배웠다. 1949년 그는 홍콩 로이덴 스쿨로 전학했으며,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52년 도쿄 대학교 문과부에 입학했다. 2년 후 미술사학 및 음악사학으로 전공을 정하고, 주로 작곡과 음악사학을 공부했다. 졸업 논문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이다.

 

1956년 백남준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 대학교 및 쾰른 대학교 등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사,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뮌헨 대학교 입학 1년 후에는 프라이부르크 고등음악원으로 옮겨 볼프강 포르트너 교수에게 배우지만 곧 현대음악의 실험이 활발하던 다름슈타트 하기 강좌에 참여했다. 1958년 그 곳에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그의 자유로운 음악적 실행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1950년대 말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독일 라인 지역의 음악 퍼포먼스의 장에서 백남준은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앨런 카프로)라고 불릴 정도의 탁월한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약했다.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바이올린을 파괴하거나(바이올린 솔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퍼포먼스(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가 특히 유명하다. 1961년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음악 퍼포먼스 ‘오리기날레’에서 머리와 넥타이로 잉크를 묻혀 두루마리에 흔적을 남기는 독특한 퍼포먼스 머리를 위한 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등과 의기투합하여 플럭서스 활동을 함께 전개했다. 다다이즘에 영향을 받은 플럭서스는 헤라클레이투스가 주장한 ‘변화 생성의 흐름’ 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이벤트와 퍼포먼스 그리고 전위음악에 주력했고, 곧 세계로 퍼져나갔다.

 

1961년 백남준은 작곡가 슈토크하우젠이 중심이 된 쾰른의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출입했으며, 특히 레이더와 TV 작업에 몰두했던 독일 작가 칼 오토 괴츠의 영향을 받아 2년여 동안 홀로 TV의 회로변조 실험에 착수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번째 전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열었으며, 13대의 실험적인 TV를 통해 비디오 아트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 전시에는 ‘적분된 피아노’, ‘랜덤 액세스 뮤직’, ‘레코드 꼬치’같은 실험적 음악의 시도와 ‘잘린 소머리’, ‘파괴된 누드 마네킹’, ‘보이스의 피아노 파괴 퍼포먼스’ 같은 우상파괴적 에너지의 설치 및 참여적 형태의 퍼포먼스가 함께 펼쳐졌다.

 

1964년 백남준은 일본에서 '로봇 K-456'을 제작했으며, 세계 예술의 중심지 뉴욕으로 이주했다. 1965년 소니의 포타팩(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으로 뉴욕을 첫 방문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하여 곧바로 그 영상을 ‘카페 오 고고’에서 방영했다. 이것이 미술사에서는 한동안 공식적인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은 1963년 첫번째 전시를 비디오아트의 기점으로 보고 있다. 또한 첼로 연주자이자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샬럿 무어먼과 함께 비디오 아트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 작업을 활발히 펼쳤다. 특히 1967년 음악에 성적인 코드를 집어넣은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샬럿 무어먼은 누드 상태의 첼로 연주를 시도하다가 뉴욕 경찰에 체포되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인해 예술 현장에서 누드를 처벌할 수 없다는 뉴욕의 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획기적인 진전이 일어난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TV 첼로’, ‘TV 침대’ 등등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많은 예술활동을 전개했다.

 

1974년부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설치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했으며, ‘TV 부처’,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 ‘TV 물고기’ 등등 많은 대표작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비디오 아트와 자연물을 음악적으로 결합하여 테크놀로지로 물든 현대 사회의 새로운 혼합적 생명력을 추구했다는 평판을 얻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문화적 환경이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호의적으로 변화하면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그룹전 형태로 활발하게 전시되었다. 1974년 에버슨 미술관 개인전과 함께 비데아 앤 비디올로지: 1959-1973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만난 저작을 내놓아 미디아 아트의 이해를 도왔으며,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회고전’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가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에 많이 알려졌다.

 

 

백남준-모마.jpg

 

1970년대 중반부터는 뉴욕 WNET 방송국, 보스턴 WGBH 방송국과 협력하여 자신의 비디오 아트를 공중파 TV에서 방송했고, 이는 예술 세계의 영역 확장이었다. 나아가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뉴욕 WNET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결한 실시간 위성 생중계로 방송하여 전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샌프란시스코와 서울까지 연결된 이 위성 아트에는 로리 앤더슨, 피터 가브리엘, 오잉고 보잉고,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등의 예술가과 대중문화의 스타가 참여했으며, 전 세계 2500만명(재방송 포함)이 시청하였다. 이후에도 ‘위성 아트’ 3부작으로 명명된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이 이어져 위성 연결을 통한 전세계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새로운 부족사회를 낳는지 실감시켰다.

 

1992년 '비디오 때, 비디오 땅' 전시는 독일 쿤스트 할레와 스위스 쮜리히에서 진행된 전시의 서울 투어전시로서 당시 과천 막계동에 자리잡은 지 몇 년 되지 않았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총 관람 인원 20만명이 찾은 첫번째 전시로 기록되었다. 이 전시의 주요한 작품은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이다. 1993년 백남준은 독일 작가 한스 하케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초대되어 국가전시관 부문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문명의 동서남북'이라는 주제의 이 전시에서 그는 북방 유라시아의 유목 문화를 배경으로 전자적 소통을 시도하는 비디오 로봇 형태의‘칭기스칸의 복권’, ‘마르크폴로’, ‘훈족의 왕 아틸라’,‘스키타이의 왕 단군’, ‘로봇 전사’, ‘고대기마인물상’ 같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작품을 내놓았다.

 

1995년 백남준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며, 한국 미술이 국제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160만 명에 달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백남준이 직접 관여한 ‘INFO Art’전이 주목받았다. 또한 백남준은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전시관 부문에 한국관을 설치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해 그의 예술적 정수(精髓)가 담긴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 전시를 진행했다. 1996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6개월만인 그해 10월에 재기했다.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세계’ 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으며, 이때 백남준은 레이저 아트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 등을 전시한 바 있다.

 

2006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75세로 별세, 유해가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다. <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등록일 : 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607-204 / 전화 : 010-2041-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