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최초의 위안부 소녀상이 있는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8일 한국과 중국의 할머니 두분을 위한 합동 추모제(追慕祭)가 열렸다.
가주한미포럼이 주관한 이날 추모제는 지난 5일 별세한 최갑순(96) 할머니와 지난달 12일 중국의 장센투(88ㆍ張先兎) 할머니를 기리는 것으로 LA의 고려사의 묘경스님과 최제영 목사, 성공회의 김요한 신부, 글렌데일 성당의 수녀 두분 등 불교과 기독교 성공회 가톨릭 등 한인 종단 교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
가주한미포럼은 지난 2013년 7월 위안부소녀상이 건립된 이후 한국과 중국 등 피해 할머니들이 돌아가실때마다 추모제를 지내왔다. 한국과 중국 할머니의 합동 추모제가 열린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두 번째이다.
김현정 사무국장은 "소녀상이 건립되고 보름만에 이용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고려사 묘경스님의 인도아래 한인들이 꽃상여를 매고 일본총영사관 앞에 가서 추도의식을 한 뒤로 추모제를 지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묘경스님이 "다른 종교인들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제안해 한인 종단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게 됐다. LA에서는 모든 종교인들이 참여하는 종교평화협의회가 있어 이같은 추모제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제는 한국과 중국계 언론의 취재속에 먼저 묘경스님이 염불과 극락왕생(極樂往生) 기원을 했고 김요한 신부가 성공회의식에 따라 향을 피우고 기도서를 읽었다. 또 최제영 목사가 성경 구절을 낭송하고 설교를 했다. 이어 참여자들이 기도를 하거나 재배를 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를 했다.
고 최갑순(96) 할머니는 1918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15살 때 일본 경찰이 여덟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를 징집하려 하자 아버지를 대신해 끌려갔다. 최 할머니는 전주를 거쳐 만주 목단강까지 끌려다니며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중국 산시(山西)성 위(盂)현에 거주하던 장센투 할머니는 열여섯살 때 위안부로 끌려갔다. 장센투 할머니는 1995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던 16명의 중국 위안부 피해자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김현정 국장은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돌아가실때마다 한국언론은 위안부 생존자가 몇분 남았다고 보도하는데 생존자는 중국과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에도 있고 북한에도 있다"면서 "한국정부에 등록한 숫자도 중요하지만 일본이 위안부문제를 한일정부간의 사안으로 축소시키려한다는 점에서 피해당사국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정국장은 "중국할머니와 함께 추모제를 올리는 것도 그런 점에서 중요하고 국적을 불문하고 같이 해드리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을 풀어드리고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울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갑순 할머니
고 최갑순할머니<사진 정대협 제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최갑순(96)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5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최 할머니는 5일 오전 0시56분 경기 남양주시 한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할머니는 노환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34년 일본군에 끌려가 온갖 고통을 당한 할머니는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에도 3~4년간 행상과 걸인으로 생활했다. 이후 고향 구례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최 할머니가 세상을 등지면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46명(전체 피해자 238명) 남았다. 정대협은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서 사죄도 받지 못하고 하늘로 가시고 말았다"며 "일본정부는 하루빨리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통해 고통받은 할머니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