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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한인 ‘통일독일’ 주역 겐셔장관 추모광고

한태격대표 맨해튼 중심가 6개국어 광고 올려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6-04-13 (수) 21: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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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인이 최근 타계한 독일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을 추모(追慕)하는 거리 광고를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맨해튼 타임스퀘어 앞 전화부스에 올려진 이 광고는 겐셔 전 장관의 사진과 함께 1974년부터 1992년까지 18년간 외무장관으로 재임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이어 오른쪽엔 한국어와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6개국어로 '독일 재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대한민국도 장관님이 필요하다'는 내용 등이 기재됐다. 광고는 앞으로 한달간 게시(揭示)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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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겐셔 전 장관은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무장관으로 꼽힌다. 구 동독 라이프치히 출신인 그는 1972년부터 서독에서 외무장관을 하면서 1989년 독일 통일에 기여했고 통일독일 초대장관으로 3년을 더 재임(在任)했다.

  


 

뉴욕 한복판에 그를 기리는 다국어 광고를 올린 주인공은 한태격 브리지엔터프이즈(가교기업홍보사) 대표다. 뉴욕의 거리광고 제작자로 잘 알려진 한태격 대표는 최근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 광고를 맨해튼 거리에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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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겐셔 장관의 광고도 알파고 광고가 게시된 브로드웨이와 47가 사이에 위치한 동일한 장소이다. 한태격 대표가 이번 광고를 올린 것은 통일 독일에 큰 역할을 맡은 겐셔 장관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대한민국에 큰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됐다.

 

겐셔 장관은 1987년 당시 소련 고르바초프를 상대로 군축협상을 일구어 내었고 헬무트 콜 수상을 도와 동독에 대한 서독 주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하는 등 1990년 10월3일 동서독이 분단 45년만에 재통일(Wiedervereinigung)을 달성하는데 큰 역할을 맡았다.

 

지난 3일 독일 권위지 빌트 암 손탁은 "겐셔 장관의 업적은 2차대전의 전화(戰火)를 딛고 독일을 재건시키고, 국격을 복원시킨 콘라드 아데나워 수상 못지않게 지대하므로 영결식도 국장으로 엄숙하고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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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격 대표는 "통일은 일관되고 장기적인 국가적 플랜이 준비되어야 한다. 겐셔 장관은 자유민주당(FDP) 소속이었지만 연정(Koalition) 파트너가 사회민주당(SPD)에서 기독민주당(CDU)로 바뀌어도 변함없이 외무장관직을 수행했고 독일 국민의 염원이었던 재통일을 45년만에 이룩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통일을 달성한 그를 세계인들에게 널리 홍보하는 동시에, 3년이면 장수 장관으로 치부되는 대한민국에서 통일문제는 전문가가 일관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국가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광고에 쓰여진 언어는 겐셔 장관의 모국어와 제2차 대전 종식과 더불어 패전 독일에 이해관계가 있었던 나라들의 언어를 사용했고 유엔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언어도 포함했다. 한국어를 사용한 것은 한국인으로 한국의 입장에서 겐셔 장관을 바라보는 마음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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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격 대표는 "미국 생활을 하기 전인 80년대 전반기 독일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겐셔 장관의 활약상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외교란 힘을 바탕으로 설득과 포용, 인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균형외교와 실리를 추구하는 겐셔 장관과 같은 인물을 양성해야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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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Hans-Dietrich Genscher

 

Hans-Dietrich Genscher(Mar 21 1927-3.31 2016) was a German statesman and a member of the liberal Free Democratic Party (FDP), who served as Minister of the Interior from 1969 to 1974, and as Foreign Minister and Vice Chancellor from 1974 to 1992 (except for a two-week break in 1982), making him the longest-serving occupant of either post. In 1991 he was chairman of th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OSCE).

 

A proponent of Realpolitik, Genscher has been called "a master of diplomacy."[1] He is widely regarded as a principal "architect of German Reunification." In 1991, he played a pivotal role in the breakup of Yugoslavia by successfully pushing for international recognition of Croatia, Slovenia and other republics declaring independence, in an effort to halt "a trend towards a Greater Serbia." After leaving office, he worked as a lawyer and international consultant. He was President of the Germ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and was involved with several international organisations, and with former Czech President Václav Havel, he called for a Cold War museum to be built in Berlin.

 

한스-디트리히 겐셔(독일어: Hans-Dietrich Genscher, 1927년 3월 21일 ~ 2016년 3월 31일)는 독일의 자유민주당 정치인이며,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외무장관 겸 부총리를 지냈다.

 

작센안할트 주 할레 근처의 라이데부르크에서 출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육군에 징병 되었다가 전쟁 말기에 연합군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석방 후에 독일 민주 공화국 지역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나서 1949년 하급 변호사가 되었다.

 

1952년 서독으로 달아나서, 곧 독일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함부르크에서 법률국가시험을 두 번째에 합격했고 브레멘 지역구에서 공무원으로 승진되었다. 1965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부의장으로서 하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1969년 초순에 자유민주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 정부를 이루는 데 성원하면서, 겐셔는 내무장관이 되었다. 5년 후에 자신의 당의 의장이 되는 데 승리하여 외무장관이 되었다.

 

1982년 자유민주당이 기독교민주당과 연합으로 떨어져 나갔으나, 겐셔는 계속 외무장관직에 머물러 있었다. 겐셔는 소비에트 연방과 동구권과의 더 나은 관계에 강한 호의를 보였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독일의 재통일을 위한 원기 왕성한 일을 하였으며, 통일 독일의 1대 외무장관이 되었다.

 

1992년 외무장관직을 사임하였고, 1998년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하원 의원에 남아 있었다. 2016년 3월 31일 본 외부에 있는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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