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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근화회’ 발대식…뉴욕한인교회 무궁화 장식

‘조국광복사업회’ 뉴욕서 성금모아 광복군에 트럭 보내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5-12-29 (화) 00: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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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한인교회가 27일 공개한 사료중 교회에서 창립된 독립운동단체는 뉴욕한인공동회와 한인공동회중앙위원회, 재미조선문화회, 근화회, 미주동부대한인부인회, 조국광복사업추진회, 뉴욕재만동포옹호회 등 7개가 있다.

 

또한 뉴욕한인교회를 거점으로 발행된 출판물로는 The Korea Student Bulletin과 우라키(Rocky), 삼일신보, The Korea Press 등 4개가 있다. 근화회와 조국광복사업후원회, 우라키를 소개한다.

 

◊ 근화회

 

1928년 1월1일 뉴욕한인교회에서 조직된 여성독립운동단체이다. 전신은 한국의 대한애국부인회로 3.1독립운동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한 김마리아(회장)와 황애덕(총무) 박인덕이 뉴욕한인교회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 결성(結成)의 뜻을 모으게 됐다.

 

근화(槿花)는 나라꽃 무궁화를 말한다. 근화회 발대식은 같은해 2월12일 뉴욕한인교회에서 거행되었는데 식장에 태극기와 근화회기를 걸고 교회벽 전체에 무궁화 꽃송이를 만들어 장식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낯선 타국 땅 뉴욕에서 무궁화 꽃을 대한 참석자들은 숙연하리만치 장엄했다고 전해진다. 일동 모두 애국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개회를 하는동안 목이 메어 울었고 가슴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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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김마리아는 개회사를 통해 근화회 목적을 민족정신 고취(鼓吹)와 대동단결, 교육과 실업 장려, 본국 사정 외국인에게 전파, 건국대업 원조 등 4가지를 역설했다.

 

근화회는 뉴욕한인교회에 위치한 동지회 뉴욕지부, 뉴욕 교민단, 국민회 뉴욕지방회 등과 연합하여 뉴욕재만동포옹호회를 조직하여 만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 조국광복사업후원회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일본이 중국 상해와 남경을 침입하자 뉴욕한인들의 항일운동을 가일층 치열해졌다. 뉴욕한인교회에서 공동대회를 소집하고 천재일우의 조국 독립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을 가결, 조직된 것이 바로 조국광복사업후원회이다.

 

창립 목적은 만주와 중국 일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광복사업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는 것이었다. 회장 김형린, 서기 추일업은 침식(寢食)을 잊다시피 하면서 국가사업에 몰두했다. 뉴욕동포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엔 뉴욕 중심가에서 모금운동을 하였는데 부인들이 한복을 입고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때마다 행인들은 많은 동정과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일본을 싫어하는 미국사람들의 성금도 답지하여 트럭 한대를 사서 광복군에 보냈고 중국에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우리 임시정부에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맨해튼 5애버뉴와 42가에 있는 일본영사관 앞에서 항일 데모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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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키(Rocky)

 

1925년 미주유학생단체인 유미조선학생총회(북미유학생총회)의 기관지로 탄생한 우라키는 뉴욕한인교회와 밀접(密接)한 관계가 있다. 창간호부터 제3호까지 주필을 맡은 오천석은 1920년대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뉴욕한인교회 교인이었고 1933년 주필 정일형 역시 같은 시기의 교인이었다.

 

특히 1933년 우라키 6호는 뉴욕한인교회내에서 편집되었고, 교인으로 이 잡지 편집을 맡거나 글을 발표한 인사들은 이병두, 장덕수, 한승인, 노재명, 박인덕, 장리욱, 박경호, 강용흘, 박마리아, 윤치영, 최순주, 황창하, 윤홍섭 등 다수에 이른다.

 

뉴욕한인교회 초대장로중 일인이었던 이병두는 유학생회 초대 부회장을 역임한 창설멤버로 우라키 창간호에 "유미유학생총회는 1918년말 오하요(Ohio)의 대학생들이 모인 결과 미주에 한인유학생회를 조직하여 40여년 유학생 역사에 맺힌 첫 열매"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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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키 출판은 필라델피아에 있던 유학생본부가 1923년 중부인 시카고로 옮기고 전국적으로 조직이 확대되면서 거론되었다. 1927년 'The Korea Bulletin' 5월호에 게재된 오천석의 기사에 의하면 북미유학생총회는 1924년 연회에서 우라키 출판을 위해 300달러 가량을 거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금액은 학생들에겐 큰 돈이었으나 출판을 하기엔 부족했다.

 

우라키는 재정 곤란외에도 질적으로 우수한 원고가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을 고려할 때 지면을 충실하게 채울 원고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우라키는 미국에서 원고를 수집해 한국으로 우송해 인쇄한 다음 다시 미국으로 잡지를 운송해 왔기 때문에 당시 경제적 정치적 여건을 고려할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당국의 검열(檢閱)이 심하여 많은 기사들이 제목만 있고 내용은 빠지는 경우도 눈에 띈다.

 

우라키 창간호가 나온 1925년 미주한인유학생수는 대학생이 300여명, 중고생이 150여명이었는데 이는 잡지 뒷면에 가 85명, '유미학생통계표'라는 유학생 명단이 실린 통계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학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은 평안남도가 85명으로 가장 많고 평안북도가 50여명, 경기도가 14명 순이었고 전공분야는 의학이 70여명, 교육이 60명, 상과와 신학이 각각 30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년후인 1927년(우라키 3호)엔 공과계통이 26명으로 가장 많고, 상업 등 경제분야가 23명, 교육이 21명, 의학이 16명, 신학이 14명으로 큰 변화가 눈에 띈다. 1929년~30년 캐나다를 포함, 북미전체 한인학생 500명을 상대로 조사(우라키 4호)한 바에 따르면 교육이 43명, 의학이 30명, 공업이 29명, 신학이 24명, 경제가 21명으로 나타났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1931년 뉴욕유학생들 독립운동 사료발굴 <2015.10.9>

암스트롱 교수 컬럼비아대 자료 공개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m0604&wr_id=4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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