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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전 오늘, 강우규 의거를 기억하십니까?

글쓴이 : 민병옥 날짜 : 2016-09-02 (금) 12:24:53

뉴스로=민병옥기자 newsroh@gmail.com

 

 


 

강우규 의거-2.jpg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이 강우규(姜宇奎) 의사 의거일(義擧日) 97주년인 9월 2일 '대한민국 숨은 영웅 찾기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캠페인은 네티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찍은 사진과 글을 서 교수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 계정에 올려 11만명의 팔로워들과 함께 널리 퍼뜨리는 방식이다.

 

서경덕 교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에게 폭탄(爆彈)을 던져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방에 떨친 강우규 의사의 의거일 및 서울역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이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안중근,윤봉길,안창호 등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들에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친 숨은 영웅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영웅들을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 젊은층에게 자연스럽게 소개하고자 이번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캠페인 1호 주인공인 강우규 의사는 1855년 평남 덕천에서 태어나 교육사업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쓰다가 1919년 9월 2일 당시 '남대문 정거장'이었던 서울역 광장에서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投擲)했다.

 

폭탄 투척으로 인해 일제 경찰 1명이 사망하는 등 37명이 부상 당했지만 사이토 마코토 신임 총독 폭살에는 실패했다.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민국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서 교수는 "작은 이벤트도 준비했다. 오늘 하루 서울역 앞 강우규 의사 동상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후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youngduk.seo) 댓글에 올리면 저서인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을 무료로 보내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캠페인의 2탄,3탄 등이 이어지면 SNS 이용자들을 선발하여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대한민국 숨은 영웅 찾기 투어'를 준비하여 보다 효과적인 대한민국 역사 알리기 캠페인을 계속해서 펼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강우규 의거-1.jpg


 

* 글로벌웹진 뉴스로 www.newsroh.com

 

<꼬리뉴스>

 

순국 직전까지 기개잃지 않아

 

강우규 의사 동상 밑에는 순국 직전의 유시가 있다. 1920년 11월 29일 사형집행장에서 '감상이 어떠냐'는 일제 검사의 질문에 한시로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단두대에 홀로 서니 봄바람 감도는구나, 몸은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으리오)라고 읊으며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강우규 의거-3.jpg


 

강우규의사는 1855년 4월 20일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의학을 공부하여 1884년부터는 함경남도 홍원으로 이주하여 한의사로 인술을 베푸는 한편, 아이들에게는 성리학 학문을 가르쳤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국운이 기울어짐을 보고 만주 북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 세력들과 연계하여 조선의 독립을 의논했다.

 

1915년 요동의 랴오허 현(饒河縣)으로 옮겨가 거주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꾀했으며, 요하 주변의 농토를 개간하여 한인촌인 신흥촌(新興村)을 건설했다. 1917년 지린 성 동화 현에 광동중학교를 세워 동포 교육에 전력하며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그 뒤 광동중학교와 신흥촌을 다른 한인 교포에게 인수한 뒤 그는 국내에 잠입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가입해 있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노인단 지린 성 지부장이 되어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해 러시아인으로부터 수류탄을 구입하고, 허형과 함께 원산부를 거쳐서 경성부로 잠입했다.

 

1919년 9월 2일, 내외 정세와 총독의 동정을 살피던 중, 하세가와의 후임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임명되어 부임한다는 것을 알고, 사이토의 내한 당일 현재의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조선 총독으로 신임된 사이토 총독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터졌지만 빗나갔고, 빗나간 폭탄으로 인해 수명의 구경꾼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현장에서는 몸을 피했으며 거사 뒤 현장에서 빠져나와 오태영(吳泰泳)의 소개로 장익규(張翊奎), 임승화(林昇華) 등의 집에 숨어다니다가, 도피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유명한 총독부 고등계 형사인 일제의 앞잡이 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혀 9월 17일 수감되었다. 이후 총독부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최종 판결에서 총독 암살미수혐의와 민간인 사상 혐의로 사형 구형,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받고, 교수형 당하기까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료 참조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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