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25>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1924년 4월 11일 매일신보에 ‘극단에서 교육계로 떠나간 이채전(李彩田) 부인’이라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이채전은 1924년 <해의 비곡>에 출여한 조선의 2호 여배우였다. 1호는 1923년 우리 영화인이 최초로 제작한 <월하의 맹서>에 출연한 이월화(李月華)였다.
'해의 비곡'은 불륜을 다룬 내용으로 ‘치졸한 치정극’이라 혹평에도 흥행에 성공해 당시 3천원의 흑자를 낼 수 있었다. 이채전은 서울 태생으로 일찍 결혼해 학교 선생을 하던 중 우연히 조선키네마에 입사했다. 미모가 출중하고, 은구슬 목소리에 배운 여성이어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후 일본인 감독의 추행으로 인기가 하락하며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매일신보는 이날 기사에서 이채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은막을 떠난 것을 아쉬워했다. “이 극단의 인기의 중심이던 이채전 부인의 기예가 첫 무대부터 재래의 모든 여배우 중에 보지 못하던 진정한 예술미를 나타낸 까닭인 듯하다... 예상 이상으로 완전히 설비된 무대에서 이채전 부인의 합리적으로 섬세하게 아로새겨 나가는 완숙한 기예에 마음이 이끌려 필경에는 울고 돌아갔다 하는 삽화(揷話)의 한 구절을 들을지라도 부인의 기예가 얼마나 천재적이였던 것을 족히 알 것이다. 통털어 놓고 조선의 여자로 무대에 오른 사람 중에 이 이채전 부인같이 일반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곰보가 안되려거든 우두(牛痘)를 꼭 넣으라’는 기사를 올렸다. 20세기 초엽만해도 천연두(天然痘)는 세계에서 약 3억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무서운 역병이었다. 고열과 두통 전신발진의 증상을 보이며 간신히 살아남아도 얼굴에 흉한 곰보자국을 남기는 병이었다.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소의 천연두를 이용한 백신 발명(우두)으로 천연두는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다.
동아일보는 동양척식회사의 착취 문제를 이틀 연속 다루며 강력 비판했다. 4월 11일 기사에선 “동양척식회사 평양, 사리원 두 지점에서 그 지점 관내에 있는 사유토지 전부를 일본인 개인에게 팔려고 한다. 그 회사가 전 조선 안에 밭과 논과 산림과 잡종지들을 합하여 광대한 토지를 가지고 있음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인데, 평양, 사리원 두 지점에서 소유한 것만 해도 황해도 평안남북도 3개 도를 합하여 20,000여 정보(町步)에 달한다”고 고발했다.
이튿날엔 “동양척식회사에서는 창설 이래로 그저 훔쳐 가지는 것과 다름이 없는 전답과 산판 등을 팔기로 하고 각지에 있는 지점에 통지를 하여 방금 준비 중이라 한다. 그리하여 헐값에 팔아 먹고 다시 그들의 농노(農奴)가 되어 있는 조선 소작인들은 일본인 개인에게 팔까 하여 뒷일을 걱정하고 불안하게 지낸다 한다...원래 동척(東拓)은 인도의 전 땅덩이를 모조리 훔쳐다가 정부에 바친 영국의 동인도 회사와 추호(秋毫)도 다르지 아니한 같은 종류의 회사이라...조선 사람아! 그러면 어찌할꼬. 우리의 밥을 뺏어가는 이 뚜렷한 적(敵)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을까 하노라”고 강력한 대처를 주문했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가 제공하는 관련 기사들을 소개한다.
☯ 극단에서 교육계로 떠나간 이채전(李彩田)부인 (1924.4.11.) 매일신보
경쇠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옛날을 추억하고 탄식할 것이다.

조선에 신극 운동의 봉화를 든 것은 예술협회이다. 이 예술협회가 겨우 제2회의 시연을 끝 마치고 제3회 시연을 준비하다가 불행히 해산의 비운에 이르러 그 생명은 불과 반 년의 짧은 시일에 지나지 못 하였다 할지라도, 일본 신파극을 모방하여 근근이 생명을 이어오던 소위 조선 신파극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신극 운동의 첫 발을 디딘 점에 대하여는 조선 연극사에 한 이채라 할 수 있다. 이 예술협회가 제1회 시연의 첫날부터 일반 관객에게 경이의 눈을 부릅뜨게 한 것은 첫째 각본 연습이 충분하였고 제반 설비가 왠간히 완전하였을 뿐 아니라 극단의 배후에는 사회 각 방면 일류 명사의 후원이 있었던 까닭이나. 그보다도 더 큰 이유는 이 극단의 인기의 중심이던 이채전 부인의 기예가 첫 무대부터 재래의 모든 여배우 중에 보지 못하던 진정한 예술미를 나타낸 까닭인 듯하다. 예술협회가 개막 전부터 소문이 굉장하였으므로 재래의 배우 중 시기와 질투하는 의미로 구석이 비고 모든 것이 어색할 첫 무대의 무대 면을 마음껏 비웃어 주려고 패를 지어 입장하였다가, 예상 이상으로 완전히 설비된 무대에서 이채전 부인의 합리적으로 섬세하게 아로새겨 나가는 완숙한 기예에 마음이 이끌려 필경에는 울고 돌아갔다 하는 삽화(揷話)의 한 구절을 들을지라도 부인의 기예가 얼마나 천재적이였던 것을 족히 알 것이다. 통털어 놓고 조선의 여자로 무대에 오른 사람 중에 이 이채전 부인같이 일반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에 극계(劇界)가 극히 빈약하고 완전한 극단이 형성되어 있지 아니 하므로 눈물을 머금고 동경하는 극계를 떠나 자기 가군(家君; 남편)과 같이 지금 양산 통도사의 초빙을 받아 그 절이 경영하는 사립보통학교에서 수백 명의 어린 남녀를 데리고 교편을 들고 서서 무시로 가슴에 치밀어 나오는 예술에 대하여 동경하는 마음을 억지로 견뎌 참고 있다 한다. 그러나 산명수려한 절경을 앞에 두고 늙은 절 법당 속으로 아침 저녁 흘러나오는 한가한 경쇠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전일의 번화하던 무대 생활을 추억하고 부세(浮世)의 덧없음을 얼마나 탄식하랴! 풍편(風便)에 들리는 말에 의할 진대 지금 동래 범어사에서 공부 중인 이상필(李相弼)씨의 주간인 무대예술연구회 극단에 관계를 맺게 되어 머지 않은 장래에 경성의 극장에서 그의 무대 위 얼굴을 볼 수 있을리라 한다. 아! 이 말이 과연 정말로 실현될는지. (기자)
☯ 곰보가 안 되려거든 (1924.04.11.) 동아일보
우두(牛痘)를 꼭 넣으라고
만약 아니 넣으면 과료(科料)에 처한다고

경성부에서는 오는 21일부터 5월 14일까지 부내 전체에 대하여 춘계 정기 종두를 실시할 터인데, 만일 우두를 넣어야 할 사람으로 넣지 아니 하는 경우에는 법령에 의지하여 상당한 과료에 처한다 하며, 경성부에서 지정한 장소에 오지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은 상당한 의사에게 가서 자유로 넣어도 무방하나, 의사의 증명서를 맡아서 경성부에 신고를 하여야 한다 하며 우두를 넣어야 하는 사람은 아래와 같다더라. (장소와 날짜는 그날 그날에 따로 따로 소개함)
-. 출생한 때로부터 90을 지난되 만 한 살이 못 되는 자.
-. 6살 된 자와 12살 된 자
-. 위 각 항에 상당한 자로 작년 중에 우두를 넣었으나 잘 되지 못 하였고, 따라서 1년 안에 다시 넣지 아니한 자.
-. 13살 이상이 된 자로 12살 이후에 넣지 아니 하였거나 넣었더라도 잘 되지 못 하였으며, 따라서 1년 안에 다시 넣지 아니한 자.
-. 위 각 항에 상당한 자로도 천연두를 한 번 지낸 자. 6살 된 자라도 4살 이후에 우두를 넣어서 잘 된 자. 12살 된 자라도 10살 이후에 넣어서 잘 된 자는 이번에 넣지 아니하여도 무방.
☯ 미신은 모든 약한 사람에게 통틀어 있는 약점 (1924.04.11.) 동아일보

금년 봄 경성 시내 춘계청결검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순사가 시키는 수도 치우는 것을 잘 듣지 아니 하므로 그 이유을 물은 즉, 『처(妻)가 태기(胎氣)가 있는데 만일 태기 중에 수도를 치우면 애가 떨어진다』는 미신을 깊이 믿고 아니 하였다고. 전등불을 켜면서 태주에게 속고 미신에 빠지는 백성처럼 가련한 자는 없다. 말은 좀 다르지마는 금년이 갑자년(甲子年)이라고 별별 풍설이 다 돌아다니는 모양인데, 고양군 용강면 공덕리 어떤 예배당에는 수탉의 머리에 뿔 둘이 났다고. 이것을 고려조 말년에 말머리에 뿔이 난 것과 같이 이조 말년에는 닭의 머리에 뿔이 났다고. 심심한 사람의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미신은 모든 약한 사람에게 통틀어 있는 약점이다.
☯ 동척(東拓) 사유지 매각과 농민들의 큰 불안 (1924.04.12.) 동아일보
황해도, 평안남북도의 사유지
일본인 개인에게 팔릴까 하여

동양척식회사 평양, 사리원 두 지점에서 그 지점 관내에 있는 사유토지 전부를 일본인 개인에게 팔려고 한다. 그 회사가 전 조선 안에 밭과 논과 산림과 잡종지들을 합하여 광대한 토지를 가지고 있음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인데, 평양, 사리원 두 지점에서 소유한 것만 해도 황해도 평안남북도 3개 도를 합하여 20,000여 정보(町步)에 달한다. 이에 대하여 전날부터 매각하겠다는 말이 있어 왔다 하나 그동안 그 회사 안의 내정(內情)으로 인하여 한때는 그 말이 없어졌었다는데, 지금에 이르서는 다시 또한 사유지 처분설이 전보다 한층 유력하게 되어 지점의 간부들도 그같은 방침을 이미 결정하였다 한다. 그 팔겠다는 이유에 대하여는 『사업 성적』이니 『자금 관계』니 하는 말이 있으나 과연 어떠한 생각을 또 가지고 팔겠다 하는지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라 하겠으며, 벌써 조선 안에 있는 그 회사의 각 지점에 통첩하여 적당한 희망자가 있으면 팔도록 알선하라 하였다는데, 이제 팔겠다는 그 두 지점 관내에 있는 지목별을 보면 아래와 같은데 이것이 만약 일본인의 어떤 개인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농촌에는 더욱 더 큰 위협에 이르게 될 터이요 그 회사에서 그것을 팔겠다는 깊은 정신도 거기있는 듯하다고 관계 농민들은 불안 중에 있다. (평양)

☯ 동척(東拓) 사유지(社有地) 매각 (1924.04.13.) 동아일보
우리의 뚜렷한 적(敵)을 근본적으로 없애라
◊ 동양척식회사에서는 창설 이래로 그저 훔쳐 가지는 것과 다름이 없는 전답과 산판 등을 팔기로 하고 각지에 있는 지점에 통지를 하여 방금 준비 중이라 한다. 그리하여 헐값에 팔아 먹고 다시 그들의 농노(農奴)가 되어 있는 조선 소작인들은 일본인 개인에게 팔까 하여 뒷일을 걱정하고 불안하게 지낸다 한다.
◊ 파는 이유는 무엇일꼬? 원래 싼값으로 모은 땅이라 원가대로 문부(文簿)에 적어 숫자 상으로 적게 보이는 부동산을 궁해 가는 이때에 보다 더 한 알 돈으로 바꿔놓는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려니와, 싸게 산 것을 비싸게 팔아서 다시 종래보다도 더 한층 광대한 토지를 휘몰아 훔칠 밑천을 장만하려는 것이 아닐는지도 모를 것이다.
◊ 원래 동척은 인도의 전 땅덩이를 모조리 훔쳐다가 정부에 바친 영국의 동인도 회사와 추호(秋毫)도 다르지 아니한 같은 종류의 회사이라. 이미 이같은 속알머리를 가지고 있는 이상 동척(東拓) 자신이 가지고 있거나 동척의 수많은 아들과 손자 증손자가 가지거나 빼앗긴 조선 사람이 받는 바 고통은 일반일 터이며 따라서 피가 마르고 살이 깎이는 분수도 여전할 것이다.
◊ 두고 보면 알려니와 조선 사람에게는 팔지 아니 하리라, 비싼 값으로 샀다가 다시 싸게 팔아 먹을 가능성이 충분히 보이는 조선 사람에게는 팔는지 의문이어니와 적어도 다시 팔아먹지 아니할 만한 여유를 가진 조선 사람에게는 팔기를 꺼리리라. 본래의 목적과 사명을 이루기에 열열급급한 동척 자신으로는 이같은 조선 사람에 팔아야 할 하등의 이유와 필요를 느끼지 아니 할 것이니, 조선 사람아! 그러면 어찌할꼬. 우리의 밥을 뺏어가는 이 뚜렷한 적(敵)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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