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인사업가가 6년째 사재(私財)를 털어 거리에 공익광고를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브리지 엔터프라이즈(가교홍보기업사) 한태격 대표다.
지난 25일부터 맨해튼 한인타운 입구인 브로드웨이와 32가의 전화부스 광고판에 특별한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태격의 공익광고 Broadway Show’라는 타이틀 아래 그동안 올렸던 공익광고들을 모은 것이다.
세계의 수도 뉴욕, 그중에서도 맨해튼 타임스퀘어 주변은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 경연장이다. 엄청난 가격의 호화(?) 광고들이 전광판에서 쉴새 없이 명멸(明滅)하고 초대형 옥외광고판도 삐죽삐죽 얼굴을 들이민다. 틈새광고들은 거리 곳곳의 전화부스 광고판이다.
가로 77인치(196㎝) 세로 37인치(94㎝)의 이 광고판은 작지만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수많은 행인들과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비용대비 효율성이 워낙 좋아 타임스퀘어 주변의 몇 안되는 부스광고판을 잡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그런 광고판에 대부분 사재로 공익광고를 꾸준히 올리는 것은 일반의 상식을 한참 뛰어넘는다. 대체 이런 일을 한태격 대표는 왜 계속하는 것일까.
한태격 대표는 서울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한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은행 주재원으로 4년간 생활했다. 30년전 뉴욕에 둥지를 튼 후 뉴욕 최대일간지인 ‘New York Daily News’와 美 최대은행 ‘Bank of America’ 에서 근무했고 광고홍보기획사인 'Bridge Enterprises'를 세운 이래 한국과 미국의 가교를 자임하고 있다.
그는 30년전 지하철 역 거리 광고를 시작한 주인공이다. 한인타운 중심지인 플러싱이 종점인 7번 전철을 따라 맨해튼의 N 전철역 34가까지 한글을 가미한 지하철 역 광고는 뉴욕의 명물이 되었다.
“CCB학원, 한양식품, 마르백화점, 아리랑 식당, 유럽팻숀, 퀸즈장로교회, 전화비서 서비스 등등이 그시절 추억의 광고들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공익활동을 우선시한 사업가였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는 차량용 무료 스티커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티셔츠를 무료 제작했고 전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맞으면 티셔츠와 막대풍선을 무상 배포했다.
2008년 까다로운 심사끝에 뉴욕시 정부 조달 입찰권을 획득하면서 운신(運身)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시정부 각부처에서 필요로 하는 기념품을 납품하는 것은 물론, 핵심 지역의 거리부스광고판을 운용하기도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특히 전화부스와 버스 정류장 광고판으로 비즈니스 영역이 확대되면서 사회 현안(懸案)에 대한 여론 형성과 동포사회와의 공유를 위해 거리의 미디어를 본격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에 올린 광고는 방학이 끝나는 9월 3일까지 6주간 ‘전시(show)’된다. 광고에 소개된 19장의 사진들은 그간 기울인 ‘공익’의 노력이 물씬 배어난다.
한일월드컵을 시작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여성대통령 탄생, 마크 리퍼트 미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한미우호를 재다짐한 내용, 북핵사태 중국동참 독려, 파리기후협약을 이끌어 낸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업적, 김치를 상징화한 한국식당 홍보,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역사적인 바둑대결 등 한결같이 화제를 모았던 것들이다.
그는 “그간 올린 공익광고를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것도 의의있을 것 같아 기획하게 되었다”며 “짧은 역사이지만 잠시 되돌아 보고 가는 것도 뉴욕 동포나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리 광고엔 한글과 한자어는 물론, 세계 주요 언어들도 과감하게 등장한다. 한국어로 쓰여진 옥외 광고를 맨해튼 한복판에서 접한 한인들의 감회(感悔)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문옥연(35)씨는 “지난 10년간 우리들의 Issue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멋진 기획으로 새로운 시도인 것 같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울적한 소식들을 잠시 잊을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조지 피나(47) 씨는 “Korea Town으로 가족과 함께 자주 한식을 먹으러 온다. 직장동료가운데 한국인이 있어 많은 이슈를 알고 있다”며 광고사진들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개최되었을 때, 태극기와 일장기를 같이 넣은 티셔츠를 앞뒤로 풀 컬러로 제작해 시선을 끌었다.
그때 10여점을 파크 애버뉴에 있는 일본총영사관을 방문해 코시카와 카즈히코 공보담당 부총영사에게 전달했다. 그의 월드컵 민간외교는 요미우리 신문과 TV를 통해 일본 전역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2011년 7월 6일 동계올림픽 개최투표에서 강원도 평창이 63표로 독일 뮌헨(25표), 프랑스 앤시(7표)를 물리쳤을 때 그는 32가 한인타운 앞에 축하광고를 올렸다. 거리에서 광고를 본 프랑스인 가족이 축하의 말을 건네며 흔쾌히 기념촬영에 응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한태격 대표는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대통령 후보가 당선됐을 때 고객인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계 레스토랑 오너들이 자신들의 비용으로 축하 배너와 포스터를 식당앞에 걸었던 것도 뜻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배너와 포스터가 걸린 곳이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등지에서 열곳이 넘었고 뉴스가 한인미디어로 나갔다. 그런데 뉴욕총영사관에서 한번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을 앞두고 플러싱의 버스 정류장에 올린 광고는 중국커뮤니티에도 큰 화제를 모았다. ‘광복절·항전승리일(光復節·抗戰勝利日’의 한자 제목으로 올린 광고를 보고 중국계 최대 미디어인 월드저널과 중국의 인민일보, 대만 신문은 물론, 일본 최대 인터넷 매체인 야후재팬 등 일본 매체들이 주요 기사로 다뤘다. 덕분에 중국 네티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일본 네티즌들은 “한태격, 일본 입국을 금지시켜라”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부스 광고판에 올린 ‘통일은 대박’도 큰 화제를 모았다. 한태격 대표는 “이 광고를 보고 감격한 산수갑산I 레스토랑의 김정현사장은 맨해튼에 자신의 업소가 없는데도 후속으로 ‘Kimchi 광고’를 내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과 한인사회와 관련한 공익광고만을 낸 것은 아니다. 지난 3월말 독일 재통일을 이끌어 낸 한스 디트리히 겐셔(Hans-Dietrich Genscher) 외무장관 서거를 애도하는 광고는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다. 겐셔 장관 추모 광고가 타임스퀘어에 올려졌다는 사실을 접한 워싱턴 주재 페테르 비티그(Peter Wittig) 독일 대사가 감사의 서신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태격 대표는 “플러싱 한인식당가의 대표주자인 금강산 식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인근 먹자골목 상인번영회(회장 김명환)가 중심이 되어 금강산 살리기 캠페인을 전개했는데 경쟁업체들이 스스로 나서며 상생하는 한인사회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술회했다.
그가 옥외광고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이민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근래들어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버스 쉘터와 전화부스에 설치되는 광고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낯설고 물 설은 이국의 땅에서 유형 무형의 차별속에 주눅들기도 하는 동포들이 우리 말이 들어간 광고판을 보면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해요. 옥외광고는 우리도 이 땅의 당당한 주인이다라는 인식을 주고 있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태격 대표는 향후 타임스퀘어의 디스플레이나 디지털 광고에 진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현재 타임스퀘어에 삼성 현대 LG 광고가 있는데 이젠 다른 한국 기업들도 많이 성장한만큼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할 때가 되었다. 타임스퀘어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소기업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그 교량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글로벌웹진’ 뉴스로를 비롯해 뉴욕의 여러 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한태격 대표는 “공익광고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겠다. 우리들의 관심사와 세계적인 이슈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리며 생각과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다짐했다.
뉴욕=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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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이세돌 맨해튼 광고 시선집중
"최고 명당 광고 효과 높아" 광고제작 한태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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