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민병옥기자 nychrisnj@gmail.com
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제80주기 추모식(追慕式)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됐다.
이번 추모식은 흥사단 LA, 오렌지카운티 지부와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 공동 주최한 것으로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에서 단우 및 외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식엔 LA 흥사단 민상호 지부장의 사회로 서경원 오렌지 카운티 지부장의 도산말씀, 윤병욱 전 위원장의 추모식사, 김완중 LA총영사, 배국희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의 추념사와 대니얼 박 보이스카웃 학생대표의 도산 선생님께 드리는 글, 안필영선생의 가족인사, 그리고 최희연 가야금 연주자의 추모 음악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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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백년만에 나타난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80 주년 추모사
오늘 우리는 도산 선생의 순국 80 주년을 맞이하여 그분의 위대하심이 우리와 함께, 또한 우리 후손들과 함께 계시고 우리 민족과 영원히 함께 하심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비상한 시국에 비상한 지도자가 나온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도산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백년만에 나타난 민족의 선각자였습니다.
선생의 인격과 경륜,사상과 예지, 국민 양성과 국가 건설은 살아 계셨을 때도,세상을 떤나신 후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민족과 세계가 그의 마음안에 있고 그의 본마음이 곧 우리요, 우리 조국이요, 우리 세계였습니다.
그분을 뵙기 위하여 상하이로 유학까지 갔던 피천득은 내 일생에 큰 기대를 가졌던 경험에 환멸을 느끼지 않은 적이 처음으로 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금강산을 처음 바라 보았을 때요, 또한번은 도산을 뵌 순간이었다고 합니다.예리한 관찰력과 명철한 판단력, 근엄하기에는 너무나 인자한 그의 인격은 위엄으로 나를 누르지 아니하고 친화와 정성으로, 정성으로 나를 품안에 안아 버렸다고 했습니다.
1938년 서재필은 추모사에서 그의 급작스럽고 비극적인 서거(逝去)는 한국에 크나큰 손실 이었고 청년 학우회, 대성학교, 신민회, 상해 임시정부,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를 조직 활동하고 그분만큼 독립에 대한 확신을 갖고 한국민에게 영감(靈感)을 불러 일으킨 민족의 지도자를 본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안도산이 링컨이 다스린 세상과 같은 기회를 가졌더라면 그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지도자로 알려졌을 것이라 했습니다.
지도자 사이에도 애정과 이해로 안창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승만은 ‘도산 천고’라는 추모의 글을 남겼습니다.
부인과 자녀들은 하늘가에서 슬피울고/ 친한 동지들은 먼 이국땅에서 놀라도다/ 나라는 망하고 있어야 할 사람 또한 떠나니/ 패강(대동강)과 더불어/ 슬픈 울음을 참기 어렵도다/
일본 경찰이 소위 “민족 운동의 괴수 안창호”의 말년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할때 아내에게 보내는 "나의 사랑 혜련에게” 편지속에서 내친구중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얼마입니까? 설혹 감옥에서 목숨을 마친다 하여도 한탄 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장래는 자연에 맡기고 지은 죄를 참회하고 옥중에서라도 심신을 새로이 단련하며 화평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내가 옥에서 목숨을 마친다 하여도 놀라거나 슬퍼하지 마소서..라는 서한을 아내에게 보냅니다.
남편이 1938년 3월 8일 임종(臨終)하기 이틀전 “병석에 누우신 어른 전상서” 라는 서한에서 "병이 그리 침중한 가운데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드려야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히 나으시기를 간곡히 기도 하나이다" 라는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고 아내와 가족, 민족의 슬픔과 대한의 독립을 뒤로하고 파란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마지막 편지속에 큰아들 필립이 치료비 100달러와 그리고 가족이 보낸 300달러 등 현 시가로 1만 달러 가까이 되는 치료비는 받지도 못한채 미국으로 반송되었고, 이해련의 마지막 편지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2018년 3월 10일
윤 병욱, Los Angeles, Califo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