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과 관련, 디플로마트(The Diplomat)가 10일 '몽골 울란바토르가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될 수 있는 여덟 가지 이유' 라는 기사를 실어 관심이 일고 있다.
이 기사는 캐나다의 줄리언 디어케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아시아 연구소 조교수와 몽골의 멘데 자르갈사이한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정치학 전공 박사 과정 학생이 공동 기고(共同 寄稿) 형식으로 쓴 글이다.
이들은 “판문점이 아니라면, 트럼프-김정은 회동 장소는 몽골 울란바토르가 될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될 수 있는 여덟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몽골브레이크뉴스의 알렉스 강(강외산) 특파원은 “몽골 처지에서는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첫번째 주요 이웃 국가요, 대한민국을 포함한 나머지 국가들은, 심지어, 초강대국 미국까지도, 몽골에게는, 제3의 이웃 국가라고 할 수 있다”며 최적의 중립적인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음은 알렉스 강 기자의 해당기사 한글 번역문.
디플로마트의 앵키트 팬더 기자가, “트럼프 행정부가, 김정은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갖지 전에, 답해야만 하는 8가지 질문”이라는 최근 기사에서 북미 회담 장소를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이미 달콤한 양보(북한의 실익)를 북한에 안겨 주었기에, 김정은을 만나러 북한 영토를 방문하는 달콤함(북한의 실익)까지 북한에 더 이상 안겨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팬더 기자가 지적했듯이 그런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결책은 판문점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회담 장소로, 판문점 이외의 다른 곳을 고려할 경우에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가 북미 회담 장소로 확실한 선택으로 떠오르게 된다.
도날드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이란 자서전에서 성공적인 협상에 이르는 11개의 방법들 중 하나로 “입지를 높여라”라는 구호를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김정은 회동은 조건에 매일 경우가 농후(濃厚)하기에, 회동 장소가 그러한 조건 중에 포함돼 있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전(前) 대통령이, 5월 이전의 트럼프-김정은 회동 관련 뉴스가 보도된 지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트위터 메시지를 날렸다.
“여기에 제안 하나 던집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울란바토르에서 만나는 겁니다. 몽골은 가장 적절하고 중립적 영토입니다. 우리 몽골은 북일 회담, 몽골의 전설로서 계속 진행 중인 동북 아시아 관련 울란바토르 대화 이니셔티브 회담 등을 위시한 여러 중요한 회담을 유치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2013년 10월 북한 공식 방문에 나선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 내외가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President's Office of Mongolia)
다음은 몽골 울란바토르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왜 타당한가에 대한 여덟 가지 이유다.
1. 몽골은 중립국이다
몽골은, 지난 1990년의 민주화 혁명 이래, 정치적 중립 입장을 견지하면서, 지역 내 모든 이웃 국가들과의 우호적 관계 증진을 추구해 왔다. 지난 2015년에는, 중립 국가 지위 추구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도 이뤄진 바 있다.
2. 몽골은 미국과 우호적 관계다
몽골은, 지난 1990년부터 줄곧, 미국과의 수많은 상호 교차 방문을 통한 고위층 인사들 간의 양국 교류 증진과 미국의 원조 투자 수혜를 경험하면서, 강대국을 이웃국가로 둔 단편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의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굳건히 견지해 왔다.
3. 몽골은 북한과 우호적 관계다
데. 초그트바타르 몽골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월초에 북한 공식 방문 차 평양을 다녀왔으며, 몽골과 북한은 수 천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몽골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 계약을 최근 수 년 동안 상호 체결해 온 바 있다. 아울러,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의 시각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을 법한, 수 백 명의 북한 어린이들이 몽골로 피난을 오는 등, 감동적인 몽골과 북한의 유대 관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4. 몽골은 접근성이 좋다
북한 대표단이 몽골 울란바토르에 오려면 단지 중국 영토를 경유하는 항공기에 탑승하거나, 아니면, 중국이나 러시아를 경유하는 기차에 탑승하기만 하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미국 대표단, 역시, 일단 한국이나 일본으로 온 다음에, 중국 영토를 경유하는 항공기에 탑승하기만 하면 몽골 울란바토르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5. 몽골은 북한과 소통해 왔다
북한 인사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몽골의 제3의 이웃국가 인사들과 소통해 왔고, 몽골 정부는 자국에서 개최되는 국제 행사에 빈번히 북한을 초청해 왔다. 이에 따라, 북일 정부 간 회동이 지난 2007년과 2012년에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된 바 있다. 지난 2017년에, 몽골 정부는 동북 아시아 관련 울란바토르 대화 이니셔티브 행사를 울란바토르에서 개최했다. 이용호 당시 북한 외교부 부상(副相)이 본 행사에 참가해, 참가 국가 대표들과 몇 번의 비공개 상호 회담을 갖기도 했다. 상호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던 것은 주최국 몽골 인사들의 배려로 북한 인사들이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6. 몽골은 실질적인 신뢰성을 보여 준다
핵확산방지는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회동의 주요 의제 중의 하나이다. 몽골은 지난 2012년에 이미 비핵 국가 지위를 공식적으로 획득한 바 있다.
7. 몽골 울란바토르는 미국과 북한 동맹국들이 받아들일 만한 장소다
분명히, 한국 정부가 북미 회담 진행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하긴 하나, 몽골이 받아들일 만한 타협적인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과거에 몽골은, 북일 회담 중재 역할을 자청해, 한반도를 벗어난, 울란바토르를 북일 회담 장소로 제공한 바 있으며, 이에, 일본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관련 의제 가능성을 열어 준 몽골에 사의를 표한 바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나 또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선호하는 어느 특정 장소가 있는지 없는지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지만, 울란바토르는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장소이다.
8. 몽골은 행사 수용능력이 있다
울란바토르에 북미 회담이 열릴 경우 몽골에 오게 되는 수 백 명의 북미 회담 관련 인사들이 몽골의 수용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으나, 유사한 여러 차례의 국제회의가 이전에도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된 바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2016년 여름에 제11차 2016 아시아 유럽 정상 회의(ASEM11)가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된 바 있다. 혹한의 끝 시기인 5월의 울란바토르 관광 수요 흐름이 제한적임을 유념해 본다면, 몽골의 호텔이나 항공기는 몰려드는 몽골 방문 외신 기자단 정도의 수요는 얼마든지 충족할 수가 있다.
현재로선, (김정은의 절친으로 알려진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의 중간 개입만 없다면, 북미 회담 장소로는, 판문점이 배제되는 경우에, 울란바토르만큼 최적의 장소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줄리언 디어케스 박사는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아시아 연구소 조교수로서 현재 공공정책-글로벌문제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멘데 자르갈사이한은 현재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에서 정치학 전공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몽골 민주주의의 발전’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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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몽골 어떤 나라인가
몽골은 동아시아의 내륙국이다. 가장 큰 도시는 수도인 울란바토르고, 정치 체제는 의회 공화국이다. 1,564,116km2의 넓은 영토를 가진 몽골은 카자흐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내륙국이나, 인구는 약 300만 명[1] 으로 적다.
13세기 원 태조인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건국했으며, 동서양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몽골 제국의 제5대 칸인 쿠빌라이 칸 시절에는 국호를 원나라로 개칭하고 남송을 정벌하여 중국 전역을 지배했고 칭기즈 칸 때부터 확장된 몽골 제국의 최대 영토를 이룩해냈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몰락해 몽골 초원지대로 물러난 형태인 북원이 1688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복속하여 외몽골로 불렸다. 1911년 제1차 혁명을 일으켰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1921년 제2차 혁명을 일으켜 현재의 형태로 독립하였다. 북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접하여 있다.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 올스(Монгол Улс) 즉, 몽골국이다. "몽골 올스"에서 "몽골"(Монгол)은 "용감한"이라는 뜻을 가진 부족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민족 이름을 뜻하고 "올스"(Улс)는 몽골어로 "나라" 또는 "국가"를 의미한다. 이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몽골 민족의 나라"라는 뜻이 된다.
한국에서는 몽골을 몽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몽고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몽골족에게 시달려왔던 중국인들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조합하여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고대로부터 몽골 초원에는 흉노, 돌궐 등 여러 유목 민족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206년 칭기즈 칸의 몽골 부족이 초원을 통일하고 역사상 영토가 2번째로 넓었던 대제국 몽골 제국을 건설했다. 14세기 말에 몽골 제국이 몰락하자 몽골 초원에는 다시 여러 부족이 나타났다. 몽골과 중국 명나라를 차례로 정복한 청나라의 강희제(재위 1661년~1722년)는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을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다. 만주족의 발흥 과정에서 내몽골은 부족들이 일찍 후금과 연합을 이룬 지역, 외몽골은 후에 복속한 지역이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외몽골은 기회를 잡고 그 해 12월에 혁명(제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다. 1913년 티베트와 우르가(울란바토르)에서 몽장 조약을 체결하였고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1920년에 국민당이 외몽골의 자치를 철폐시켰으나, 그 해에 반중국·민족해방을 목표로 몽골 인민당이 결성되었다. 1921년에 담딘 수흐바타르가 혁명군을 조직하여 제2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다. 현재 내몽골은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영토이며, 외몽골은 1924년 11월 26일에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을 받은 뒤에는 현재까지 독립 국가 체제를 유지하였다.
1924년 11월 26일에는 정부 형태를 군주제에서 인민 공화제로 고쳐 국호를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정하고, 세계에서 2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후 소련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으며, 몽골은 중소 국경 분쟁 발생시 소련을 지원하였다.[3] 소련이 해체된 후 1992년 2월 13일에 복수 정당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채택하여 계획 경제 체제를 폐기함과 동시에 시장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현재는 민주화를 이룩했다. <자료 위키피디아 참조>